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노선의 금정산·천성산 관통을 반대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던 내원사 지율 스님이 45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도롱뇽 소송인단에 참여한 17만여명이 지율 스님을 설득한 덕분이다.
***지율 스님, 45일 만에 단식 중단**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관통반대 대책위와 녹색연합 등은 17일 오전 부산시청 앞 광장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지율 스님의 단식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책위와 녹색 연합 등은 "지난 2월 38일간의 1차 단식 농성 등으로 노선 재검토를 약속했던 정부가 결국 관통 노선을 강행하고, 45일간의 2차 단식조차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소송인단을 모집한 결과, 나흘 만에 17만여명 이상이 지원하는 등 고속철도 노선 변경 운동이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소송인단을 1백만명으로 늘리고,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주저하고 있는 환경부 장관과 고속철도공단 이사장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 "17만여명 시민과 천성산을 지킬 것"**
한편 45일 만에 지율 스님이 단식을 중단하게 된 데는, 소송인단에 17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것이 큰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토회와 조계종 등 불교계와 녹색연합 등이 본격적으로 소송인단을 모집한 지 이틀째인 14일 5만명이 참여한 데 이어, 나흘째인 16일 자정 현재 14만6천4백1명이 지면으로 소송인단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대책위와 녹색연합측은 총 "인터넷 접수 등을 포함해 집계한 결과 총 17만여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인단 모집은 단식 40일째인 지난 12일 지율 스님을 방문한 정토회 법륜 스님이 "10만명 이상이 소송인단에 참가하면 단식을 중단할 것"을 지율 스님에게 요청하면서 시작됐었다.
단식을 중단하면서 지율 스님은 "꼭 살아서 17만여명에 이르는 시민들과 함께 천성산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극도로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이후 전개될 반대 운동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45일 동안 물과 간장만 먹으며 농성장에서 단식을 해온 지율 스님은 최근 팔다리가 마비되고, 온 몸이 떨리고 기력이 약해지는 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다.
***지율 스님, "대통령님 전쟁과 살상의 무기를 거둬 주세요"**
한편 지율 스님은 단식 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두 편의 편지를 남겼다.
지율 스님은 편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강을 건너버려 영영 우리 곁에 다시는 서주지 않을 것 같다"면서 "원칙과 약속을 지키겠다고 믿어달라고 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지율 스님은 또 40여일의 단식 동안 정부와 청와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에 대해서 "(노 대통령은) 우리가 떠내보낸 희망의 배에 살상의 무기를 싣고 돌아왔다"면서 "이 땅에 뿌려지는 전쟁과 살상의 무기를 거두어 달라"고 절규했다.
다음은 지율 스님의 편지 두 통의 전문.
***1. 노무현 대통령님께**
한걸음 한걸음 40날의 긴 계단을 올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글을 쓸 용기를 냅니다.
아득하게 멀기 만해서 영영 우리 곁에 다시는 서주지 않을 것 같은 당신이지만
이미 강을 건너버린 당신이지만
기다림은 우리 몫이기에,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놓고 간 당신은
"나는 부산 사람으로 내 고향의 정기를 끊는 일을 할 수 없다. 조상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 할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잊고 있는 당신은
부처님 앞에 발원하며 "자연환경 수호를 위해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노선을 전면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며 불교계의 자율성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공약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의 기억을 지워버린 당신은
지난 겨울 노상에서 단식중인 한 비구니의 손을 잡고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 백지화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이 우리 몫이기에
마른 창자가 항거하는 40여일의 긴 굶주림을 견디어내면서
3번의 만남 속에 깃든 진실한 힘을 믿으며
사람들에게 이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단식 마흔날 밤에.
***2. 노무현 대통령님께**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당신은 우리가 떠내보낸 희망의 배에 가득히 살상의 무기를 싣고 돌아왔습니다.
아, 그러나 그것만은 마세요
이 땅에 뿌려지는 전쟁과 살상의 무기를 거둬주세요.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님이 조금만 주의하고 자신의 발밑을 내려 본다면 님이 밟고 서있는 곳은 바로 피투성이가 된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님이 조금만 귀 기울여 듣는다면 지금 님 주위에 들리는 밤 피리 소리는 바로 많은 생명이 빛 그늘 속으로 사라지면서 울고 있는 애절한 절규입니다.
그들은 피로 물들어 갔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하고
그들은 영혼으로 울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빛이 되고 소리가 되었던 어두운 밤의 기억을 당신은 정녕 잊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 스스로 이야기 했듯이
이 땅의 정기를 끊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 할 사람 되지 마세요.
동족을 향해 총칼을 들지 마세요.
불전에서 했던 언약 지켜주세요
원칙과 약속을 지키겠다고, 믿어 달라고 했던 그 마음 보여주세요.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요시한다던 패기가 위선이 아니었음을 실천해 주세요.
당신이 부두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며
당신이 타고 있는 배가 폭풍속에 가라 앉아 가는 것을 지켜보는 슬픔이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단식 마흔하루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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