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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홍의 통일관, '실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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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주홍의 통일관, '실용은 없다'

[기자의 눈] 문제작 <통일은 없다>를 읽고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지난주 자신의 극단적 대북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그런다"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싶어 저 유명한 <통일은 없다>를 사서 읽어봤다.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그런지 원래 잘 안 팔리는 책이어서 그런지 구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그의 반북(反北) 이데올로기와는 별도로 그를 둘러 싼 갖가지 의혹들이 줄줄이 나왔다. 자녀 이중국적, 부동산 투기 의혹, 재산 신고 축소·은폐 의혹, 교육비 부당공제 의혹까지. 오늘 보니 학술진흥재단에 등록된 논문이 최근 10년 간 한 편도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쯤 되면 대북인식이고 뭐고 '아웃'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통일은 없다>를 괜히 샀다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책을 샅샅이 읽어봤다. 큰 글씨체로 줄간격을 넓게 잡은 276페이지짜리 하드커버 서적을 읽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 ⓒ연합뉴스

혐오를 넘어 공포로

그러나 <통일은 없다>를 다 읽고 나서 받은 첫번째 느낌은 남주홍 내정자가 이번 국면에서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그토록 증오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해 마지않는 남한 내 친북세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정말 '신념의 강자'였기 때문이다. 마침 그는 "청문회를 벼르고 있다"는 놀라운 발언도 했다.

"북 지도부는 지금까지 대남정책 시행에 있어서 새로운 용어와 개념을 끊임없이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관되게 반복 강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그것에 익숙해지고 마는 일종의 자기마취 현상의 악순환을 유발해 왔다. (…) 얼마 전 우리 통일부 장관이 북 대표를 자연스럽게 '동지'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같은 현상으로 보면 된다."

"이(우리민족끼리) 전략은 이미 남한 내 각계각층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친북세력을 확산시켜서 남한이 스스로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을 수용하게끔 유도하자는 비군사적 방법의 대남적화 전략이다."


<통일은 없다>를 통해 만난 남주홍은 북한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통일전선전술이라는 엑스칼리버를 휘둘러 남한의 친북세력을 분기시키고 남한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 한미동맹과 튼튼한 안보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편견,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좌파정권' 운운을 뛰어 넘는 어떤 강한 신념이었다.

낯익은 두려움

북한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남주홍이 자신의 공북(恐北)적 편견을 설파해 대중들을 선동하는 얘기를 조금만 더 보자.

"그(김대중 전 대통령)가 일관되게 문제의 6.15공동선언을 일종의 '통일대헌장'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그대로 휘말려 오히려 우리 체제가 먼저 '급변'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6.15선언식 통일은 적어도 북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남조선식 남북연합(낮은 단계 연방제)'에서 시작하여 '북조선식 높은 단계'로 가는 고려연방제 통일의 변형에 불과한 것이다. 한마디로 6.15식 통일은 6.25식을 단지 평화적인 방법으로 바꾼 것뿐이다."


이런 대목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남주홍의 사고방식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미국을 미워하고, 미워하다 보니 무슨 일이건 미국에 책임을 묻고, 그 결과 미국의 능력을 실제보다 훨씬 강하게 만들어주고, 그러다가 끝내 두려워하게 되는 남한 내 일부 극단세력의 사고방식 말이다.

황우석 신화를 깨버린 언론들이 미국 CIA의 사주를 받았다고 믿고, 이회창을 컴백시킨 것 역시 CIA의 음모라고 여기는 이들. 남주홍이 증오하는(두려워하기도 하는) 그 세력들과 남주홍은 닮아 있었다.

그 '극단세력'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약 1년에 걸쳐 '2001년이 되면 김정일이 남북통일대통령이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북한을 정말 대단한 존재로 여긴다는 점에서 "6.15식 통일은 6.25식을 바꾼 것"이라는 남주홍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남주홍 내정자는 통일관에 대해 "빠른 통일이 아니라 바른 통일을 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통일은 없다>를 보면 그 바른 통일이란 게 대체 뭔지도 나와 있지 않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가져야 할 통일 혹은 평화정착에 대한 뚜렷한 로드맵이 없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추상적이기 이를 데 없다.

"전략현실적으로 일단 최악의 경우를 상정, 급격한 현상타파인 휴전체제 급변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 분쟁의 갈등구조를 풀기 위한 위기관리와 통제의 전략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제 보편적인 국제위기관리 협상의 게임의 룰을 북한에게 강요할 수밖에 없다."

그저 좋아 보이는 말만 가져다가 쭉 배열해 놨다. 남주홍 정도 되면 나올 법한 '탱크를 몰고 주석궁에 들어가 태극기를 꽂아야 통일이다'라는 식의 화끈한 맛도 없다. "현재의 북한은 결코 우리의 통일 대상이 아니다"라며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지난 10년간 포용정책의 사령탑이었던 통일부 당국자들은 이런 장관 내정자의 청문회를 지원하기 위해 대체 어떤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비애를 느끼고 있을 그들이 너무나 안쓰럽다.
▲ 남주홍 내정자의 문제작 <통일은 없다> ⓒ프레시안

'MB 코드'와도 안 맞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지난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왔던 장면을 소개했다. 이명박 후보는 김 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얘기를 한참 듣고 나서 "각하, 어쩌면 그렇게 저하고 똑 같습니까"를 연발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라며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전제조건을 버리지 않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의문이지만 크게 보아 포용정책의 범주 안에 있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이 정녕 그러하다면 남주홍은 아니다. 이명박식 실용외교와 남주홍의 가파른 이념은 코드가 맞지 않는다. 낡디 낡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쳐 있고 북한에 대한 증오를 넘어 공포감을 품고 있는 이가 어떻게 실용주의적 대북정책을 집행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청와대가 결단해야 한다. 남주홍을 남겨 둠으로써 4월 총선에서 극우파들의 표를 뺏기지 않겠다는 계산도 무효가 돼버렸다. 자유선진당도 남주홍은 아니라지 않는가.

끝으로 남주홍을 '한국의 네오콘'이라고 부르는 것은 네오콘을 모독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네오콘은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를 주도한 세력 중 하나다. 적어도 한 번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르게 굴렸던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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