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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프랑스의 저항은 자본주의를 길들일 수 있을까"

노동시장 유연성 반대 시위의 '역사적' 의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학생들과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온 고용법을 공포하되 최초고용계약(CPE) 조항들을 즉각 수정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시위 주도 세력들은 CPE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며 4일 또한번의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어 노동 유연화를 둘러싼 저항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CPE는 고용주가 26세 미만 직원을 채용한 뒤 첫 2년간은 사유 설명없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노동시장 유연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시위가 계속되자 지난달 31일 예비 채용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해고 사유에 대한 설명도 의무화하도록 하겠다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반대 세력들은 기존 고용법에 규정된 6개월 시험 채용 기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7년 구제 금융을 제공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에 강도 높게 요구하며 우리 귀에 익숙해진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처럼 제3세계뿐만 아니라 서구 선진국 노동자들까지 거리로 나가게 하고 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과, 영국, 미국 등에서도 최근 노동시장 유연화를 둘러싼 진통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와 주주 이익 중심의 기업 경영**

노동시장 유연화는 1990년대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세계화 현상으로 인해 다국적기업들이 저렴한 노동 비용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면서 전세계 모든 노동자들이 경쟁 관계에 놓이는 상황에 의해 강요되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중심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이와 관련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는 지난달 30일자 칼럼 '공격받는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이 무제한적으로 공급된다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생존만을 가능케 할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임금철칙'이 지금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그 원인은 세계화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화와 더불어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변화에서 파프가 꼽은 또하나의 특징은 노동자들의 복지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던 기업이 소유주(기업가, 주주)들의 단기적인 '가치'를 높이는 데에만 골몰하게 됐다는 점이다.

단기적인 가치는 기업의 주가와 배당금을 말하는데, 이를 달성키 위해 임금과 근로자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라는 압박과, 정부 재정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법인세를 줄이라는 정치적 로비와 대중 설득의 형태로 나타난다. 기업가들은 근로자들이나 공익이 아니라 오직 배당금의 최대화에 관심이 있는 펀드매너저들의 평가에만 영향을 받으며 프랑스의 CPE 같은 '개혁' 조치에 저항하는 이들을 비판한다.

파프는 이같은 현상을 'CEO(최고경영자) 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며 프랑스의 시위 참가자들은 수정된 고용법 조항을 넘어 미래에 대세가 될지도 모를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불만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표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즉, 최근의 시위 사태는 세계화와 'CEO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프랑스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평등을 국가적인 대의로 천명하고 있는 국가"라며 "거리의 군중들은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정의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의 한 특정한 형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대안은 있을까?**

세계의 시민사회는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지니며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철저한 저항 양상을 띠는 프랑스의 CPE 반대 투쟁이 어느 편의 승리로 끝날 것인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만약 노동자-학생들이 승리한다면 노동시장 유연성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통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며, 차제에 노동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대안 모델을 찾는 운동으로까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매사추세츠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리처드 울프는 최근 진보주의 저널인 〈먼슬리 리뷰〉 기고문을 통해 수년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인들을 비롯한 세계의 대중들이 프랑스 시위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울프 교수는 이번 프랑스 시위에서 특히 노동자와 학생들이 강력히 연대하고 있음에 주목하며 그 연대 세력들은 ▲복지국가를 해체하려는 시도가 한계에 다다랐고 ▲그 해체를 계속하려 한다면 대중적인 저항을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언론들이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에게 소유되고 있어 프랑스 사태의 '역사정 중요성'을 간과하며 일부 극렬 세력의 탈선행위로 묘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외눈박이' 미국 언론의 편향 보도에 대항하면서 프랑스 시위 사태에 발맞춰 지구화된 자본주의(글로벌 자본주의)에 새로운 대안을 찾는 기획물을 실었다.

〈네이션〉은 '글로벌 자본주의 길들이기'라는 제목의 최신호(4월 17일자) 기사를 통해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제임스 갤브레이스 텍사스대 교수, 시어 리 미국총노동연맹(AFL-CIO) 정책위원장 등 미국의 저명한 학자·이론가·활동가들이 구상하는 자본주의의 대안 체제를 소개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닮아야 한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심화된 무역 자유화 속에서 경쟁하는 국가들이 최저 임금을 하향 조정하고 노동자 보호 제도를 약화 시키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고, 기업과 자본 일반에 대한 감세를 추진하면서 공공 투자와 사회안전망에 대한 투자가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티글리츠는 그러나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을 예로 들며 세계화에 대응하는 대안적 체제가 가능하다며 "그 나라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편입됐으면서도 사회안전망과 공공 투자, 고용에 있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 정책을 고수하며 세계화가 가져온 위협에 적절히 대처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국가들은 특히 주력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금융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세계화 시대에는 국가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일반의 분석에 반례를 제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닮기 위해서는 교육 수준을 향상하고 보다 누진적인 조세 제도와 강력한 사회 안전망의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스티글리츠는 특히 고용 수준이 높게 유지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실업률이 높아지면 소비가 위축되어 비록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활기없는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티글리츠는 또 그간 간과된 진보적 의제로 저축과 연구에 대한 투자를 꼽았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저축은 예측 불허의 시장 상황에 대비키 위한 자위적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있고, 기초 및 첨단 과학에 대한 투자는 삶의 질 향상과 환경 보호에 도움을 주고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게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권자 억압하는 선거제도에 맞서는 게 이 시대 민권운동의 핵심"**

'평화와 안보를 위한 경제학자 위원회'의 회장인 제임스 갤브레이스 교수는 실업을 잡기 위해서는 노동 빈민들의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노동시장 유연화의 '독트린'이라며 1940년대, 60년대, 90년대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실업은 그런 식으로 정복되지는 않는다고 못박았다.

갤브레이스도 노르웨이와 덴마크 및 스페인·프랑스의 사례를 볼 때 '평등한 성장'의 반례가 존재한다면서 노동 대중과 중산층의 요구를 토대로 만들어진 '성장과 정의를 위한 프로그램'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를 위해 그는 정치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경우 유권자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며 "유권자를 억압하는 선거 제도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이 시대 민권 운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의 완전 고용, 유럽과 일본에서의 평등주의적 성장, 시민사회와 빈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구적 성장 전략 등이 경제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공적자금 투자와 강한 노동조합, 최저 임금의 상향 조정 등을 국내적 의제로, 조세 피난처와 무기 교역을 막고 금융 시스템을 안정화하며 빈국들의 채무 탕감 등을 국제적 의제로 삼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진실은 평등주의적 성장이 효과적인 것이고, 투기는 반드시 규제돼야 하며, 범죄는 위에서부터 시작되고, 평화는 기초적인 공공재"라면서 "이같은 진실은 (자본주의) 약탈자들에게는 독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자유로운" 시장을 옹호하는 지적 운동을 후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성' '계몽주의적 제도'의 부활**

영국의 작가이자 〈상호의존선언〉의 저자인 윌 허튼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길들이는' 데에는 사회 공공성의 회복이 긴요하다고 강조한다.

허튼은 미국의 대학을 예로 들며 그 대학들은 전세계의 부러움을 받고 있지만 이제는 엄청난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유한 엘리트층 자녀들의 '특구'가 되어 교육을 통한 계급·계층간 이동성(social mobility)이 급격히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최고의 사립대학들부터 스스로의 사명이 '공공성'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며 계급·계층간 이동성은 중요한 '공익'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경우 현재의 활력있는 자본주의를 가능케 했던 것은 19세기의 평등주의적 전통에 따른 '계몽적 가치' 때문이었다며 최근 들어 강조되는 시장과 종교의 가치는 계몽주의적 제도 전 체제의 활력을 없애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기업의 사회적 지배력이 압도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통적인 진보적 가치를 강조해야 하며 미국의 독점금지법(Sherman and Clayton Act)에도 다시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공익을 지향하는 풀뿌리 지역 조직과 연대를 부활해야 하고, 이민자들과 노동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노조는 소속 회원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깨달아야 보다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자본시장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네이션〉 기획에 참여한 일부 학자들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제시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조엘 로거스 위스콘신대 교수는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백 개의 프로젝트들이 미국에서 개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며,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노동자 교육 및 숙련 노동자 인증 프로그램, 지역 경제 안정과 활성화를 위한 노조 연금의 사용, 출퇴근 시간과 주거 비용을 줄이게 하는 소위 '스마트 성장' 정책 등을 열거했다.

그는 "자본시장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일반의 예상처럼 그리 유동적이지도 않다"고 전제하고 "이 모든 것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교육 수준과 노동자들의 교육을 향상시킴으로써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과 공포의 정치경제학〉의 저자 마셀루스 앤드류는 자본 소유권과 부(富)의 축척에서 '집합적 형태'를 만들어 모든 이들이 자본 소유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를 위해 예를 들어 연방정부가 매년 세수의 1%를 모아 정부 차원에서 관리되지만 개인적으로 운용(manage)할 수 있는 지수연동형 펀드(index fund)에 투자되는 자본 계정을 운영함으로써 여기에서 나오는 이자와 배당금 수입이 노동자 가족의 임금 하락을 보충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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