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의 실업정책에 반대하는 청년과 노동조합의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18일 프랑스의 전국 13개 주요 도시에서 최소 50만 명(경찰 추산, 시위 주최 측은 150만 명 주장)이 참여해 지난달 항의집회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실업대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촉발된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는 최근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노정 간 대립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CPE, 26세 미만일 경우 2년 간 제한 없이 해고 가능**
이번 소요사태는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월 내놓은 '최초고용계약(Le Contrat Premire Embauche, CPE)'이라는 새로운 고용법안에서 비롯됐다.
CPE는 기업들이 만 26세 미만의 젊은이에 대해서는 고용 후 첫 2년 간에는 특별한 사유 없이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2년이 넘을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20인 이하 규모의 중소기업들의 더 많은 인력 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신고용계약'을 모델로 한 것으로, 20인 이상 모든 기업들에 적용된다.
드 빌팽 총리는 이 법안을 내놓으면서 "더 많은 청년들을 일자리로 향하게 만드는 데 '긴급계획'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시도는 프랑스 노동시장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정부 "CPE는 청년 실업난 해소를 위한 조치"**
프랑스 정부가 이번 계획을 내놓은 것은 전체 실업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데 반해 청년 실업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고용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프랑스의 실업률은 2001년 이후 10%가 넘는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4월 이후에는 9개월 동안 계속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프랑스의 실업률이 9.5%를 기록해 드디어 한 자릿수로 떨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청년 실업률이다.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2월 이전부터 꾸준히 상승해 왔으며, 전체 실업률의 두 배 이상에 이르고 있다. 18~25세 청년들 가운데 23% 가량이 실업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는 전체 평균실업률인 9.6%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수치다. 특히 지난해 가을 소요사태가 있었던 이민자 거주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4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인 〈르몽드〉는 지난 1월 17일자 기사에서 "다른 연령대에서는 지난해 실업률이 완만히 하락했지만, 청년들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며 "빌팽 총리의 실업대책은 이러한 프랑스의 노동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드 빌팽 총리는 "프랑스 청년들이 최초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데는 11년이 걸리며,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시간"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방치돼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CPE 법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청년·노조의 반발 "CPE는 고용 불안정성 심화"**
하지만 CPE 법안은 청년층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프랑스 노동법이 보장하는 고용보호 장치를 제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청년층과 노조의 반발을 불렀다.
즉 '26세 미만 청년들을 고용할 경우 2년 이내에는 제약 없이 해고할 수 있다'는 CPE의 조항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30여 년 동안 유럽대륙에서 진행된 노동유연화 기류와 달리 고용시장 안정화 정책을 고수해 온 프랑스 정부가 CPE 시행을 기점으로 기존 노동시장 정책방향을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근본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베르나르 티보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위원장은 "프랑스 노동법을 심각한 탈규제화 쪽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당수는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난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CPE 논쟁, 우리나라 기간제 법안 논쟁과 닮은 꼴**
한편 노동시장을 유연화할 경우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을 줄일 수 있다는 프랑스 정부의 주장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고용불안으로 해석하고 있는 청년-노조의 주장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린다.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뒤 4월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우리나라 노동계와 정부여당의 견해와 거의 같은 주장을 프랑스의 청년-노조와 정부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CPE 논쟁은 특히 기간제 법안(기간제·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노정 간 논쟁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즉 기간제 근로를 2년 간 사용한 뒤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한 기간제 법안에 대해 노동계는 "2년마다의 주기적 해고를 불러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기간제 근로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사유제한'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여당은 사유제한 규정 도입에 대해 "중소기업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며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CPE가 청년 실업난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비정규직 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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