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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은 풀었지만 마음은 안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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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은 풀었지만 마음은 안 풀려…

[현장] 포스코에서 자진 철수한 노동자들

비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비와 함께 포스코 본사 1층 로비에는 지난 13일부터 농성을 벌여온 건설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내려왔다. 왜 이들은 8일 전 포스코 본사에 들어갔으며 스스로 내려오게 된 것일까?

20일 밤부터 새벽 사이, 며칠 동안 수염도 깎지 못하고 마실 물과 음식조차 반입이 안 돼 초코파이와 생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초췌해진 모습으로 농성장을 빠져나온 건설 노동자들을 만났다.

"아이 키울 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던 포항 지역 건설노동자들이 농성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 프레시안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있다. 우리의 처음 의도보다 너무 일이 확대돼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오죽하면 그랬을지 국민들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한 배관공(56)이 "끝까지 같이 있어주지 못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면서 밝힌 소회다. 하루 일당으로 8만 원도 채 받지 못한다는 그는 한 달 평균 25일 정도 일한다. 그래서 버는 돈이 200만 원 가량. 그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늦둥이 막내를 키울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30년 넘게 기계공으로 일해 왔다는 한 노동자 역시 "우리가 버는 돈으로는 아이들 교육도 못 시킨다. 다 빚 내서 시키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함께 나온 동료들을 가리키며 "여기 빚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농성장을 나와 경찰의 신원확인 등의 절차를 거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담배부터 얻어 피웠다. 음식물과 물까지 반입이 금지된 상황이었으니 담배는 당연히 피울 수 없었다.

담배 한 개피를 주변의 동료들과 한 모금씩 나눠 피우며 그는 기자에게 "우리는 현장에서도 늘 이렇게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담배 한 갑 살 돈이면 갓난아기가 며칠이라도 먹을 분유를 살 수 있는 값인데 어떻게 마음껏 담배를 피우겠냐"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직종별, 경력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도 일당 10만 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이들은 말했다. 원청업체가 들이는 공사비의 액수는 엄청나지만 층층이 쌓인 하도급 구조 탓에 마지막으로 현장 노동자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그 정도라는 것이다.

그나마 공사가 바쁠 때면 10일씩 철야로 일을 하기도 하지만 1년 내내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건설산업에서 만연한 불법 하도급 구조 속에서 이들은 공사현장 별로 고용되는 비정규직인 까닭이다. 따라서 한 건설업체의 공사가 끝나고 바로 이어 다음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이들은 "한 달을 내리 놀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더욱이 건설업의 특성상 비가 오거나 날이 추워지면 공사 자체가 거의 없다.

결국 이들의 연봉은 '일당×365'를 해서 나오는 금액이 아니다. 이들은 "왜 언론에서는 우리가 3천만~4천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고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우리를 욕하는데 어쩌겠느냐"
▲ 포스코 본사 1층 로비에 쌓여있는 노조원들의 조끼들 위에 '승리의 그날까지'라고 쓰여있는 손수건이 함께 널부러져 있다. ⓒ프레시안

임금 인상과 토요일을 유급휴가로 하는 주5일제 도입, 불법 다단계 하도급 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해 지난 13일에는 포항 지역 건설공사 대다수의 원청업체인 포스코를 점거한 이들이 결국 자진해산한 데는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배관 일을 한다는 한 노동자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고 농성장에서 나온 이유를 밝혔다. 그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우리를 욕하는데 어쩌겠느냐"고 털어놨다. 청와대는 이날 "폭력행위 주동자와 배후조종자뿐 아니라 가담자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노조원은 "싸움을 그만두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스코 건물에 올라갈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하고 싶은 말은 오직 하나다. 우리는 정말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10년째 건설현장에서 기계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포스코 건물을 나서며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일 다시 여기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내려온 뒤 채 3시간이 넘지 못해 노조 지도부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면서 그가 다시 포스코를 찾을 이유는 사라졌다.

이날 포스코 주변에는 농성자들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12시 30분께부터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다가 남편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업고 무작정 왔다는 한 여성은 "남편이 여기 있는 동안 내내 TV를 보며 울었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13년 경력의 기계공 노동자. 아이를 등에 업은 아내는 "돈도 얼마 못 버는 우리 남편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가둬놓고 밥도 못 먹게 하느냐"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농성 8일만에 싸움은 끝났다. 파업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경찰에 체포된 노조 지도부를 제외하면 이들은 조만간 다시 일당 8만 원을 벌기 위해 건설현장으로 갈 것이다.

포스코 점거농성은 노동자들의 '자진해산'으로 막을 내렸으나 "뼈 빠지게 일해도 먹고 살기가 숨찬" 삶은 언제 다시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할지 모른다. 다단계 불법 하도급 구조 속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며 "우리가 오죽하면 그랬을지를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이제라도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농성장을 잇달아 빠져나오는 건설 노동자들의 초췌한 얼굴이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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