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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학살, 상부 명령에 의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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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학살, 상부 명령에 의해 일어났다"

"경고사격 무시하면 사격하라" 주한 미대사 서한 발견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 학살이 일반 병사들에 의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상부의 조직적 명령에 의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으로 발견돼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AP> 통신은 29일 한국전 당시 존 무치오 주한 미국 대사가 미 국무부 앞으로 보낸 서한이 한국전쟁 중 미군 방어선에 접근하는 피난민들을 향해 미군이 총격을 가하라는 방침이 세워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치오 당시 주한 미 대사는 딘 러스크 국무차관보에게 보낸 서한에서 "만약 피난민들이 미군 방어선의 북쪽에서 출현할 경우 경고사격을 하되, 이를 무시하고 남하를 강행할 경우 (피난민들은) 총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통신은 특히 이 서한이 1950년 7월 26일 충북 영동군의 노근리 학살사건이 자행된 바로 그 날 작성된 것으로 보아 이같은 방침이 사전에 세워졌으며, 미 정부의 고위관리도 이를 알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서한은 이같은 방침이 제7기병연대에 의한 노근리 학살이 발생하기 하루 전인 1950년 7월 25일 한국에서 열린 고위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밝히고 있어 노근리 학살이 미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저질러졌음을 추정케 한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미 8사단 고위 참모와 무치오 대사를 대리했던 해롤드 노블 1등 서기관, 한국 관리 등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타계한 인물들이어서 이 서한을 받은 미국 정부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노근리에서 학살된 사람의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미군은 그 수를 대략 100명 미만에서 수백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으며 한국인 생존자들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대략 400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노근리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마을 주변에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어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 외에도 비슷한 살상행위들이 벌어져 수백 명의 양민들이 죽어갔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AP>는 이 서한 외에도 미군 자료 가운데 비밀해제된 문건에서 당시 미군 지휘관들이 양민에 대한 무차별 살상 행위를 명령 또는 승인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19건이나 찾아냈다.
  
  1999년 <AP>의 특종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미 국방부는 사흘 간의 조사 끝에 전쟁이라는 상황으로 겁에 질린 병사들이 피난민 틈에 적이 숨어 들어오는 것을 우려해 지휘관의 명령 없이 발포한 "불행한 비극"으로 "비계획적 살상"이라고 규정했으며 2001년 최종조사보고서를 통해 노근리학살의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서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이같은 미 국방부의 주장을 설득력을 잃게 됐다.
  
  그러나 무치오 대사의 서한은 제7기병연대의 행동이 미군의 방침에 따른 것이었으며, 특히 관련문서들에 따르면 그 뒤 수 개월 동안 미군 지휘관들은 이 방침에 따라 피난민에 대한 사격을 명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82년 비밀해제된 무치오 대사의 이 서한은 전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며 현재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사서로 일하고 있는 사르 콘웨이-란츠(Sahr Conway-Lanz)에 의해 발굴됐다. <AP>는 란츠 씨로부터 이 서한의 사본을 입수했다.
  
  란츠 씨는 "관련 증거들을 검토해 보건대 (노근리학살에 대한) 펜타곤의 설명은 더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란츠 씨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올 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최근 미 대외관계역사가협회가 주는 '스투어트 버나스 상'을 수상했다.
  
  한편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였던 미 육군의 보고서의 자료란에는 무치오 대사 서한의 마이크로필름이 수록돼 있으나 정작 300쪽짜리 보고서에는 이 서한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AP는 전했다.
  
  이와 관련, 미 육군의 조사작업에 외부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했던 한반도 전문가 돈 오버도퍼는 당시 무치오 대사의 서한을 보지 못했다면서 "육군이 무슨 생각으로 모든 관련자료를 샅샅이 조사했다고 주장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 국방부 베치 와이너 대변인은 육군 보고서는 "13개월간의 조사에서 확보된 관련 사실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제시했다"고 말했으며, 2001년 당시 육군성 장관이었던 루이스 칼데라 뉴멕시코대 총장은 "수백만 장의 자료들을 조사하는 가운데 놓쳐버린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국제적십자위원회의 국제법 담당 책임자인 프랑수와 부뇽은 문제의 서한을 검토한 뒤 당시 미군의 방침은 명백한 전쟁범죄에 해당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AP>는 전했다. 부뇽은 민간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적절한 사전 경고"를 해야 하며 "이 서한에 나타난 것과 같은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 공격은 교전수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또한 미 육사의 전쟁범죄 전문가인 개리 솔리스는 무치오 대사의 서한에 나타난 방침은 명백히 "교전수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군인은 자신의 생명을 지킬 권리가 있지만 "비전투원에 대해 고의적 사격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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