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가 만성적인 청년실업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1월 내놓은 최초고용계약(CPE) 법안에 대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프랑스 청년과 대학생들은 1968년 혁명에 버금가는 규모의 반대시위를 벌였고, 프랑스 노조총연맹(CGT) 등 노동계도 총파업을 선언해 놓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 꿈을 꾸고 있는 드 빌팽 총리의 정치적 야심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해 한 해 동안, 아니 현재까지도 비정규직 관련 입법 문제로 몸살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CPE를 둘러싼 프랑스 내부 논쟁은 시사점이 많다. 물론 우리의 경우 임금노동자의 절반을 상회하는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비정규직 법안이 나온 반면, 프랑스는 청년실업 해소를 목적으로 CPE 법안이 나왔다는 점에서 두 법안 탄생의 배경이 다소 다르다. 하지만 고용의 경직성 혹은 안정성을 해체하는 것을 골자로 한 노동유연성 강화를 통해 고용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정부나 프랑스 정부나 비슷하다.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안정현 씨가 유럽대륙에서 가장 고용안정성이 높다는 프랑스의 고용계약 제도를 검토하고 CPE 법안이 갖는 한계는 무엇인지를 고찰한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현재 프랑스의 25세 미만 청년들의 실업률은 22.8%(학생 제외)로, 프랑스 전체 실업률 9.7%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수치다. 학생들과 시민, 노조들이 대규모 시위와 수업거부를 연일 계속하며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는 '최초고용계약(CPE)' 법안은 프랑스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내놓은 대책이다.
***CPE,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실업 타개책**
현재 프랑스의 합법적인 정식 노동계약은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기간제 계약(CDD, 비정규직)과 무기간제 계약(CDI, 정규직)이 그것이다. CDI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퇴직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일반 고용으로 한국의 정규직과 비슷하다. 반면 CDD는 글자 그대로 계약 때 기간이 명시되고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한국의 비정규직과 비슷한 형태이다.
이번에 도입되는 CPE는 형식적으로는 26세 미만의 고용인에게 적용되는 무기간제 계약(CDI)의 한 형태이다. 기존의 CDI와 다른 점은 수습기간이 2년이고 이 기간 동안에는 사유를 증명하지 않고도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참고로 기존의 CDI에 법적으로 허용되는 최장 수습기간은 3개월이었다. 이번 조치는 결국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실업 타개책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학생들과 노조, 그리고 사회당을 비롯한 야당은 이 법안이 실업을 타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청년들의 고용 불안정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규고용의 경우 해고가 자유로운 2년의 수습기간을 악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기존의 기간제 계약 고용도 CPE로 대체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엔 CPE는 수습기간이 길다는 점에서 기존의 CDI만은 못하지만 한국의 비정규직과 비슷한 기간제 계약직인 CDD보다는 낫고, 이 점에서 기업들이 기존의 CDD를 CPE로 대체하게 된다면 환영할만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랑스의 다양한 고용제도…CDI, CDD, CPE의 상관관계**
그러나 프랑스 CDD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의문은 쉽게 풀린다. 프랑스는 CDD의 남용을 막고, 되도록이면 CDI 고용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동일 노동에 대해 CDD 노동자는 10%의 비정규직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최장 계약 기간이 1년 6개월을 넘을 수 없고 갱신은 한번만 허용이 된다. 즉 한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최장 3년 이상 CDD로 일할 수 없다.
즉 그 이후에도 기업이 기존의 CDD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려면 반드시 CDI로 바꿔야 한다. 게다가 해고 시에는 일반 CDI와 마찬가지로 그 사유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반해 이번 CPE는 CDI의 한 형태이므로 일단 비정규직 수당을 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이유 없이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다. 게다가 정부가 CPE에 베푸는 각종 세제혜택도 누릴 수 있다. 기업이 1년 간 필요가 예상되는 노동수요라도 일단은 CPE로 채용을 하고 1년 후에 어려움 없이 해고하는 방법이 훨씬 더 비용절감 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러한 대체는 사실 프랑스 정부도 반길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청년들의 취업현실을 잠시 살펴보자. 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취업일선에 나와 처음부터 CDI 고용계약을 얻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부 스스로도 CDI 고용에 이르기까지 평균 소요기간은 8~11년으로 유럽의 평균 4~5년에 비해 매우 길다고 인정했다.
2001년 노동시장에 들어온 프랑스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광범위한 패널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64%가 기간제 고용이나 일시 고용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CDD의 CPE로의 대체는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CDD 고용수치는 줄고 CDI 고용수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날 테니, 정부 입장에서는 고용안정이 향상되었다고 생색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청년들에겐 CPE 도입은 직접적으로는 CDI의 안정성을 훼손함과 동시에 간접적으로는 기존에 프랑스가 기간제 고용의 남용을 막기 위해 쳐놓은 여러 안전망을 한번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고용을 창출하는 건 고용계약의 형태가 아니라 경기"**
다음으로는 이러한 대체를 넘어 청년층에 대한 신규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겠는가 하는 점이다. CPE 법안은 현재의 청년실업이 지닌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책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프랑스 중견관리직 고용협회(APEC)의 자케 샤틀랑 회장은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몇년 간의 경험이 있는 경력자를 선호하고 학교를 갓 졸업한 무경력 사원을 채용하는 것을 리스크가 큰 투자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기업의 행태는 경기가 안 좋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신규채용이라는 게 기업의 규모 확대에 따른 것은 없고 퇴직으로 비는 자리를 메우는 것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력직 선호가 더욱 두드러진다. 즉 경기침체가 나타날 때 청년층의 실업률은 더욱 올라가는 것이다. 본질적인 해결책은 경기를 부양하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지난해 9월부터 20인 이하의 소규모 기업에 대해서는 신고용계약(CNE)이라는 이름으로 CPE와 같은 형태의 계약을 허용한 바 있다. 당시 프랑스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모임인 CGPME의 한 임원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고용계약의 형태가 아니라 경기"라면서 "경기가 안 좋은데 어느 기업이 총리를 기쁘게 해주자고 사람을 새로 뽑겠냐"고 비꼬은 적이 있다. 이번 청년실업 해소책에도 같은 말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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