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 사흘째인 6일(현지시간) 무역구제 분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은 중단됐지만, 이것이 한미 FTA 협상의 진척속도를 낮추거나 협상의 결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종훈 우리 측 협상 수석대표는 이날 저녁 9시 예정대로 열린 브리핑에서 지난 사흘 간의 협상진척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무역구제 분과 등 3개 분과 및 작업반의 협상은 중단됐지만, 나머지 분과들의 협상은 전반적으로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종훈 대표는 무역구제 협상의 중단이 협상의 실패로 해석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지난 2차 (서울)협상에서도 미국 측이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에서 불만을 표현하면서 이 작업반과 다른 몇 개의 분과에서 협상이 중단됐지만 그 후에도 4차, 5차 협상이 있었다"면서 "(한 분과의 협상이 중단되는) 이런 해프닝이 협상을 깨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런 행위가 합리화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종훈 대표는 이어 "전반적인 협상 분위기에서 (다음) 6차 협상이 (열리지 않을) 위험에 빠진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협상은 전반적으로 익어가고 있다, 상당히 진척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훈 대표는 나아가 "오늘 오전 무역구제 협상이 중단된 후 웬디 커틀러 미국 측 대표가 '미 의회에 제출할 무역구제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국 측 제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기대를 갖고 주시하겠다"며 무역구제 분과의 교착상태가 향후 잘 풀릴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결국 이날 김종훈 대표의 브리핑은 무역구제 협상이 결렬된 것은 협상전략 상 우리 측이 주도한 것임을 강조하고, 무역구제 협상의 결렬이 한미 FTA 협상 전체의 결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 증거로 다른 분과들에서는 협상이 잘 진척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셈이다.
이런 김종훈 대표의 브리핑 태도는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 측 협상단이 세게 나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협상에서 우리 측 협상단이 밀리고 있다'는 한미 FTA 비판 세력의 주장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동시에 그는 '우리 측이 일부 분과의 협상 중단이라는 강수를 둬도 전체 협상은 잘 진척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한미 FTA 찬성 세력의 비판도 견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김종훈 대표의 태도는 한미 FTA에 대한 국내의 예민한 여론을 의식한 '줄타기 브리핑'을 시도한 것으로 비친다.
미국 측 '물품취급수수료, 한국엔 면제해주겠다'
분과별 협상 진척상황을 살펴보면, 이날 이틀 간의 협상이 종료된 상품무역(공산품) 분과에서 협정문 관련 협상에서 10여 개의 쟁점에 대한 한미 양국 협상단 간 합의가 이뤄졌다.
김종훈 대표는 이들 합의사항 중 미국 측이 우리나라의 수출품에 대해서는 물품취급수수료(상품가의 0.21%)를 면제해주기로 한 것을 주요한 성과로 꼽으며 "연간 4700만 달러의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한미 양측은 상품무역 분과의 양허안 관련 협상에서 상당수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을 앞당겼다.
우리 측은 이른바 '중간단계(middle range, 관세철폐 이행기간 3~10년)'에 있는1500여 개의 품목들 가운데 230개 품목의 관세철폐 이행기간을 앞당겼다. 특히 플라스틱, 스피커, 음향기기를 포함해 204개의 품목(6억 달러 규모)에 대한 관세를 즉각 철폐하기로 했다.
미국 측도 '중간단계'에 있는 1500여 개 품목 가운데 326개 품목의 관세철폐 이행기간을 앞당겼고, 특히 텔레비전, 카메라, 피아노 등 206개 품목(6억 달러 규모)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했다.
김종훈 대표는 "양측 양허안이 일정 부분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6차 협상이 열리기 전) 정회기간에 양국의 각 품목 담당자들이 (전화)접촉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더딘 농업 협상
농업 분야별로 협상이 진행된 농업 분과에서 한미 양국 협상단은 5~6일 축산물 분야, 과일 분야, 채소 분야, 가공식품 분야 등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에 가속도가 붙은 상품무역 분과에 비해 농업 분과의 협상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이번 5차 협상은 양측이 품목별 관심도와 민감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김종훈 대표에 따르면 미국 측은 우리 측이 관세철폐 이행기간 '기타(양허 제외 포함)'에 두고 있는 농산물의 수가 너무 많다면서 이 품목들의 개방 유무 및 개방 시기에 대한 입장을 가능한 빨리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농업 분과의 협정문 관련 협상에서는 저율관세할당(TRQ)이나 세이프가드(safeguard, 긴급수입제한)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이는 품목별 양허 수준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것들이기에 4차 제주협상에서 논의됐던 수준 이상으로 협상이 진척되지는 않았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
"미국 측이 우리 측의 서비스·투자 유보안 잘 정리됐다고 평가"
투자 분과와 서비스 분과에서는 한미 양국 협상단이 5~6일 이틀 간의 공동회의를 통해 지난달 27일 교환했던 2차 유보안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양측은 미국 측 유보안과 우리 측 유보안 및 유보안 '부속서Ⅰ'에 대한 검토를 완료했고, 7일에는 우리 측 유보안 '부속서 Ⅱ'에 대한 협의를 할 예정이다.
미국 측 유보안과 관련해 우리 측이 요구하고 있는 해운서비스 시장의 개방 등에 대해 미국 측은 계속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우리 측 유보안과 관련해 김종훈 대표는 "미국 측이 우리 측 유보안이 상당히 잘 정리가 돼서 앞으로의 협상 진전을 위한 충분한 기초가 된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7일에는 방송·통신 분야의 미래유보에 대한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사흘 간의 협상일정이 끝난 금융서비스 분과에서는 보험중개업 국경간 거래를 4개 분야에 국한해 허용하기로 한미 양국 협상단 간 합의가 이뤄졌다. 또 소비자 보호를 위한 양국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는 데에도 양측이 합의했다. 김종훈 대표는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합의를 도출하는 진전이 있었으나, 아직 많은 쟁점들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역시 이날 협상이 종료된 통신·전자상거래 분과에서는 미국 측이 해저케이블 시스템에 대한 접근권은 기간통신사업자만 갖는다는 우리 측 문안을 반영해 관련 문안을 조정하기로 했다. 또 미국 측은 주파수 할당은 미국식 경매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완화해 '보다 효율적으로, 유연하게 한다'는 문안을 우리 측에 제시했다.
지재권 '병행수입 금지' 조항은 도입하지 않기로
원산지·통관 분과에서는 농산물의 절반 정도에 대한 원산지 규정이 확정됐다. 또 고무, 가죽, 구리 등에 대한 원산지 규정도 확정됐다. 하지만 아직 많은 품목들에 대한 원산지 규정에 대한 협상이 끝나지 않아 한미 양국 협상단은 12~1월 기간에 1~2차례의 추가 별도협상을 할 예정이라고 김종훈 대표는 밝혔다.
지적재산권 분과에서는 그간 미국 측이 협정문에 넣자고 주장해 온 '병행수입(parallel import, 외국에서 적법하게 상표가 부착돼 유통되는 상품을 제3자가 국내의 상표권자 또는 전용 사용권자의 허락 없이 수입하는 행위) 금지' 조항이 협정문에서 빠지는 것으로 양측 간에 합의됐다. 김종훈 대표는 "이 조항은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문제와 비견할 정도로 우리 측이 내부적으로 우려했던 내용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조항을 뺀 것은)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이날 협상이 종료된 환경 분과에서는 분쟁해결 절차와 관련해 한미 양국 협상단이 이견을 보였다. 단 '대중참여(public participation)'에 대한 양측 간의 협력을 확대한다는 데에는 양측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지난 5일 협상이 종료된 총칙 분과에서는 한미 양국 협상단이 양국 간 별도의 조세협약이 있으면 그 협약이 한미 FTA의 조세 관련 조항에 우선하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총칙 분과 외에 투자 분과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관련해 조세정책을 '간접수용'에서 유보시킬지 여부에 대한 양측 간 이견은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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