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사실은 <프레시안>이 12일 입수한 조사 당시의 국방부 내부문건 10여 편을 통해 밝혀진 것으로, 국방부 조사반이 '기술적인 조사'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한미동맹이라는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시하고 월권을 일삼았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29일 노근리사건이 미군 상부의 명령에 의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한국전쟁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의 서한이 <AP> 통신에 의해 보도되면서 미국의 2001년 조사보고서가 축소·은폐됐음이 증명된 바 있다.
그에 따라 미국이 노근리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문건들은 한국 정부의 보고서 역시 극심한 '미국 눈치보기' 속에서 나온 또 하나의 '은폐보고서'일 수밖에 없음을 방증하고 있다.
국방부 장관이 진두지휘
미국을 두둔했던 국방부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조사를 담당하던 국방군사연구소(현 군사편찬연구소) 소장 명의로 6.25 기념사업단장에게 보내진 '노근리사건 전장실상 보도관련 협조'라는 제목의 공문.
진상조사가 한창이던 2000년 3월 작성된 이 공문에서 국방부는 언론의 6.25 관련 각종 특집 보도에서 노근리사건의 이해를 위해 "(한국전쟁시) 북한의 게릴라 전술 및 피난민 위장 침투사례"를 주요 보도내용에 포함시키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노근리에서의 총격이 '피난민 속에 침투해 있는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미군의 주장에 설득력을 주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국방부는 이어 "한국전시 미군의 기여도 및 작전상의 고충을 재조명"하라면서 "냉전시대의 공산화 전략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갑자기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의 고충을 이해"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의 전쟁책임을 집중 부각"하라면서 "노근리사건의 궁극적인 책임은 북한의 전쟁 도발"임을 주요 보도내용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어 미국의 학살 책임을 약화시키는 여론전에 국방부가 힘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
이 공문에는 특히 이같은 내용의 '협조 사항'이 "장관님 구두지시"에 근거하고 있다고 되어있어 조성태 당시 국방부장관(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노근리사건의 성격을 미국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를 진두지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공문의 작성자는 지난해 4월 전역 직후 용산기지 이전 사업권을 따내려는 미국계 기업 'KBR 한국지사' 부사장으로 취임해 물의를 빚은 이환준 예비역 대령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국방부의 사시(斜視)…"감성적 시각이 문제의 발단"
국방부가 노근리사건 외의 유사 양민학살 피해자들의 청원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세웠던 종합적인 전략을 보여주는 문건은 2000년 4월 25일 작성한 '노근리사건 사후처리 방향 구상'이다.
이 문건에서 국방부는 노근리사건에 '고의적 살상'의 가능성 등 '독특성'이 있다고 보고 "독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여타 유사 사건으로의 비화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교한 사후처리 절차와 방책의 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노근리는 워낙 특별하니까 조사를 하는 것일 뿐'임을 강조하는 전략을 써서 60여건의 다른 양민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배상 요구를 따돌리고자 하는 미국의 방침을 돕자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여타 사건과의 차별화 전략 ▲전쟁 참상에 대한 감성적인 대응을 삭히고 녹이는 '발효' 전략 ▲피해·가해 양측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명예회복' 전략 등을 '적용 가능한 전략'으로 꼽았다.
국방부는 '발효 전략'에 대해 "비인간적 전쟁의 본질과 사건 당시의 배후 상황을 이해시키고 설득해 나갈 수 있는 적시적절한 소재와 절차를 구사하면서 단계적으로 감정을 둔화 내지 무마시켜 이성적 판단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는 다른 문건에서도 '사건의 배후 정황 부각'을 강조하면서 "전쟁 참상에 대한 감성적 시각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으므로 사건의 근원 요인인 배후 정황에 대한 홍보를 통해 전쟁상황에 대한 이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물론 노근리 논란이 '전쟁 참상에 대한 감성적인 시각에서 발단'됐다고 보는 국방부의 시각을 보여준다.
조사 내용보다 '외모' 중시했던 국방부
이 외에도 2000년 11월 국방부 진상조사반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홍보 기본계획' 문건에는 국방부가 조사의 실질 내용보다는 언론플레이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건은 '양국 조사반간 긴밀한 공조모습과 공정한 사건해결의 의지를 부각'하는 것을 홍보의 기본 방침으로 삼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과 중립적 입장의 냉철한 활동 자세를 집중 묘사하여 조사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국방부는 '노근리 사건의 성격상 곤혹스러운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할 것'과 '미국의 공산화 차단 역할 및 미군의 숭고한 희생을 재강조할 것', '과거정리를 통해 미래를 향한 새로운 한미관계 구축 노력을 다짐할 것' 등을 강조해 정치적인 판단이 조사에 개입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국방부는 조사 개시 초기였던 1999년 12월 29일 작성한 '진상조사 진행상황' 문건에서도 '전쟁을 도발하고 피난민 대열에 게릴라를 잠입시킨 북한의 책임도 재조명할 것'과 '미 제1기변사단이 후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사건이 돌발했음'을 강조하면서 미군의 책임을 최대한 덜어보려는 시도를 계획했다.
국방부의 이같은 태도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사잡지 <한겨레21>은 조사가 진행중이던 2000년 8월 10일 '노근리사건 조사 결과'라는 제목의 국방부 내부 문건을 입수해 폭로했다.
그 문서 역시 국방부가 진상규명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줬는데, 이번에 발견된 10여편의 문건들은 조사가 시작됐던 1999년 10월부터 한미 양국이 조사 결과를 발표했던 2000년 1월을 지나 그 이후까지도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지속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심각하게 미국의 눈치를 보며 조사를 진행했던 국방부 조사반은 피해자들은 물론 노근리사건을 총괄했던 정부내 상위기관에조차 조사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모임인 노근리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사건의 진상만 캐도록 되어있던 국방부 조사반이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등 불필요한 부분에 신경을 너무 많이 썼다"며 "그런 상황에서 나온 한국 정부의 조사 보고서 역시 축소·은폐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고 그런 흔적은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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