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에 끌려서 중요한 국익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 7월 20일 한국언론재단이 주최한 포럼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뿐 아니라) 나도 수석대표로서 연내에 타결하자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다." (김종훈 대표, 9월 9일 미국 시애틀에서 한미 FTA 3차 협상이 종료된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3월이라고 생각한다. 제 마음 속에는…." (김종훈 대표, 9월 1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3차 협상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체결될 경우 우리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시점을 놓고 말들이 많다. 일단 정부가 막무가내로 한미 FTA 협상을 개시했으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민들로서는 '그러면 도대체 언제 협상이 타결되어 언제부터 발효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와 한미 FTA 찬성론자들은 중국이나 일본이 미국과 FTA를 맺기 전에 우리나라가 하루라도 빨리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이 만료되는 시기에 맞춰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협상을 끝마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미 FTA 신중론자나 반대론자들은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일에 시한을 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서, 몇 년 간에 걸쳐 심사숙고하며 신중하게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많은 한미 FTA 반대론자들은 한미 FTA 협상 자체가 중단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런 주장들 사이에서 일반 국민들은 아리송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헷갈려하는 것은 일반 국민들만이 아니다. 김종훈 한미 FTA 우리 측 수석대표도 협상타결 시점을 언제로 잡아 놓고 협상을 진행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양이다. 김종훈 대표는 '미국의 국내 사정 때문에 내년 3월까지는 타결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다가도 '그러면 졸속협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지면 "시한에 끌려 국익을 놓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선다. 또 웬디 커틀러 대표가 "연내에 협상을 타결하려고 한다"고 말할 때는 거기에 맞춰 "나도 수석대표로서 연내에 타결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외교관이 상황과 시기에 따라 다른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간의 과정을 보면, 김종훈 대표의 이같은 '말 바꾸기'가 한미 FTA 협상을 '성공한 협상'으로 만들기 위한 협상용 전략이 아니라 '차후에 변명할 빌미'를 만들어 놓기 위한 대비책일 뿐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종훈의 진심은?…'연내 타결>내년 3월 내>무기한 협상'
김종훈 대표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1순위는 한미 FTA를 연내에 타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에 비춰 볼 때 한미 FTA와 같은 국제통상 협상은, 특히 국내적인 저항이 많은 협상은 가능한 빨리 마무리되는 것이 좋다고 그가 생각할 게 뻔하다. 협상이 빨리 마무리될수록 승진의 시기도 빨라지지 않겠는가?
미국 행정부에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무역촉진권한(TPA)은 미국 정부가 체결하려고 하는 통상협정에 대해 협정 체결 90일 이내에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통상협정의 내용 중 미국 국내법의 제·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협상 체결 후 180일 이내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TPA가 만료되는 시점인 내년 6월로부터 180일 이전인 올해 말이 미국 정부로서는 한미 FTA를 타결하는 '적적한 시점'이 된다.
이와 더불어 우리 측에서 "연내에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연내 협상 타결" 의지를 거듭 밝혀 온 미국 측에 '한미 FTA를 체결하려는 우리의 신념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국내에서 '협상이 왜 이리 지지부진하냐'고 비판하는 한미 FTA 찬성론자들에게 '우리가 연내 타결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
2순위는 아쉬운 대로 내년 3월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그동안 언론을 통해 한미 FTA를 내년 3월까지 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해 온 만큼 이 시나리오도 그다지 무리한 게 아니다.
게다가 한미 FTA에 대한 국내적인 저항이 점차 커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 반대론자들의 눈을 가리려면 '연내에 협상을 타결하기에는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편이 김종훈 대표에게 유리하다.
정몽준 의원이 13일 국회 통외통위에서 '한미 FTA 3차 협상에서 별 진전이 없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협상이 잘 되니까 연내에 타결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 아닌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을 때 김종훈 대표가 "내년 3월"이라고 답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순위인 3순위는 협상을 내년 3월을 넘어서 몇 년이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김종훈 대표 개인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미 FTA 협상이 몇 년이고 질질 끄는 것이 국익을 최대화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김 대표 개인의 승진과 안위를 최대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 언제든 협상이 결렬될 경우 최소한 '국민들이 원하지 않은 협상을 타결할 수 없었다'고 말하며 시치미를 뗄 수는 있겠다.
어찌 김종훈 대표만의 잘못일까, 그러나…
어찌 김종훈 대표만을 탓하랴. 한미 FTA 협상의 '얼굴 마담' 역할을 하느라 한미 FTA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양 편으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그의 고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 뒷편에서 노무현 정부와 재정경제부 관료들이 빨리 협상을 진척시키라고 김 대표를 얼마나 쪼아댈지도 상상이 간다.
그렇다 하더라도 협상 타결 시점에 대해 '너무나 자주' '눈에 띄게' '말 바꾸기'를 하는 김종훈 대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씁쓸하다. 그런 모습은 한미 FTA를 타결시키는 것만이 목적이고 그 협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타결되며 어떤 내용을 담은 협정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그의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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