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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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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이유

건설산업의 중층적 하도급 구조가 주된 배경

포항지역 건설노조 조합원 3000여 명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인 지 18일로 엿새째다. 경찰은 지난 15일 새벽 처음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에 나선 이후 매일같이 새벽이면 농성 조합원을 해산시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18일 오전 한명숙 국무총리 주재로 대책회의를 가진 뒤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불법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포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건설노조 조합원에 의해 점거된 포스코 본사에서는 갈수록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진압에 나서는 경찰에 노조원들이 강력하게 저항함에 따라 새벽마다 팽팽한 대치상황이 벌어지는가 하면, 지난 16일에는 경찰과 대치하던 도중 조합원 하중근 씨가 심하게 다쳐 이날까지도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15일의 강제진압 작전 이후 이탈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현장에는 1000여 명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측은 이탈자들은 건강 상의 문제나 집안 일로 농성장을 빠져나간 것일 뿐이며 현재 25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남아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항건설노동조합 이지경 위원장은 이날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요구가 정확히 전달되고 받아들여질 때 내려가자고 (조합원들에게) 말했다"면서 자진해산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건설노동자에게 '주5일제 확대실시'는 '임금삭감' 통보
▲ 포항지역 건설노조들이 지난 13일 포스코 본사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포스코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과 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의 모습. ⓒ연합뉴스

평균연령이 50세에 달하는 포항지역의 건설노조원들이 이처럼 점거농성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 폐지, 토요일을 유급휴무로 하는 주5일 근무, 임금인상 15% 등이지만 핵심은 주5일 근무제다.

주5일 근무제가 7월부터 100인 이상 사업장에까지 확대적용된 것은 일반 직장인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5일 근무제 확대적용은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눈 앞이 깜깜한' 일이다. 이들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의무적으로 이틀을 쉬면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지경 위원장은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토요일이 무급 휴일이 돼 임금이 20% 삭감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임금은 월평균 180만 원대다. 이 금액도 노동자 평균연령이 40~50대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주5일 근무제가 확대 실시됨에 따라 임금이 더 낮아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임금삭감 없는 주5일제 실시', 즉 '토요일 유급휴일화'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겨울철에는 건설공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날은 1년에 8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데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보장받고 있는 퇴직금과 학자금 지원은 물론 연말정산 때의 각종 세제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5일제의 확대 실시'는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임금삭감' 통보와 다르지 않다.

결국 정부가 주5일제 확대라는 정책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건설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 이들로 하여금 파업과 함께 포스코 본사 점거에 나서도록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포스코 본사 점거'는 층층이 쌓인 건설산업의 구조 문제 때문

정부는 이날 오전 발표한 담화문에서 "건설노조가 사용자인 전문건설협의회를 상대로 파업을 벌이다가 여의치 않자 노사관계에 있어 직접 당사자가 아닌 포스코의 본사 건물을 점거하는 등 자신들의 주장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관철하려 하고 있다"고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비난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공동명의로 발표된 이 정부 담화문은 역설적이게도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현재의 건설산업이 갖고 있는 후진성을 잘 보여준다.

'포스코가 건설노조와의 노사관계에 있어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는 것은 발주사, 원청, 하청, 재하청의 층층이 쌓인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포스코가 발주를 했더라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계약을 맺는 당사자는 포스코가 아니다. 결국 이같은 구조 속에서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이리저리 떠넘겨지게 되며, 이런 사정은 포항 건설노조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포항지역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3개월 전부터 전문건설업체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전문건설업체들은 발주업체인 포스코에게 모든 짐을 떠넘겼다.

이지경 위원장은 석달 넘게 교섭을 해 왔지만 전문건설업체는 "포스코에서 받아오는 공사비가 적다"는 이유로 '요구를 들어줄 여력이 안 된다'고 말해 왔다고 전했다. 결국 이 위원장의 말대로 "문제 해결의 열쇠는 포스코가 쥐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노조원들은 11일 포스코를 찾아가 '성실한 교섭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합의를 받아냈다. 그러나 합의 이틀만인 13일 포스코가 대체인력을 투입해서 사실상 이들의 파업을 무력화시키자 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기에 이른 것이다.

건설 노동자의 노동여건에 대해 무관심한 정부

이같은 근본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없이 오직 '불법파업'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이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를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불법농성을 계속할 시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건설노조의 점거농성 중단과 자진 해산을 촉구했다. 건설노조가 자진 해산할 경우 "교섭을 주선하는 등 최대한 선처하겠다"며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의견개진의 기회는 충분히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의견개진의 기회'란 것도 건설산업의 구조 속에서는 포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떠넘겨지기 십상이다. 이같은 문제가 비단 포스코와 포항지역의 건설노조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만 하더라도 지난 6월 대구경북 건설노조가 파업을 벌였으며, 지난해에도 울산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 개선을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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