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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착 확인한 정상회담…궁지에 몰린 'FTA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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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착 확인한 정상회담…궁지에 몰린 'FTA 카드'

[한미FTA 뜯어보기 97 : 기고] 이제 한미 FTA 도박판은 엎어야 한다

9월 14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각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정부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강조했지만 구체적 내용이 없으니 이는 알맹이 빠진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공동성명이나 선언 없이 20여 분 만에 끝난 두 정상의 기자회견은 북핵 문제에 대해 엇갈린 답변을 내놓아 평가가 갈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완전하게 봉합된 두 정상의 동상이몽

9월 15일 청와대가 정리해 공개한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양국 정상이 동문서답을 했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다. 초미의 관심사인 북핵 문제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에 대한 책임을 재확인"한다는 원론적인 입장 아래에서 "그(김정일)가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고 있으며 "그가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북핵 프로그램을 제거하면 분명히 더 좋은 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존의 강경발언을 거듭했다.

노 대통령도 "6자회담 재개의 공동방안에 대해 실무적으로 협의 중"이지만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면서 "내용이 복잡해서 내가 이 자리에서 한마디로 답변드릴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대북제재 문제를, 6자회담이 실패했을 경우에 있을 수 있는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대북 추가제재에 반대하는 한국정부의 기존입장을 확인하면서, 아직 한미 양국 간에 실질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갑갑해 한 것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한미 간의 이런 차이 때문에 "북핵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마련 합의"를 이번 회담의 큰 성과라고 강조한 청와대 <국정브리핑>의 설명보다는 "두 정상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하면서, 한편으로 대북한 대처 방법에 대한 깊은 이견을 피해 갔다"는 <워싱턴포스트>의 평가나 지난 6월 부시의 환대 속에서 열린 고이즈미와의 미일 정상회담과 달리 1시간의 회담과 점심으로 이루어진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췄지만 거리를 두는 관계를 가져 왔다"는 <뉴욕타임스>의 평가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또 한미 양국 정부의 입장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서로 간의 이견을 좁히기 위한 실질적인 대외협상이라기보다 두 정상이 각각 국내 정치에서 유리한 명분을 축적하려고 한 대내용이 아니냐는 평가도 설득력이 있다. 노 대통령은 국내에서 가장 시끄러운 현안인 한미 FTA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냈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대북 추가제재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이에 반대하는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어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이라는 합리적 이미지를 과시함과 더불어 노 대통령에게 '선물'을 주어 두어 달 앞으로 다가온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시한이 재연장될 가능성을 높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이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 북핵 문제나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FTA 협상에 어떤 실질적인 출구도 마련하지 못한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한미 간의 이견이 "동해만큼이나 넓은"(<뉴욕타임스>) 현 상황이 더 넓게 벌어지지 않도록 '봉합'하는 효과와 함께 "전적으로 세상을 달리 보는 두 정상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마이클 오핸런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이라는 의미의 효과가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금년 1월 19일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 간의 합의가 발표된 데 이어 2월 3일 '단순한 경제협정을 넘어 정치군사안보 차원의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할 포괄적 협정'인 한미 FTA 체결을 위한 협상 개시가 선언될 즈음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던 한미 간의 거리가 반년 사이에 왜 이렇게 멀어진 것일까? 한미 FTA 2차 협상 과정에서 약값 문제를 둘러싸고 충돌이 빚어지고 3차 협상 때는 재벌 관련 조항이나 미국 주정부를 예외로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노출되는 등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한미 양국 정부 사이에 틈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이는 결과와 원인을 혼동하는 것일 따름이다. 1차 협상 때만 해도 김종훈 대표가 "40%의 진전"을 이루었다고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을 만큼 한미 FTA 협상은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7월 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에 개최된 2차 협상은 약값 시비로 인해 결렬되고 말았다. 약값 문제 그 자체가 그토록 심각한 사안이었다면, 6월 초에 열린 1차 협상에서부터 이 문제를 둘러싼 시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시민 장관이 이미 5월 4일에 미국이 그토록 반대하는 약값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정부가 극구 부정했지만 2차 협상 이후에는 노대통령도 그 표현을 수용하겠다고 한 '4대 선결쟁점'에 관해 미국에 사전에 양보하여 굴욕협상을 한다는 비판까지 받아가면서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한국 정부가 왜 협상 중간에 미국 측으로부터 약속위반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약값 적정화 방안을 재론하게 된 것일까? 이는 한미 FTA가 공공부문을 훼손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국내의 목소리를 무마하려는 일종의 '할리우드 액션'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있었다.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후 별도의 협상을 거치며 미국 측의 요구가 거의 수용되어 가고 있어, 이 문제가 한미 간의 핵심 쟁점이 아님은 물론 대내용 눈 가리기 수단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확실하게 양국 간에 합의된 사항은 국내에서 보수세력이 트집 잡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라고 할 때 양국 간의 이견은 사실 북핵 문제 외에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극도로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라 국내의 법과 제도 전반을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불리는 미국식 스탠더드에 맞게 변화시키도록 하는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협정이다. 따라서 한미 FTA는 태평양이라는 막대한 거리를 훌쩍 뛰어넘어 한미 양국을 거의 한 몸으로 합체하는 것과 진배없기에 한미 FTA를 통해 한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극히 가까워지고 있다. 이에 반해 대북 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의 의견 차이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더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이 아닌 그냥 '김정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은 북한에 대한 그의 생각이 더욱 악화됐음을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동맹 간의 이견이 격화하는 것을 막는 데 급급했을 뿐 무기력하고 서먹서먹한 회담으로 그쳤다는 외신(<신화통신>)의 평가가 현재 한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놓여 있음을 정확히 지적해주는 것 같다.

'북핵 문제와 한미 FTA'의 피할 수 없는 모순

그렇다면 이런 모순은 최근에야 새롭게 발생한 것인가?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금년 1월 초 미국이 취한 대북 금융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이미 상반기부터 예측된 것이지 돌발상황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북 금융제재'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비전 사이에는 극명한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런 모순은 한미 FTA 협상이 개시되기 이전부터 이미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순의 두 대립항이 대칭적인 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는 양국의 정부와 국회가 동의하면 체결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미국의 지속적인 대북 제재는 단순히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는 물론 세계 전체를 3차대전의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세계적인 사안이다. 더구나 미국이 이라크 전에서 고전하고 있고 이란과도 갈등이 증폭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실질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미국의 대북 제재란 사실상 협박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모순의 비대칭성을 대칭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한미 FTA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발생한다.

그간 여러 논자들에 의해 밝혀졌듯이 한미 FTA는 여러 면에서 미국에 큰 실익을 가져다준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가 무역흑자로 돌아서고, 이미 IMF 경제위기 이후의 실험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의 투자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이 막대한 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며,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경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력이 크게 강화되는 동시에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포괄적인 압박의 수위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 FTA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 엄청난 선물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지난 1998년 이래 IMF 처방의 구조조정이라는 강력한 고삐를 당기며 한국에 투자협정(BIT)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그동안 끈질기게 버텨 왔다. 그러던 한국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쌍둥이 적자라는 양면의 위기에 몰린 미국 부시 정부에 대해 앞장서서 한미 FTA를 하자고 제안했다면, 그것은 객관적으로 부시 정부에 특혜를 주는 대단한 거래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한미 FTA가 일부 대자본을 제외하고는 경제와 사회생활 전반에 쓰나미 같은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재앙을, 미국에는 특혜를 가져다줄 협상을 하자고 우리가 제안했다면, 미국도 우리에게 뭔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갈수록 강화되는 부시의 대북 강경정책을 완화해 클린턴의 햇볕정책 수준으로 복귀하도록 요구하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이 있을까?

지난 8월 8일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노 대통령은 지난 2월 한미 FTA 협상 개시 발표 이후 여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 문제로 한미 관계에 틈이 많이 벌어졌는데 이걸 메우려면 결국 경제분야밖에 없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미국이 그토록 원하는 한미 FTA를 우리가 먼저 제안하는 형식을 취하면 미국이 대북 제재를 풀고 그 대신 경제적 실속을 챙기도록 하자는 계산인 셈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북한 문제를 경제로 풀려는 노 대통령 나름의 배포 큰 계산에는 중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는 데 있다.

최근 발간된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라는 책에서 박태균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국이 '벼랑끝 외교'를 시도했던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한국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의심'에 기초한 '설득과 협박'으로 일관해 왔다. 반면 한국정부는 대미관계의 역사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그 결과 매번 미국의 양보를 순진하게 기대해 온 한미관계의 비대칭성에 대한 고려의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 달리 말해 미국은 우리가 아무리 양보해도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한미 FTA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배포 큰 계산이 패착임이 드러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해준 일등공신인 영화인들을 포함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짓밟는 무리수를 감행하면서까지 갑작스레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계산법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노 대통령의 '계산'이나 애초 미국이 한 '약속'과 달리 실제로는 미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북 강경방침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4월 초 북한 측에서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10월에 평양에서 열자고 제안하면서 적극적인 긴장완화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개성공단의 확장을 허용하기는커녕 오히려 개성공단에 대한 국제기구의 감독을 요구하는 등 '트집 잡기'를 계속 확대해 왔다.

유시민 장관이 5월 4일 미국으로부터 약속위반이라는 거센 항의를 받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약값 적정화 방안을 공표했던 것은 바로 미국의 일방적 강경방침으로 인해 노 대통령의 야심찬 계산이 엉클어진 데 대한 불편함의 표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나중에 확인된 것이지만, 이와 같은 시기에 성이 난 북한은 미사일 발사 준비에 착수했다.

지난 7월 이후 한미 FTA 2차, 3차 협상이 난항한 것은 한미 양측의 계산법에 존재하는 차이가 여실히 반영된 결과다. 본래 부시 정권은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압박을 강화해 북한의 급격한 체제전환을 이끌어내려고 한 반면, 노 대통령은 장기간에 걸친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면서 클린턴 시절의 햇볕정책을 복원하려고 한다는 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한미 FTA라는 국운을 건 '도박'을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근본적 차이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사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대북 협박카드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게 될 여지가 극히 적다. 그로서는 대북 협박카드를 밀어붙여 최대한 명분을 확보함과 동시에 FTA 협상에서 경제적 실익을 최대한 이끌어냈다고 판단되는 선에서 한미 FTA 협상을 마무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 측의 손실은 노 대통령이 적정하다고 생각한 수준을 넘어 국민경제를 파산지경에 이르게 하는 정도가 될 수 있다.

9월 상순에 열린 한미 FTA 3차 협상에서 미국이 정부조달 부문에서 자국의 주정부는 모두 FTA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공공부문의 개방, 재벌 관련 조항의 삽입, 방송쿼터의 축소, 정기간행물 지분 제한의 철폐, 도박시장의 개방까지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한 마디로 다 내놓으라는 얘기다. 내년 3월 말인 신속무역협상권한(TPA) 시한에 쫓기고 있는 미국 정부가 오히려 이런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것을 역으로 보면, 대북 제제라는 '협박카드'가 그만큼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금년 말까지로 협상기한을 못 박다시피 해 온 우리 정부가 최근 들어 내년 3월이 타결시한으로 적정하다는 식으로 발언하며 협상시기를 늦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표명(김종훈 대표의 국회 발언)하는 것 역시 우리 측 계산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라는 국운을 건 '도박'(손호철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노무현판 바다이야기')의 문제점은 협상의 시기나 수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 협상이 애초부터 잘못된 계산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 있다. 부시 정권의 특성 상 양보란 자신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독박' 위기에 몰린 도박사

이미 드러난 바와 같이 노 대통령은 패착이 확인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가 한미 FTA에서 미국 측에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부시는 북핵 문제에서 양보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대북 제재 완화라는 전술적 차원을 넘어 '북핵 문제-한미동맹-한미 FTA' 전체의 복잡한 상관관계에 대한 계산을 '포괄적'으로 다시 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끝나자 우리 정부만 유독 '공동의 포괄적 방안'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자진해서 "물었다"고 주장한 한미 FTA라는 큰 미끼를 이제 와서 다시 내뱉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데에 노 대통령의 계산법이 지닌 비극적 성격이 있다. 현재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대북 추가제재의 국제적 명분을 확보했으므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에 동의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북핵 카드를 적극 활용해 한미 FTA에서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요구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현 상황에서 미국이 취할 태도를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이 대북 제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개성공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한미 FTA에서 100% 개방을 요구하는 태도로 나올 수 있다. "손해만 보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는 노 대통령이 이 경우에 한미 FTA 협상을 중단한다면 미국은 대북 제재를 강화해 북한을 고사시키겠다는 협박, 즉 한미동맹 파괴라는 더 강한 협박을 들이댈 것이다.

둘째,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대신 대북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개성공단에 대해 '현행대로 보류'하는 방식으로 인정하는 선에서 부분적 양보를 하는 대가로 한미 FTA에서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요구해 올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국운을 건 도박을 감행한 노 대통령으로서는 크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셈이 될 것이고, 그런 장사 결과를 갖고서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노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체결 이후 169석이던 의석을 2석만 남긴 채 모두 잃은 캐나다의 멀루니 총리와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장기적인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유사 이래 최대의 FTA인 한미 FTA라는 큰 도박판을 벌인 과감한 도박사의 면모를 과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노 대통령의 패는 점점 '독박' 쪽으로 몰리고 있다. 한미 FTA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한미 대자본의 이익을 제고하려 했던 '일타삼매'의 묘수가 '설득과 협박의 고수'인 미국 측에 전혀 먹히고 있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손해만 볼 가능성과, 이로 인해 정권 재창출의 기회를 놓칠 가능성만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정말 큰 문제는 노 대통령의 개인적 '독박'이 아니라 그가 한미 FTA라는 도박판의 판돈으로 국민 전체의 생존권을 걸었다는 데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노 대통령 스스로가 판을 엎음으로써 '독박'에서 벗어날 마지막 기회는 있다. 부시 대통령의 협박카드가 단지 협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도박판을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무모한 계산법이 저지른 위험천만한 착오를 겸허히 인정하고, 이미 참여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국내 친미파와 대자본의 거센 반대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대통령으로 거듭나기 위한 피를 토하는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정황을 놓고 보면 노 대통령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만약 노 대통령이 계속 정신을 못 차리고 이 그릇된 도박판을 계속 끌고 간다면 이제는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이 도박판을 엎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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