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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하루,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현장] 단식 50일째 지율스님이 盧대통령에게 보내는 '유언'

6월30일부터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터널'을 반대하며 3번째 단식을 시작한 천성산 내원사 지율 스님이 18일로 단식 50일째를 맞았다. 지율 스님은 정부가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약속할 때까지 '목숨을 건 단식'을 중단하지 않을 것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14일부터 '묵언 단식'에 들어간 지율 스님을 17일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49일째 단식을 벌이고 있는 지율 스님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3년이 넘도록 정부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작은 체구의 지율 스님, 그의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을 깊이 공감해 잘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50일간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을 시작하는 그에게 건강과 안부를 묻는 것도 사람이 할 일은 못 됐다.

지율 스님은 생각보다 훨씬 담담했다. 아무 도움도 못 되는 기자를 반갑게 맞은 그는 가냘프지만 차분했던 목소리 대신 또박또박 필답으로 답했다. "고마울 뿐이지요" 차분하게 기자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을 차마 마주보지 못한 채, 단식내내 함께 한 이들의 얘기를 듣겠다고 허락을 구했다. 시종일관 온화한 얼굴의 지율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만 지었다.

지율 스님은 단식 49일째 되는 17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기는 편지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노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치 유언과도 같은 글이었다.

"노무현대통령께
만일, 내 생에 하루가 남아있다면 그 하루를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은 나라의 국운이고 민족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편지는 계속됐다.

"하지만 언젠가...그 하루의 빛이 꺼지고 제가 땅에 묻히고, 남은 이름마저 묻는다 해도
세상이 빛으로 왔던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만은 가져가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저와 함께 천성(산)을 어둠속에 묻는다면
그때는....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이렁저렁 아우러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법을 알고 법을 바로 세워야 할 분이 당신이기 때문이며
수많은 생명을 묻은 뒤 찾아오는
이 땅의 피비린내를 역사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성의 아픔을 기억해주세요
지난날 당신이 "공약"했던 원칙과 약속이 아니라면
고향의 냇가에 발목을 적시고 미래를 꿈꾸었던 소년의 이름으로...
천성산의 아픔이 제게 빛으로 왔듯이
상처 입은 천성은 당신에게도 빛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아침 창으로 날아오듯이...

지율합장"

원망보다는 안쓰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편지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문재인 수석도 단식 50일 동안 한 번도 지율 스님을 찾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백지화를 포함한 전면 재검토"를 공언했다. 지난해 2월 38일간의 단식 때는 문재인 수석이 지율 스님을 찾아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며 두 손을 꼭 잡고 단식을 풀 것을 종용했었다.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스님도 수용할 의지 있다"**

지난 2월부터 지율 스님 곁을 지켜온 이동환 부산 청년환경센터 사무국장은 '스님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6월30일부터 서울 올라와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질문을 들었다. 보기엔 지율 스님이 거동도 하시고 그러니까......" 기자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실제로 지율 스님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들이 무성했다. 심지어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들이 "지율 스님이 뒤로는 먹을 것을 다 먹고 있어 걱정 안 해도 된다", 이렇게 보고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까지 들리는 모양이었다.

이동환 국장은 "정부가 지율 스님이 요구하는 투명한 절차에 의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고 약속하면 "스님도 그 결과를 충분히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졸속으로 실시한 지 10년이 넘은 결과를 들이대면서, '환경에 문제가 없다'고 해온 게 문제의 발단"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도, 정부도 환경영향평가 재실시에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초 실시한 환경영향평가가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정부도 인정하는 바이다. 지난 4월에는 재판부도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음을 재차 확인했다.

***"사람들이 저렇게 잔인할 수 없다"**

이동환 국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수석 등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문제를 어렵게 만든 당사자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후보 시절, 당선자 시절 '백지화' 운운하기 전까지만 해도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하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노 대통령이 '백지화' 운운하면서 이 문제가 갑자기 정치 문제로 변질된 것이다."

대개의 정치인이 그렇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말을 바꿨다. 지난 14일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의 한 비서관은 지율 스님을 찾아와 "1년 동안 우리는 모든 정치적 수순을 다 밟았다"고 생색을 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저렇게 잔인할 수가 없다. 후보 시절 그렇게 지율 스님 뜻을 존중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고 한 사람은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수석이 설사 이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더라도, 단식을 50일동안 진행하는 동안 한번이라도 들러서 손이라도 잡아 줄 수 있지 않겠나.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되지 않았나."

이동환 국장은 말을 이었다. "이번 지율 스님의 단식을 놓고 보이는 저들의 태도는 이 정권이 얼마나 뭇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2003년에 고공 크레인 위에서 한진중공업의 고 김주익 지회장이 목숨을 스스로 끊기까지 아무도 그의 절규에 주목하지 않았다. 저번 고 김선일씨 때도 정부는 살려달라는 그를 외면하지 않았나.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도 그렇고."

***"지율 스님과 함께하면서 스스로 많이 변했다"**

이동환 사무국장 역시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율 스님의 '외로운 싸움'이 무모해 보였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변했다.

"나도 사실 100%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지율 스님이 서울에 올라와 단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막막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지율 스님의 일관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생명 사랑'의 정신 말이다."

이동환 국장은 운동의 방식에 대한 다른 고민도 내놓았다. "권력을 얻기 위해 하는 운동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운동이 얼마나 쉽게 변질되는가를 보여주지 않는가? 지율 스님은 그것을 넘어 우리 내면에 호소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율 스님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도롱뇽의 친구들의 모임'을 만들어 매주 토요일 '도롱뇽의 날' 행사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실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님은 항상 낙관적이다. '해결된다. 해결될 수밖에 없다', 항상 이렇게 힘을 준다. 사실 스님은 지난 3년여 동안 한번도 정당성을 잃은 적이 없으니까. 스님이 '산이 불렀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제 여론이 스님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지율 스님에게 포기하라는 얘기는 불치병 걸린 아이를 내버려 두란 소리"**

스님의 단식이 49일째 되는 날, 지율 스님 단식 농성장에는 식구가 한 명 더 늘었다. 설악산에서 1993년부터 '산양을 지키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박그림씨이다. 박그림씨는 농성장에 도착하자마자 지율 스님과 함께 같이 단식을 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다 1992년에 가족과 함께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산양 지킴이' 노릇을 해온 게 10년 정도 되는데, 지율 스님이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너무나 공감이 됐다. 작은 힘이라도 더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참여하게 됐다"

지율 스님의 단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박그림씨는 이렇게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지 않느냐.' 그런 사람들의 얘기는 불치병에 걸린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라는 소리와 같다. 지율 스님은 지금 천성산을 또 불치병에 걸린 우리 사회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산 하나 살리는 일이 아니라 우리와 아이들이 살기 위해서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일이다."

우문현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다. 현실의 힘에 너무 짓눌린 탓이다. 꼿꼿이 앉아 정좌를 하고 있는 지율 스님에게 다시 다가갔다. "스님 좋은 결과 있을 것입니다. 꼭 건강 챙기십시오." 지율 스님은 역시 미소만 가볍게 지었다.

잠시 그친 여름 빗줄기는 다시 굵어졌다. 조용한 청와대 앞에 서 있던 몇몇 경찰들은 빗줄기 사이로 단식을 하는 지율 스님을 지켜보면서 쑥덕거렸다. 정부는 또 우리 사회는 또 한 사람의 생명을 이렇게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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