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제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임문철 신부는 20일 성명서를 통해 우근민 제주지사의 '성추행'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사건의 중재를 맡았던 임 신부는 그간의 경위에 대해 밝히면서 "우리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피해자 고모씨의 증언과 증거들을 통해 신앙적 양심에 의거 고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임 신부는 "지난 4일 여민회를 통해 도지사의 면담 녹취록을 직접 살펴보고, 6일 고씨를 만나 우 지사가 공개 사과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확인했다"며 "8일 우 지사를 만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 신부는 "우 지사가 공개 사과 요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나 공개사과의 표현을 놓고 양측의 입장이 달라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우 지사는 이제라도 진실을 고백하고 피해자와 도민에게 공개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임 신부는 "만일 우 지사가 공개사과하지 않을 경우,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노력하겠다"고 경고했다.
임 신부는 아울러 검찰에는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언론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당부했다.
사건 진상 조사 및 중재를 맡았던 임 신부의 이같은 입장 표명으로 그동안 우도지사측이 주장해온 '정치적 음모설'은 더이상 설득력을 잃게 됐으며, 그 결과 우도지사에 대한 검찰 당국 및 여성부 조사도 한층 분명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음은 천주교 제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임문철 신부가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이 성명서는 사제단의 입장과는 별개로 임 신부 개인의 명의로 발표됐다.
***우근민 도지사 '성추행' 사건에 대한 천주교제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
우리는 도지사 '성추행' 사건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이 사건이 정의와 사랑안에서 지혜롭게 해결되어 더 이상 제주 사회 안에 거짓과 혼란, 반목과 갈등이 초래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양측의 화해와 용서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노력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지금의 현실은 우려했던 대로 불의와 증오 속에 불신과 거짓, 반복과 갈등이 극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의구현사제단은 그간의 경과를 알리고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처음 이 사건을 접한 우리는 다른 도민들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상충되는 상식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첫째는 도민에 의해 선출된 도지사가 대낮에 집무실에서 한 여성단체장을 상대로 성추행을 한다는 것이, 더구나 선거를 앞두고 '오이 밭에서 신발 끈 매기'도 조심해야 할 이 시기에 일어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상식이었다. 또 하나의 상식은 이곳에서 미장원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어린 두 딸을 가진 평범한 한 여성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하여 현직 도지사를 상대로 공개적으로 고발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블라우스 단추에서 외투 단추로 번복된 발표내용, 녹음기를 휴대한 과정 등으로 인하여 진술의 진실성과 외도에 대한 의심 등도 생겨서 도지사의 어떤 과도한 행동을 불쾌하게 여긴 나머지 과장된 공세를 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애매한 추측 속에서 쌍방이 가지고 있다는 물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3월 4일 여민회를 통하여 도지사와의 면담 녹취록을 직접 살펴보고, 그간의 정황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그 결과 고모씨의 주장이 사실이며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도 개입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이를 시인하지 않고 정치적 음모로 돌아가는 도지사가 도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회의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거짓이 제주사회에 확대 재생산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이중삼중으로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도지사의 사퇴 촉구 방안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3월 6일 고씨와의 면담을 통해 고씨가 도지사의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고 다만 도민에게 사실을 인정하고 공개사과하며 정치적 음해라고 모함한 부분에 대해 피해자와 여민회 등 시민단체에 사과하면 그것으로 용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기에, 당시 면담에서 유일하게 동석하여 고씨의 의사를 함께 확인한 제주YWCA 사무총장 문영희씨와 함께 3월 7일 도지사 공관에서 도지사를 면담하여 공개사과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다만 이런 요구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자칫 정치적 압력으로 비추어져 도지사의 결단을 힘들게 할까 염려하여 비공개로 촉구한 것이지 어느 쪽에 유리 혹은 불리하게 타협이나 중재하려던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도지사는 우리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공개사과의 표현을 놓고 피해자와 도지사 측의 인사와 여러 차례 중재를 한 것이 사실이다. 피해자는 보다 분명한 사실 시인을 원했고, 도지사 측은 완곡한 표현을 원했기 때문에 양측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거의 합의에 도달한 적도 있었으나 공개사과 이후 법적, 사회적인 완벽한 마무리에 대한 쌍방의 신뢰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결국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이 협의 과정에서 우리 사제단이 더욱 치밀하게 접근했다면 또한 양측에 더욱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하며 도민들에게도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일부 도민들에게 우리가 어느 쪽을 편드는 것처럼 비추어졌다면 이 또한 우리의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하며 사과한다. 우리는 누구의 편도 아니고 다만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공개하게 됨으로써 누군가 부담을 지게 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공개하는 이유는 우리의 활동을 오해하거나 이용하고자 하는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며, 혹시 부담을 지게 될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진심을 양해하고 용서해 주기를 청하는 바이다.
위와 같이 그간의 경과를 공개하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1. 우리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고씨의 증언과 증거들을 통해 신앙적 양심에 의거 고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믿는다.
2.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이제라도 솔직히 진실을 고백하고 피해자와 도민에게 공개사과할 것을 촉구한다. 이것은 그 동안 우지사를 믿고 지지해온 도민들과, 아직도 성추행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많은 도민들에 대한 마지막 도리이기도 하다.
3. 우근민 제주도지사와 주변인사들은 고씨에 대한 일체의 모함을 중단하라. 고씨 뿐 아니라 그의 어린 두 딸과 주변 인물들이 겪는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더 이상 가중시키지 말아야한다. 우근민 제주도지사 역시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일 뿐 아니라 한 가장으로서, 또 일생을 공직에 헌신해 왔으며 도민에 의해 도지사로 선출된 공직자로서 더욱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권리가 피해자에 대한 음해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4. 고씨 또한 독실한 신앙인임을 자처한 만큼 신앙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용서와 화해를 위해 애써 주기 바란다.
5. 검찰은 이 사건의 여파로 제주도민이 겪는 갈등과 혼란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해 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6. 언론도 이 사건 취재와 보도에 있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임해 주길 바란다.
7. 만일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공개사과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노력할 것이다.
2002. 3. 20
천주교제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임문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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