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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를 기억하려면 노근리를 이야기하자"

[영화] 8년만에 모습 드러낸 노근리 학살사건 다룬 <작은 연못>

최근의 사극 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야기'다. 시청자들은 더이상 재현의 실제성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추노꾼이 실제로 있었는지, 미실이 덕만과 같은 시대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논란보다는 이들이 과연 이야기가 되는지가 관건이다. 역사(history)란 말 자체가 아버지들의 과거를 극화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라고, '팩션' 붐 가운데에 선 이들은 말한다.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이야기로 재구성되어 환호 받는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야기가 되기는커녕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게다가 그 일들은 너무 많은 피와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무게에 짓눌려 재현에서 자유롭지도 못했다.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이 바로 그런 일이다.

▲ 한국전 당시 피난민을 폭격하는데 사용된 미국 공군의 무스탕 전투기. 미군이 주도한 피난민 학살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알려졌다. ⓒ연합뉴스

기나긴 기억의 싸움

1950년 7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1개월째가 되던 때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 주민들은 미군의 강압적인 인솔 하에 피난길에 올랐다가 미군 폭격기의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수백 여명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고, 생존자들은 신체적·정신적 불구가 되어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이 비극은 전쟁 주체들의 명분에 대한 복잡한 계산으로 인해 '없는 일'이 되어야 했다.

눈앞에서 부모와 자식이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을 본 사람들, 매캐한 화약 냄새 속에서 가족과 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가해 당사자들의 무시와 무관심은 사건 자체만큼 가혹한 일이었다. 1960년 미군에 소청을 제기했다가 즉시 기각 당한 이후로 사건의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한국과 미국 정부를 상대로 기나긴 기억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사건은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다. 1994년 노근리 사건 유족회장인 정은용 씨가 사건의 실록인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펴낸 데 이어 <말>지 등 일부 언론에서 이에 대한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1999년 <AP> 통신의 최상훈, 찰스 J. 핸리, 마사 멘도자 기자가 노근리 사건을 특종 보도하면서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지고 점차 실체를 찾아간다. 유령과도 같았던 유족들의 삶은 기록을 통해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 노근리 사건을 다룬 만화 <노근리 이야기>(박건웅 지음)에 실린 당시 사건 재구성도 ⓒ프레시안

"노근리를 기억하려면, 노근리를 이야기하자"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사건을 영화로 남기는 것이 오랜 숙원이었을 터다. 앞서 언급했듯 역사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의 문제이며, 영화야말로 이 시대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사랑받는 이야기 수단이기 때문이다. <작은 연못>은 그런 숙원을 가진 사람들이 무(無)에서 출발, 십시일반으로 만든 영화다.

<작은 연못>은 3년 여 간의 시나리오 작업, 6개월간의 촬영 준비기간, 3개월간의 촬영, 3년의 후반작업 등 도합 8년에 이르는 세월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개봉까지 시간이 걸리는 영화야 숱하게 많지만 <작은 연못> 제작팀이 보낸 8년은 그 속에 사건 당사자들의 슬픔과 기다림이 얽혀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게 들린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전쟁의 비극을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투자 안 되는 영화는 못 만든다'는 냉철한 자본논리에 희석된 것 같아서다.

그러나 전쟁을 기억하려고 하는, 또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뜻이 모여 자본의 논리를 밀어내는 역전을 이뤄냈다. 2006년 5월 영화의 제작만을 위한 특수 목적회사(SPC) '노근리 프러덕션'(대표 이우정)이 설립됐고 이 소문이 전해지자 영화계의 뜻 있는 스태프·배우들이 동참 의사를 밝혀왔다.

이 가운데는 고(故) 박광정, 문성근, 문소리, 송강호, 김뢰하 등 유명 배우들도 있다. 이들을 비롯한 142명의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노 개런티로 열연한다. <작은 연못> 팀은 이 밖에도 후반작업과 장비관련 업체로부터도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결국 40억 원 규모의 영화를 10억 원만을 조달해 완성할 수 있었다.

▲ <작은 연못>을 십시일반 만든 출연진과 제작진들. 사진은 2009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PIFF) 갈라쇼의 모습. ⓒ연합뉴스

<작은 연못>은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외면받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단순한 플롯을 가진 영화다.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천진하게 살아가던 주민들이 졸지에 피난길에 내몰렸다가,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던 미군에게 무차별 폭격을 당해 참사를 맞이한다는 게 전부다.

그러나 이야말로 전쟁이 가진 야만성과 폭력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작은 연못>의 투박함 앞에서 사람들을 환호하게 하는 화려한 총격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의 이미지일 뿐이다.

"노근리 사건처럼 세상에는 의외로 언론이 직접 나서서 취재해 그들의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말을 전달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노근리 사건 보도로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상훈 당시 <AP> 통신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말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대신하는 것은 기자(記者, 기록하는 자)의 몫이다.

상업 논리로 돌아가는 게 영화지만, 그 영화가 예술로서 생명력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반 아이들의 노래 경연대회 지도를 하던 초등학교 선생님 현이(김지현 분)는 "야들아. 우리가 노래를 왜 하지? 싸우지 않기 위해서야"라고 말한다. 다시 싸우지 않기 위해서, 비극을 막기 위해서 노래를 하고, 극을 올리고, 시를 쓰는 것은 예술의 몫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도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불편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미래에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은 연못>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 영화 <작은 연못> 스틸 ⓒ시네드에피
▲ 영화 <작은 연못> 스틸 ⓒ시네드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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