<프레시안>이 입수한 이 문건에서 포스코는 지역언론이 실어야 할 기사 목록과 기사 발행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했으며 이는 대부분 실제 기사화됐다. 또 포스코측은 박승호 시장과 12일 만나 건설노조의 파업과 관련한 포스코측의 입장을 전달했으며 다음 날 박승호 시장은 지역 언론사 간부 및 포항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노사분규에 따른 지역안정대책회의'를 주관해 포스코의 요구에 화답했다.
이는 포스코가 포항 시장 및 지역언론들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건설노조의 파업에 대한 반발 여론을 만들어내려 했던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북일보>는 사설과 기고를, <경북매일>은 기고 받고 기자수첩 써라"
<프레시안>이 입수한 '건설노조 파업 동향 및 대응 관련보고(06.7.7 포항제철소)'라는 제목의 문건은 포항 지역 건설 노조의 파업 상황과 이에 대한 대응 전략 등을 담고 있다. 포스코 본사 농성 현장에서 발견돼 농성에 참가한 노동자들에 의해 전달된 이 문건에는 △파업경과 △건설노조의 파업 배경 및 전략 △파업 상황 및 불법 사례 △대응 전략 △대응 활동 △향후 대응 계획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건 중 '대응 활동'의 항목에서 포스코는 지역 기관 및 단체 등 여론을 주도하는 대상 회사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활동을 실시한다고 적고 있다. 7월 6일부터 7일까지 포항시장을 비롯한 지역 기관을 만나 '건설 노조의 요구안이 사업자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였으며 '포항 지역 건설노조는 타 지역 대비 고임금을 받고 있다'는 등의 내용의 여론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또 포스코는 '언론을 통한 건설노조 파업의 부당성 전파'를 위해 지역 언론사를 대상으로 건설노조 파업의 부당성을 설명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포스코는 이 문건에서 구체적인 계획으로 '공감대 형성 및 노조명분 약화활동'을 위해 7월 12일 이전까지 △전문건설협의회, 파업부당성에 대한 성명서 지역 조간신문에 게재(7.10.월) △사설, 기고문, 기자 수첩 등을 통한 우호 여론 형성(7.10.월~7.11.화) 등으로 구체적인 날짜와 계획을 적시하고 있다.
특히 언론을 통한 우호 여론 형성 부분에서는 사설과 기고문, 기자수첩의 항목마다 각 신문사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적고 있으며 <프레시안> 확인 결과 이 계획은 계획된 날짜에 제목까지 그대로 기사화됐다.
<경북일보>는 7월 10일 '경제부터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고, 같은 날 '포항건설노조 파업 이대론 안 된다'는 제목으로 주지홍 포항청년회의소 회장 명의의 기고문을 지면에 올렸다. <경북매일>도 11일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놀라운 것은 입수된 문건에 적시된 제목과 신문사가 바뀌었을 뿐 두 기고글의 제목이 기사가 나오기 전인 7일 작성된 문건에 실린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는 언론사가 포스코측의 이같은 계획을 사전에 알고 맞춰줬던 것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경북일보> 편집국장은 24일 이와 관련 "포스코측의 협조 요청은 없었다"며 "포항에서 포스코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언론사 자체적인 판단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위의 문건에 기록된 대로 <영남일보>는 11일 '건설노조 파업…경제손실 막대'라는 제목의 취재수첩을 실어 "국가나 지역경제가 말이 아닌 형편에서 건설노조의 강경입장은 매우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같은 날 <매일신문>은 '포항 파이 키우기 나선 신임 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자노트를 지면에 올렸다.
포스코 측에 확인한 결과 이 문건을 작성했다는 사실은 시인했다. 그러나 포스코 관계자는 "문건 내용 중 대책관련 부분은 그것을 추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부 보고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언론사에 협조를 요청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 만난 박승호 시장 "파업 근절 위해 본때 보여야"
이 외에도 포스코는 박승호 시장을 만나 건설노조 파업에 대한 포스코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포항 시청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포스코 섭외부 지역협력팀이 7월 12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건설노조 파업 관련 박승호 포항시장 면담결과'라는 문건은 박승호 시장과의 면담 일시 및 장소, 함께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박 시장의 반응 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이 문건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포스코의 장성환 섭외부장과 박승호 포항시장, 한재기 팀리더, 포항북부경찰서의 최진호 반장 등이 12일 밤 9시 20분부터 한 시간 가량 포항 시내버스터미널 앞 로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12일은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기 하루 전 날로 이날 면담은 '회사에 우호적인 북부서 회사 담당(최진호 반장)의 역할로 성사'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이 면담에서 박승호 시장은 "그 사람들(건설노동자)은 자기들이 일용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시청에 근무하는 일용직도 일요일 유급휴일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건설노조가 토요일을 유급휴일로 하는 주5일 근무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발언이었다.
박 시장은 또 "어쨌든 어려운 경제상황에 파업과 불법투쟁은 있을 수 없다"며 "포스코에서 건설노조의 연례행사인 파업행위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에 공감을 표시하며 본때를 보이고 과감하게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이 문건은 적고 있다.
이에 대해 포항시청 비서실 관계자는 23일 "처음 듣는 얘기다"라며 "시장님이 개인적으로 이들을 만났는지는 내가 미처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포스코 측은 "이 문건이 섭외부 지역협력팀에서 작성한 것이 맞다"며 참석자와 시간, 발언 내용 등도 적혀 있는 대로라고 확인해 줬다. 그러나 포스코 관계자는 "'본때를 보이고'와 같은 표현은 작성자가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과장해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주관의 '노사분규에 따른 지역안정대책회의'에 언론사 간부들도 참석
포스코 측과 만난 다음날인 13일 박 시장은 지역 언론사 간부 및 포항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을 불러 '노사분규에 따른 지역안정대책회의'를 주관했다. 포항 시청에서 작성한 또 다른 문건은 이 회의에서 노동부 노사안정과장이 현황설명을 한 뒤 대책협의를 통해 성명서 또는 선언문을 채택하기로 한다는 계획까지 고려했다고 적시했다.
당초 참석 대상자 명단에는 김종철 <KBS포항방송> 국장, 정기평 <포항문화방송> 사장, 최창호 <경북일보> 사장, 김기호 <경북매일신문> 사장, 김공가 <경북도민일보> 사장 등 언론사 고위간부 5명이 참석할 계획인 것으로 이 문건에는 적혀 있다. 이 외에도 최영우 포항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유관 기관장들이 이 회의의 참가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13일 열린 '지역안정대책회의'는 포항 시청의 자치행정과가 주관하는 회의였다. 또 이 문건의 작성자는 포항 시청 자치행정과 관계자였으며, 시청 관계자는 24일 전화통화에서 "박승호 포항 시장을 비롯해 박문하 포항시의회 의장, 윤세룡 포항교육장, 최영우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최창호 경북일보 사장, 김종철 KBS포항방송 국장, 심재동 노동부 포항지청장, 김희성 철강공단 이사장, 이대공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 등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참석자의 명단은 <경북일보>의 14일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신문은 <"경제 피해 최소화 힘 모으자" 박승호 포항시장 '지역안정대책회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보도했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 지역 언론사 사장 1명과 국장 1명을 비롯한 포항의 주요기관 고위급 인사들이 모여 "파업 조기타결을 위해 공동노력을 기울이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포항 시장이 주관한 이 회의에 대한 포항시청의 문건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노동자들이 가지고 나온 포스코 문건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포스코 관계자가 참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에서 작성한 이 문건이 포스코 본사에서 발견된 배경에 대해 "노사 관계와 관련한 사안의 경우 각종 자료를 공유하곤 하는데 그 차원에서 이 회의 계획 자료가 포스코에 넘어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 건물을 점거하기 전부터 포스코가 이처럼 언론사 및 지역의 관계 단체들과 건설노조 파업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힘썼던 것은 그간 '우리는 제3자'라는 입장을 밝혀 온 포스코측의 주장을 무색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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