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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코리아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지고 있다"

[자이툰 병사들을 데려오라·끝] 정계-학계-시민사회 좌담

이라크에 주둔중인 자이툰 부대의 파병 재연장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돼 12월 8~9일 본회의 표결을 목표로 30일 현재 국방위원회에서 심의중에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과 언론은 재연장 동의안에 대한 '조용한 처리'를 바라는 듯 자이툰 부대 주둔 1년 2개월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본회의 표결만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과 영국조차 주둔군 감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1000명 감축만을 얘기할 뿐 언제 어떤 상황에서 철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파병반대국민행동'과 공동 기획한 '자이툰 병사들을 데려오라' 시리즈를 9회로 마치며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 대표들이 참여한 좌담회를 열어 자이툰 부대의 1년 2개월을 되돌아보고 자이툰 부대 주둔이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좌담회에는 국회 내에서 줄곧 파병 반대를 주장해 온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 중동 지역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파병반대국민행동 '이라크모니터팀'의 일원으로 이번 기획의 자료를 작성해 온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참석했다. <편집자>

***"한나라당 숭미(崇美), 열린우리당 공미(恐美)의 결과"**

박인규 대표: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에 대한 찬반은 매주 중요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첫 파병안 당시의 뜨거운 찬반 논란에 비해 지금은 찬반의 문제를 떠나 기본적으로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파병을 기정사실화하고 그냥 흘러가는 듯하다. 왜 그런지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이태호 정책실장 : 유독 파병 문제가 나오면 우리 정부나 언론, 시민사회도 적극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다. 그건 아무래도 애초에 파병 문제가 나왔을 때 정부가 내걸었던 논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북핵 빅딜론'과 '한미동맹론'이 제기되면서 파병이 한반도 평화의 대가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인식 혹은 피해의식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김선일씨가 희생되고 나서는 정부나 언론이 현실도피적인 입장을 취해 왔고, 가급적 파병 문제가 시끄럽게 부각되지 않도록 철저히 정보를 통제하고 관리해 왔다.

박인규 : 국회에서 파병 문제에 관한 여야간의 차이는 어떤가?

고진화 의원 : 아무래도 여당 내에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분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주도적으로 파병 반대의 논의를 이끌어 왔고 숫자도 많았다. 한나라당의 경우 파병 반대 서명을 가장 많이 받았을 때가 6~7명이었고 비공식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을 다 쳐도 10명에 불과했다.

지금 와서 보면 우리 사회가 문제를 본질까지 살펴보고 해결하는 민주주의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장병들이 사고를 내면 본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국방장관 사임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논의를 종결시키려 한다. 파병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기보다 분단과 권위주의, 반공보수주의 등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고가 반영된 논의만 하고 말았다. 파병 문제는 전쟁과 반전, 냉전 이후의 국제사회의 평화 재건의 문제 등이 혼재된 것인데 그걸 구분하지 않았다. 또 치밀한 외교전략으로 대응했어야 하는데 냉전 시기 미국이나 한 진영을 대표하는 '진영 외교'를 추종하고 당연시했던 것을 지금도 그대로 따른 결과라고 본다.

<사진 1: 고진화 의원>

전쟁 자체가 정의의 전쟁으로 보기 어려운데,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얘기하지 않고 우리 형편, 즉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면 반대급부로 뭐가 온다는 식으로 공학적인 계산만 했다.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에서도 본질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논의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도 적당히 논의하고 그냥 넘어가는 현상이 재현되는 것 같다.

박인규 : 김대중 정부부터 남북관계에서는 다소 자주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데 남북관계만 벗어나면 다시 미국을 따라가면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임종인 의원께서는 처음부터 열심히 파병 반대를 얘기해 오고 계신데,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임종인 의원 :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의 전쟁 반대 여론은 64%라고 한다. 우리 국민들도 올해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53%가 철군해야 한다고 답했고 연장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들은 13%밖에 안 됐다. 그런데 파병 연장안이 제출됐는데도 조용한 이유가 뭔가. 우리나라에는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숭미파고, 열린우리당 의원 다수는 공미파, 즉 미국을 두려워한다. 우리 국민들과 시민사회, 국회의원들의 심리에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 제재에 대한 걱정이 있다. 그래서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원들과 춤을 춘 것은 쿠르드인들이었다"**

박인규 : 이희수 교수께서는 중동지역전문가로서 우리의 중동 외교가 어떻다고 보는가?

이희수 교수 : 파병 찬반 논의에서는 반대 주장이 국민적 동의와 공감대를 얻었는데 파병이 된 이후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 상태를 기정사실화했고, 시민단체나 언론·학계도 파병이 이미 됐는데도 불구하고 파병전의 반대 논리만으로 대응했다. 파병 이후에 벌어진 현상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중동 관련 학계는 파병 반대보다 찬성의 논리가 강했다. 파병으로 아랍어 통역원 수요가 늘어나고 아랍어로 된 잡지 같은 게 정부나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어마어마한 고용이 창출되니까 전공 학회 입장에서 밥벌이와 관계돼 있어서 그랬다.

언론에 대해서는, 한국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반응과 정서가 객관적으로 보도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자이툰 부대가 있는 곳은 쿠르드 지역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라크인과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지역에 가 있으면서도 그게 이라크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지난 추석 때 자이툰 부대가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춤추면서 이라크 국민들이 한국군의 주둔을 좋아하고 현지 정서가 한국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거기 같이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복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전형적인 쿠르드 복장이다. 그걸 이라크 국민들이나 이라크 밖에 있는 57개국 14억 이슬람인들이 볼 때에는 '왜 저 친구들 앞에서 저러고 있어?'라고 할 것이다. 그 주민들은 이라크인들과 반대편에 있는 민족이다. 그걸 이라크 전체, 아랍, 이슬람권의 정서로 몰아가는 언론의 결정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싶다.

<사진2: 이희수 교수>

평화재건과 전후복구를 명분으로 간 자이툰 부대는 쿠르드 지역 인근의 어느 이라크 지역에도 갈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이라크 파병을 함으로써 이라크 내에서 한국인들의 위험은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라크의 평화재건과 전후복구의 이미지를 심겠다고 갔는데 그런 것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파병 2년을 엄밀히 평가하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과정이 없었다는 것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박인규 : 파병의 명분이었던 북핵 해결과 경제 특수 같은 목표를 달성했는지 평가해보자.

임종인 : 국가이미지는 오히려 실추됐고 얻은 건 없고 잃은 것만 많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고 오히려 꼬이게 만들었다. 베이징 6자회담이 공동성명을 도출하긴 했지만 그것은 한국 정부가 노력했기 때문이지 미국의 도움 때문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아무 것도 받은 게 없다. 정부가 스스로 우리 기업을 이라크에서 나오라고 하고 국민들도 못 들어가게 하니 경제적으로 얻은 게 있을 리 없다. 평화재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랍권에서도 침략세력에 동조하는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6월에 프랑스 세계 법률가대회에 참석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상당히 한심한 사람으로 쳐다봤다. 세계 191개 국가 중에서 3000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나라는 미국, 영국을 제외하고는 한국밖에 없다. 미국말만 듣는 유일한 나라로 비웃음을 샀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이미지가 좋아졌고, 경제도 세계 11위권에 진입했고, 정치적으로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나라가 외교에서는 이렇게 우스운 나라가 돼버렸다.

고진화 : 파병에 관한 국회 보고가 몇 번 있었는데, 자이툰 사단장이 냈던 자료들이 오차가 많아서 어떤 실적을 얻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최근 국회 국방위에서 철군 결의안이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실질적인 근거를 가지고 논쟁하기보다 선험적인 얘기만 많았다.

현지 지역 사회와 협력이 이뤄져 장기적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부분도 수천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 활동에 비해서는 실익이 거의 없다고 본다. 한국 기업이나 현지 활동하는 분들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봐야 하는데, 아랍 사회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국가로 인식됨으로써 향후 한국 기업이 이득을 볼 수 있느냐에 대해 회의가 든다.

외교라는 것이 철저한 주고받기니까 파병과 북핵을 연계하고자 했던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위해 통일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주변국의 협조를 원하나. 그건 평화를 위해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 정말 큰 것인데 이걸 잃어버렸다. 정부가 얘기하는 동북아균형자론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냉전 이후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외교적 개념이긴 할 텐데, 거기에 비춰봐서도 유럽의 핵심국가들과 외교 다변화를 한다거나 러시아, 중국 등을 설득하는 것을 장기적인 전략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핵심적인 것을 얻지 못하고 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한다.

***"파병-북핵 연계 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태호 : 파병 하면서 정부와 정치권들이 내세운 것이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였다. 파병외교 3년을 보면 그게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핵빅딜론을 봐도 그렇다. 2003년 추가파병 요청이 있을 때 윤영관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파월 미 국무장관을 만나 추가 파병을 하면 북핵 문제를 부드럽게 풀 수 있느냐며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자 파월이 화를 냈다고 한다. 대테러 정책이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정책은 미국의 국가 정책인데 파병 같이 기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미국의 가장 기본적인 국가 정책을 바꾸려고 협상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불쾌하다고 짜증냈다는 거다. 미국의 북핵 정책이 바뀐 것은 이라크에서의 군사적인 압박이 실패했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의 일이다. 김선일 씨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2차 파병을 감행했지만 북핵 문제는 얼어붙었다. 미국은 그에 대해 어떤 당근도 주지 않은 것이다.

<사진3: 이태호>

경제적 실리론도 마찬가지다. 파병했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더 못 들어가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정부는 어떻게 설명할지 의문이다. 세계에서 자국의 실리와 안정을 위해 파병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이 논리 없는 파병이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 파병할 때 논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라크에서 상황이 변화하더라도 대응할 논리, 외교의 원칙이 없다. 이라크 상황이 나빠지건 좋아지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건 없건, 이라크가 테러와 연관이 있건 없건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외교에서 들이댈 원칙이 없는 거다. 실리를 위해서 파병했지 대테러전을 위해 파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취한 실용주의가 외교력을 약화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했다.

국민들은 우리가 식민통치 경험도 있었고 그동안 약소국으로 살았기 때문에 '미국이 너무 세다'는 식으로 겁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교를 담당하고 정부가 그것을 오히려 국민들에게 조장함으로써 자기의 외교 정책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이라크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한했다. 요컨대, 현실주의를 표방했는데 실리는 하나도 없었고 정작 중요한 민주주의를 잃어버렸다. 지난 3년의 외교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87년 이후 어렵게 만들어 온 한국의 민주주의가 복잡한 외풍 앞에서 어떻게 파산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박인규 : 이라크 현지상황을 잘 모른다는 문제가 크다.

이희수 : 중동·아랍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이미지는 성실과 근면,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70~80년대 거의 20년 동안 6만 명 이상의 한국 근로자들이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낮에는 일을 하지 않는 그곳 사회에서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하면서 그 사람들의 가슴 깊숙히 각인된 이미지가 됐고 그게 문화 인프라로 남아 있다. 그게 바로 코리아 브랜드다. 자고 일어나면 고층 빌딩이 올라가 있고 사막에 고속도로를 닦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 그 나라들이 국가적 상징물로 내세우고 있는 빌딩, 대학, 고속도로, 발전소들이 한국 업체들이 지은 게 대부분이다. 그런 속에서 한국과 24시간 같이 살아가는 거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코리아 브랜드다. 중동 가전 시장의 60~80%를 한국 제품이 석권하고 있다. 이건 한국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다. 우리나라 내수시장에서도 한 제품이 30~40% 차지하면 독과점이라고 시민단체가 비난하는데, 아무 이해관계 없는 제3국이 특정한 나라의 고가의 물품을 그 정도로 산다는 것은 그 나라에 미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집에서 한국 제품을 쓰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고, 쓰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고 대화가 안 될 정도의 분위기다. 우리 휴대폰이 30%, 자동차가 40%로 제일 낮은 점유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란이 우리 제품에 취한 금수 조치를 두고 우리가 이란 핵개발에 대한 IAEA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데 대한 외교적인 보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파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직접 대면을 피하기 위해 자이툰이 가 있는 쿠르드 지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곳은 이란과 이라크를 연결하는 곳으로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가장 충실히 대변하는 한국군을 대신 보내서 이란을 간접 압박하는 전술을 펴고 있다. 그게 이란에게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자이툰 부대가 쿠르드에 파병되고, 자이툰의 활동이 쿠르드 독립 인프라 구축으로 명확해지자 시리아, 이란, 터키가 '반쿠르드동맹 특별협약'을 맺었다. 중동의 빅3인 이집트, 터키, 이란 중 두 나라가 반 쿠르드동맹을 맺어 터키, 이란과 우리가 아주 껄그러운 관계가 됐다. 터키와는 50년 역사상 어느 때보다 껄끄럽다. 한국이 철수할 기회가 됐음에도 철수는커녕 연장이나 추가파병을 하니까 그런 불만을 억눌러 오다가 새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한국 상품에 대한 금수 조치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해외 건설 플랜트 수주 1위국이 이란이었다. 그런 이란이 한국에게 대접을 못 받고, 한국이 미국의 입장만 충실히 대변하니까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현상이 오래갈 것 같고, 이란에서 넘어진 도미노가 중동 전체적으로 퍼진다면 우리의 경제적·문화적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이란 금수 조치는 자이툰 파병 때문"**

박인규 : 일부에서는 어차피 후세인이 제거된 상황에서 이라크가 안정적인 정권을 세울 때까지는 우리가 있어주는 게 도리가 아니냐는 논리를 펴기도 하는데, 이라크가 12월 15일 선거를 하면 과연 이라크에 안정적인 정권이 세워져 마음 놓고 철군할 상황이 되는 건지도 궁금하다.

이희수 : 미국의 출구는 거의 없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기대했던 친미적 정권 수립은 물건너간 상태다. 부시 행정부는 누구보다 이걸 잘 알고 있다. CIA 요원들을 동원해 친미적인 허수아비 정권을 만들어 놨는데 대중적인 지지기반이 전혀 없어 미국이 이라크를 떠나면 3개월 내에 무너지게 돼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은 사실상 전혀 없고 반미 일색이다. 침공으로 희생당한 이라크인들이 너무 많고, 근본적으로 침략자에 대해 동정할 국민이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시아파 정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이란의 협조다. 그래서 미국이 총체적으로 이란을 압박하고 있고, 그 압박의 최종 순간에 협상을 시도해 이라크에 만들어진 시아파 정권에 이란이 협력하도록 하고 미국은 원격 조정하는 전략이 있지만, 실현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별로 높아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수니파와 시아파와 쿠르드간의 3각 분열을 만들어 권력 분점을 통해 원격 조정하려는 전략밖에 없는데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전략 없는 미국만 바라보는, 전략 없는 나라다. 우리에게는 무조건 철수하는 것밖에 대안이 없다.

임종인 : 국회 국방위 토론에서도 지금 철군하면 무책임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연장동의안 내면서 1000명을 감군하겠다고 했는데, 감군을 가장 늦게 얘기한 나라도 우리나라다. 우리 국방부 장관한테 그럼 언제 나올 거냐고 물었더니 그런 계획도 없다고 했다. 미국으로부터 연장 요구를 받았냐고 물어보니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자발적으로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으로부터 받는 외교적인 이익이 없다는 거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여러 파병국 이름을 거론하면서 고맙다고 했는데 우리 대통령한테는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이러다가는 미군을 도와주러 들어갔다가 미군보다 더 늦게 철수했던 베트남전 같은 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99%다. 그래도 베트남전 때는 돈이라도 받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모두 부담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대접도 못받고 있다.

<사진4: 임종인>

박인규 : 이라크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이태호 : 이라크 상황이 어떻게 되리라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다. 전체적으로 이 교수의 말에 공감이 간다. 2004년 팔루자 사건이 터졌을 때, 시아-수니 반미 연합이 형성됐었다. 그때 미국과 이라크 정치 세력의 대응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시아파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알 사드르의 메흐디 민병대를 공격해 시아-수니 연합을 깨려고 나자프, 팔루자, 라마디 등 수니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이후 정치 일정에서도 수니파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이라크 분열을 가중시켰다. 또 이라크 내의 저항 때문에 군경 건설이 예정대로 안 되면서 민병대를 이용했는데 그 민병대란 것이 지극히 사병(私兵)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친한 종족이나 사병들이 군경 역할을 하면서 이라크 내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단순히 시아-수니 간 종파적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고, 오히려 미국의 잘못된 점령 정책과 허수아비 정권의 이용 과정에서 이라크 내 무장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 요청 없이 자발적으로 하는 우리의 파병 정책"**

박인규 :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조속한 철군을 원하는데 파병 재연장 동의안이 제출된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임종인 : 지난주 제출된 연장 동의안에 대해 국방위 토론이 30일에 있고 12월 8~9일 경 본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그런데 작년 연장 동의안의 경우를 보면 찬성이 58% 161명이었고 반대와 기권이 117명으로 42%였다. 이번 국회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강력하게 반대 투쟁을 해서 국민들에게 잘 알릴 생각이다. 그래서 12월 1일 파병에 반대하는 여야 의원들이 이라크 자이툰 부대와 바그다드를 직접 방문한다. 이라크 정부 관계자와 언론인들도 만나면서 자이툰 부대가 뭘 했는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어보고 국민들에게 보고할 생각이다.

박인규 : 미국의 경우도 몇 달 전부터 공화당 의원들이 철군 얘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가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할지 모른다는 압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이태호 : 그렇다. 여론조사를 해서 이라크 전쟁이 정당하다고 물어보면 한국인들의 반응은 중동 국가만큼 나온다. 그런데도 파병을 해야 하냐고 물으면 반으로 떨어져 53% 정도가 반대한다. 우리가 파병을 안 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으면 10%대로 또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가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어서 국회의원들이 민심에 겁을 먹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국회의원들도 부도덕한 일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한다. 지난해 파병 동의안과 연장 동의안을 처리하면서 찬성 토론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에 본회의 통과에서 찬성 토론 없이 표결했는데 찬성으로 나오는 의회가 어디 있나.

우리 국방부와 외교부가 국회를 얼마나 핫바지로 여기는지 모른다. 이번에 유엔 시설 경계와 요원 보호 임무를 새롭게 부여받았는데 이번 재연장 동의안은 지난해 연장 동의안과 비교했을 때 1000명 줄인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새로운 임무를 추가로 맡건 안 맡건 국회에 새로운 문구를 추가해 동의를 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이 파병한 부대가 자이툰만은 아니다. 다이만 부대라고 150명 공군 수송단을 보냈다. 그런데 이걸 국회에서 동의 받은 적이 없다. 명백히 위헌인데 국회의원들도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 쿠웨이트에 갔다고 동의받을 필요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 국경을 넘는 순간 모두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국회가 부끄러워 할 문제인데, 이런 문제가 여론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일체 안 하고 있다.

임종인 : 국회 국방위에서는 7월에 낸 자이툰 철군 결의안을 3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상정했고 본회의에 올라가는 것을 여야 모두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동의안을 내면 한나라당은 여당 의견을 통일시켜서 가져오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한나라당 측에 미국이 없었다면 파병 찬성 했겠냐고 물었다. 한나라당은 미국 때문에 찬성하는 것이고 열린우리당은 미국 때문이긴 하지만 정부와의 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찬성을 한다.

***반전 의원 4명, 자이툰·이라크 긴급 시찰 계획**

고진화 : 전시작적권 환수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우리 전략을 가지고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또 외교나 국익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 냉전적 패러다임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균형자 외교를 주장할 만큼 국력이 신장됐고, 외교 다변화를 하지 않으면 전혀 일을 풀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희수 : 2년간 자이툰 활동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 현재 학계에서는 자이툰 파병 이후 아랍권 주민들에 대한 한국인 이미지 조사 프로젝트를 계획중인데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무슬림들이 이번 전쟁으로 정신적인 고통과 모멸감을 느꼈던 것은 예배를 보는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었다. 이슬람 역사 1400년 동안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그렇게 격력하게 싸워도 모스크를 폭격하지는 않았다. 하마스 지도자 야신을 표적 살해할 때도 모스크에서 나오는 순간 살해했다. 그런데 미군은 테러분자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예배를 보고 있는 약 30개의 모스크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이건 이슬람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우리가 만약 파괴된 모스크와 이슬람 문화재를 복구해 주는 사업을 한다면 '미국은 부수지만 한국은 문명을 복원해준다'는 이미지를 아랍인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다면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진 5: 좌담회 장면>

박인규 : 고은 시인이 "김 소위, 장 하사 이라크 가지 마라. 쉽게 끝나는 전쟁이 아니다. 백년 간다"고 했는데 지금 철군 동의안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과연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얘기하며 마무리하자.

임종인 : 오늘 나온 얘기들을 가지고 국회에서 반대 토론을 잘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도록 하겠다. 국민 여러분들은 다른 민족의 피로 우리 민족의 평화를 살 수도 없고 사서도 안 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고진화 :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일방주의적인 성격을 탈피해야 한다. 평화라는 가치를 공유하자고 우리가 오히려 설득해야 한다. 핑계를 대면서 미국에 끌려다니지 말고 유럽 국가들과의 연대 같은 것을 통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임종인 : 미국은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다. 앞으로도 분쟁이 계속 될 텐데 거기에 우리가 계속 끌려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구한말 같은 약소국이 아니다. 자신감을 갖고 미국과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북한 무력 남침론, 북한 무력 우세론 같은 허구를 깨고 미국에 대한 의존이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또 세계 시민들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랍인들, 이라크인들이 우리에게 뭘 잘못했나.

이희수 : 이제 우리는 독자적인 글로벌 세계 전략을 가질 때가 됐다. 한미동맹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현실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의 이익과 우리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57개국 14억의 이슬람권과 왜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나.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렇게 되면 과연 지구촌에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겠나. 이런 입장에서 우리가 눈을 뜨고 하나라도 친구로 끌어안는 노력을 하는 시각에서 파병 문제를 봐야 한다.

이태호 : 파병 반대 운동이 3년 동안 결과적으로 계속 패배해 왔지만 한국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팔레스타인과 중동에 대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그것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는 게 성과라고 본다. 자이툰 부대도 언젠가는 나오겠지만 그래서 파병 반대 운동이 불필요한 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우리가 국경을 넘어서는 주제에 대해 어떤 민주주의적 논의와 결정의 과정을 거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박인규 : 오늘 얘기 못한 것 중의 하나가 언론의 역할인데 시간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장시간 깊이 있는 분석과 '진정한 국익'에 대한 좋은 의견들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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