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15개 사회·학술단체 주최로 20일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어디로' 토론회에서 외교안보분과 발제를 맡은 구갑우 교수(경남대 북한대학원 정치학)의 지적이다.
"'실용'은 '항상 옳다'는 독단주의의 거부에서 출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실용주의 원칙'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사실상 북한에 대한 '이념적 적대'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최근에는 통일부 존치를 염두에 두고 국무위원으로 발탁된 '대북 강경파' 남주홍 교수의 '이념적 편향성' 문제를 두고 학계 및 사회단체들의 반발마저 불거지고 있는 있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 <통일은 없다> 저자가 통일부 장관?)
구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내 세우지만 선험적으로 설정한 가치, 예를들면 한미동맹의 창조적 재건에 기초해 이익을 계산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주장을 폈다.
그는 "힘과 동맹을 절대시하는 태도는 독단주의"라며 "실용주의의 두 가지 요체는 이익을 평가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결과주의, 또 '항상 옳다'는 것을 전제하는 독단주의의 거부"라고 강조했다.
구 교수는 "즉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철학적 기초는 실용주의가 아니라 선험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 힘의 우위에 입각한 정책을 실천하고자 하는 '도덕적 현실주의'와 유사하다"고도 했다.
구 교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도덕적 현실주의'는 미국 부시1기 행정부가 견지한 대북정책의 특징이기도 했다. 구 교수는 "도덕적 현실주의에 경도돼 있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도덕적 현실주의는 북한을 교정이 필요한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고 본질적으로 타자화하는 인식론, 북한을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 폐쇄적 정치회로, 미국에서 수입한 오리엔탈리즘의 덫"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도덕적 현실주의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한반도 평화라는 보편적 원칙 하에서 독단주의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해체 논란으로 새 정부의 정체성 확인된 셈"
숭실대학교 정치학과 이정철 교수는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북한을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기준'이 '묻지마 한미동맹'의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면 이는 5·6공 시절의 낡은 외교, 낡은 통일론으로의 퇴행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한미동맹 쏠림현상'과 고이즈미 전 총리 시절 일본이 보여 준 '묻지마 미일동맹론'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당시 모든 대외정책의 기준이 미일동맹이라는 단순한 외교논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일본의 리더십은 미국에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다"면서 "일본 무시하기(Japan Passing)현상은 일본 외교가 자초한 것이라는 평가는 일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일본의 경우 부시 행정부라는 매우 당파적인 리더십에 눈높이를 맞춘 것이었지만 이제 미국의 리더십도 바뀌는 등 아시아·태평양의 지정학에 변화가 도래하는 만큼, 한국이 일본의 '묻지마 동맹'을 벤치마킹하기에는 상황과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사실상 존치가 기정사실화 되긴 했지만 최근 정부조직법 개편논란 속에서 불거진 '통일부 해체 논란'에 대해선 "이 논란 자체만으로도 신(新) 정부의 정체성과 5년의 운영계획이 충분히 확인된 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애초 추진하던 통일부 폐지-외교통일부 설치에 대해 이 교수는 "이는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 대 국가라는 일반관계로 본다는 구상의 발로"라면서 "새 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 공공성이 아니라 기회비용 개념을 선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기회비용 개념의 선호'는 경협의 축소 혹은 폐지, 나아가 남북관계 자체의 경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이 교수의 경고다.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경협사업은 '투자'와 '이익회수'라는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실제 통일부 업무는 실무적 관점에서 보면 다른 부처들이 나눠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통일부 업무 자체가 정무적인 성격을 매우 강하게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즉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와 무관하게 그 조직의 존재 자체가 상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통일부와 맞물린 국정원 개편…남북관계 10년 무시하는 발상"
특히 2003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최근 불거진 '국정원 개혁' 논란을 '통일부 폐지론'과 연관짓는 분석을 제기해 주목된다.
서 교수는 "국정원 개편의 핵심은 북한 담당인 3차장 폐지인 것 같은데, 이는 통일부 폐지와 맞물려 있다"면서 "그러면서 제3국에서의 휴민트(대인 정보) 강화를 얘기하는 모양인데 이는 지난 10년 간의 남북관계 변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북한같은 폐쇄사회에서 공작으로 어떻게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느냐"면서 "화해협력에 따른 대북 정보야말로 정말 고급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동아일보>는 '새 정부 고위직 내정자'를 인용해 "신임 국정원장 인사 이후 단행될 조직 개편에서 현행 1차장(해외), 2차장(국내), 3차장(북한) 체제가 1차장(해외+북한), 2차장(국내) 체제로 간소화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좌도, 우도 없다"는 남주홍, '네오콘' 이미지 떨치기?
한편 그 동안 자신의 저서나 각종 강연회 등에서 '강경 대북론'을 누누히 강조해 왔던 남주홍 국무위원 후보자는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19일 워크숍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지난 10년을 꼭 잃어버린 10년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좋은 경험을 한 것이고,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새 정부에서 대북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될 자신을 두고 '한국의 네오콘'이라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을 다분한 의식한 발언이다.
남 후보자는 "햇볕정책의 정신과 목적은 이해한다"면서 "다만 방법에 있어서 너무 서두르고 온건책으로 일관한 서투름을 지적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그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면서 "무엇보다 국익을 생각해 국정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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