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새로운 노동법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두 달여 동안 프랑스를 불태웠던 최초고용계약(CPE, 26세 미만의 청년들을 고용할 경우 2년 안에 특별한 사유 없이 해고가 자유롭도록 규정한 법안)을 둘러싼 논란의 패배자는 프랑스 정부였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암허스트 캠퍼스의 경제학 교수인 릭 울프는 진보적 평론지 〈먼슬리 리뷰〉 기고문을 통해 "한번의 큰 싸움에서는 승리를 거뒀지만, 여전히 전쟁은 프랑스와 기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신자유주의는 또 다른 형태로 다시 프랑스의 청년과 노동자들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울프 교수는 "비록 이번 싸움에서는 패배했으나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자본가들과 정부에 맞서 좌파 세력은 이 승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의 승리는 '단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지적하고 결국 여러 갈래로 분열된 세력들의 단결만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법안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한국사회에게도 프랑스의 승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청년들과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 얻은 승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다음은 울프 교수의 기고문 "프랑스 좌파세력의 승리에서 배워야 할 것들(Lessons of a Left Victory in France)"의 전문이다. 원문은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1&ItemID=10109에 가면 볼 수 있다. 〈편집자〉
***프랑스 좌파세력의 승리에서 배워야 할 것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해 그 휘하의 프랑스 정치인들은 패배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복지를 줄이려 했던 프랑스의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단결은 26세 이하의 청년들의 고용 보장을 무력화하려 했던 정부의 법에 맞서 싸워 승리를 얻어냈다. 그들은 시라크 대통령이 새 노동법을 철회하도록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와 다른 프랑스 정치인들이 주장해 왔던 것은 명백히 불법적이고 불가능한 것이었다. 현재 프랑스와 다른 지역의 모든 사람들(경제와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을 한 축으로 하고, 학생ㆍ노동조합과 좌파를 또 한 축으로 하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이번 투쟁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서로 다른 인식은 앞으로 양측이 각각의 조직과 전략, 그리고 전술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프랑스의 우파와 그들의 기반인 거대기업들은 앞으로 그들의 조직과 손상된 대중적 기반을 재건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의 오랜 숙원인 노동법과 여러 조건들을 기업의 이익에 맞게 "재정비"하기 위해 이번과는 또다른 방법을 시도할 것이다. 그들이 이번 패배로부터 얻을 교훈은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정치적 패배를 피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들은 다음번에는 이번보다 훨씬 더 잘 좌파를 분열시켜야 함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국가적' 혹은 '경제적', '안보상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위장하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ㆍ경제 '컨설턴트', '싱크탱크' 그리고 학문적인 '조언자'들을 엄청난 돈으로 매수해 프랑스 우파들의 프로그램을 재포장하도록 만들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 좌파세력,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적들과 맞서고 있는 좌파세력들, 즉 전지구적 좌파세력은 이번 승리로부터 전혀 다른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얻어야 할 교훈은 정말 많다.
첫째로, 나이ㆍ성별ㆍ소득수준ㆍ이민여부ㆍ교육수준ㆍ인종 그리고 수많은 다른 요인들로 심각하게 분열돼 있는 좌파는 이번 사태를 통해 단결이 가능하며, 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을 하나로 통합시킨 관심사는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것들이었다.
둘째로, 이처럼 특정한 공통의 관심사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노동자, 저학력 노동자와 고학력 노동자, 이민자와 비이민자, 젊은이와 나이든 노동자들을 분리시켜 서로 싸우게 만들려는 프랑스 정부의 끊임 없는 시도를 약화시켰다.
셋째로, 프랑스 정부는 "법"이란 "국민의 민주적 의지"를 결집한 것이라며 이를 관철시키려 했지만 "법"보다는 "대중운동"이 국민들을 보다 잘, 보다 더 진정으로 대변한다고 믿는 대중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공식적 정부와 비공식적 정부라는 이중권력의 상황이 생겨났으며, 이를 통해 프랑스의 수백만 국민들은 공식적 정부가 주장하는 "국민적 단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됐다. ("국민적 단결"을 내세운) 프랑스 민족주의는 프랑스 사회 안에서도 지배세력과는 상반되는 노동자ㆍ학생의 이익이 있다는 반대파의 논리를 이겨내지 못했다. 사회란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사회세력간의 투쟁의 장이라는 개념은 이제 좌파는 물론 프랑스의 대다수 민중에게도 하나의 상식이 됐으며 이에 따라 이들은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자들을 일관되게 지지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번 노학연대를 통해 단합되고, 대중이 참여하는, 직접적인 정치행동이야말로 승리의 열쇠라는 점이었다.
프랑스가 얻은 교훈은 또한 우리의 교훈이기도 하다. 한번의 큰 싸움에서는 승리를 거뒀지만, 여전히 전쟁은 프랑스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그들의 이익과 부유한 관료들의 이익, 기업의 확대를 위해 필요한 법과 규칙들을 제정하라고 지속적으로 정부에 압력을 넣을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 소비자, 학생들에게 양보를 요구함으로써 국제적 경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계속 노력할 것이다.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먀말로 개혁, 현대화,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를 모든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첩경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그들은 더 많은 자원들을 대중적 캠페인과 정치인 그리고 여러 '조사'에 쏟아 부을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싸움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학생, 소비자들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미래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떻게 그들이 단결하고 결집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들은 시라크가 패배를 인정하기 전까지 계속됐던 시위 기간 동안 이미 떠오른 주요 문제들을 반드시 풀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학생들의 시위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다음 신자유주의 공격이 닥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서야 또 다시 그것을 쫒아버리기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로 하여금 고용주에 맞서 끝없는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제 구조에 도전함으로써 이 전쟁과 맞설 것인가?
노동자들이 스스로 그들의 주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생산 관계에서의 기본적 변화를 위해 싸우기 위해 지난 3-4월 프랑스에서 분출된 모든 에너지와 단결된 역량을 총결집시키는 것이 우리의 최선의 전략이 아닐까? 자본주의적인 기업보다는 협동조합형 기업이 노동자-학생-소비자의 동맹에 맞선 기업들의 동맹에 구멍을 뚫기 위한 끝없는 싸움이 없는 미래로 향하는 방법이 아닐까?
미국 대중매체들의 보도행태에서 드러난 부정적 교훈도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한다. 미국의 대다수 대중 매체들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 기념비적인 사건을 무시했다. 몇몇 언론들은 산발적 폭력양상만을 과장하는 데 열을 올렸다. 조직과 기율, 연대가 두드러졌던 전체적인 시위 양상에 비추어 일부 폭력시위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일부 언론은 프랑스정부의 반노동자적인 이번 법률을 마치 가난한 이민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인 것처럼 포장하려고 애를 썼다. 명백하게 또는 암시적으로, 대부분의 언론 보도와 분석은 프랑스가 그들의 경제를 미국이나 영국 혹은 또 다른 "진취적인" 경제들처럼 신자유주의적으로 "선진화하는" 데 실패했다고 기술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상업적인 언론들은 2006년 봄 프랑스 투쟁의 열벙이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번역=여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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