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에게 발포를 허용했다는 내용을 담은 무초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서한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최근 '노근리 학살이 현장 병사들에 의한 우발적인 사고였다'는 2001년 노근리 조사보고서의 결론을 바꿀 근거가 없다고 통보해와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는 30일 이같은 내용의 미국측 통보 내용을 공개하면서 우리 정부 역시 미국의 해석이 "대체로 이치에 닿는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근리사건 피해자 측에서는 무초 서한에 대한 미국 측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고, 1950년 7월 25일 대구 피난민 대책회의 이후 나온 많은 자료들이 미군의 조직적인 사살 명령이 있었음을 증명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무초 서한이란 무엇인가
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 기간 중이던 1950년 7월 26일 미군들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 쌍굴다리 밑에 피난민들을 모아두고 사격을 가해 250여 명(신고자 수 기준)의 사망자를 낸 양민학살사건으로 2001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유감성명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성명 발표와 동시에 발표된 한국과 미국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이 사건이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난민 속에 인민군이 포함됐다고 생각한 현장 병사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며 조사보고서가 축소·은폐됐다고 주장해 왔다. 또 지난 5월 29일 미국의 <AP> 통신은 사건 하루 전인 7월 25일 대구에서 열린 미군의 피난민대책회의 내용을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정리해 노근리사건이 일어난 26일 미 국무부로 보낸 이른바 '무초 서한'을 공개해 학살이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증명했다.
이 무초 서한에는 "만약 피난민들이 미군 방어선의 북쪽에서 출현할 경우 경고사격을 하되, 이를 무시하고 남하를 강행할 경우 (피난민들은) 총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무초 서한이 2001년 조사보고서에는 왜 빠졌는지에 대해 확인 요청을 했고 미 국방부는 지난 9월 말 이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보내왔다. 외교통상부는 미국으로부터 온 이 공문을 국방부 등 유관기관과 검토한 끝에 미국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30일 밝혔다.
미 국방부 "미8군 사령관이 제안된 정책 집행 안하기로 했다"
미 국방부는 외교부로 보낸 공문에서 무초 서한은 무초 대사가 딘 러스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보낸 '개인서한'으로 미 육군 감사관실의 노근리 조사팀이 2000년 노근리 조사 당시 이미 검토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노근리 조사팀은 무초 서한의 내용이 승인된 정책이나 일선 부대에 전달된 정책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2001년 노근리 조사보고서에 무초 서한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이어 "무초 서한은 7월 25일 대구회의에서 논의됐던 정책의 초안에 관한 무초 대사의 인상을 담은 것으로 워커 (주한 미8군) 사령관은 무초 서한에 언급된 정책제안을 집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그런 정책이 전혀 승인된 바 없으며 일선 군인들에게 하달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미 국방부는 이에 "노근리 조사보고서의 결론을 바꿀 근거를 제공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부 "사격 제안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2001년 조사 당시의 결론은 노근리에서의 사격이 조직적인 명령에 따른 것이었는지에 대해 충분한 증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며 "미8군 보고서가 더 권위가 있고, 사격에 대해서는 미8군 사령관이 승인하지 않았으며, 예하부대에 (사격)지침을 하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조직적인 사격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미8군 보고서'란 7월 25일 대구 피난민대책회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2001년 노근리 조사보고서에 언급된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피난민들에게 발포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이 당국자는 "대구회의에서 사격에 대한 얘기도 일부 있지 않았나 싶은데 결론은 확실치 않다"면서도 "미8군 사령관이 사격명령을 포함하는 지침을 승인하지 않았고, 그 지침이 예하부대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 국방부가 보내온 통보 내용에 '무초 서한에 언급된 정책 제안(proposed policy)'이라고 되어 있어 피난민들에게 발포를 하자는 제안이 대구 회의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질문에 "문맥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사격 제안이 있었다고) 이해된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하겠으나,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게 진실이다. 정확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피해자측 "미국 대사가 개인 서한 보낼 정도로 한가했나"
그러나 노근리 피해자 측에서는 미국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 피난민대책회의 이후 미군 상부에서 예하부대에 하달된 지침들을 보면 워커 사령관이 피난민들에 대한 발포를 승인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대목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8월 17일자 미군 제25기병사단 제35보병연대의 전투일지에는 "우리 방어선으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은 적으로 간주될 것이고, 가능한 모든 발포 수단을 동원해 해산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어 조직적인 발포 명령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노근리사건 와중이었던 7월 27일 미 제25기병사단 윌리엄 킨의 명령서에도 "이 지역에 보이는 모든 민간인들은 적으로 간주될 것이고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8월 29일 미 제1기병사단(노근리학살을 일으킨 제7기병연대의 상급부대) 사단장 게이 장군은 "북쪽에 있는 모든 피난민을 '사냥감(fair game)'으로 여기라"고 직접 언급했다.
이같은 자료들은 비록 2001년 조사에 인용된 미8군 보고서에는 적시되지 않았으나 대구 피난민대책회의에서 사격에 대한 결정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초 서한은 바로 그 점을 강력히 보여준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노근리사건대책위원회 정구도 부위원장은 "당시 일선 부대에 하달된 여러가지 자료를 보면 피난민들에 대해 '적으로 간주하라' '적절히 조치하라' '사냥감으로 보라'는 표현들이 나온다"며 "이는 발포란 말을 직접 할 수 없어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상부의 사살 명령이 있었음을 명백히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사격이 제안됐지만 워커 사령관이 승인하지 않았다는 미 측의 통보 내용에 대해 정 부위원장은 "승인하지 않았는데도 수많은 양민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반면에 워커 사령관이 사격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걸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또 무초 서한이 '개인 서한'이라는 미국의 해명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 부위원장은 "미국 대사가 그 전쟁의 와중에 사신(私信)이나 보낼 정도로 한가하냐"며 "회의의 내용이 심각했기 때문에 다음날 곧바로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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