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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시작해 이명박이 매듭짓는 FTA, 책임은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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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시작해 이명박이 매듭짓는 FTA, 책임은 누가?

[기자의 눈] 5년9개월의 한미FTA 논쟁, 무얼 남겼나

이명박 대통령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물론이고, 이제 박희태 국회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역시 '뜻'을 모았고 결국 2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등의 소란 끝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5년 9개월여 전의 일이다. 우리 시간으로 2006년 2월 3일 새벽 5시, 미 의회 의사당에서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 롭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USTR) 대표가 한미 간 자유무엽협정 (Free Trade Agreement)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그 해 6월 5일 미국 워싱턴에서 공식 1차 협상부터 10개월여 간의 최단기 협상이 진행된 끝에 2007년 4월 2일 오후 1시 서울 하이야트 호텔에서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야 USTR 부대표는 "한미 양국은 새로운 한미 관계를 열어갈 한미 FTA를 타결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의 대선이 있었고 오바마 미 행정부의 요구로 2010년 재협상이 진행돼 자동차 부분의 추가양보를 골자로 하는 재협상안이 그해 12월 타결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13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불고기를 대접받을 때 미 의회는 FTA 이행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2011년 11월 24일 한국 국회 본회의가 주목 받고 있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간략하다. 하지만 치열한 논쟁, 정치적 계산, 피와 땀, 눈물, 사람의 목숨까지 오간 시간이었다.

모두가 욕 먹어 마땅하다

FTA에 대한 찬반을 떠나 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 여야 정치권, 언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정보를 감추거나 제공을 미루기 일쑤였고, 심지어 스스로가 뭘 하고 있는지 혹은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고 있을 때도 많았다. 국제적 망신이나 다름없는 오역논란이 단적인 예다.

물론 정치권은 더 한심했다. 야당 시절 투자가국가소송제(ISD)를 비판했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여당 시절 한미FTA를 찬성했던 민주당 정동영 전 의장이 입장을 맞교환하면서 정반대 방향에서 "그 땐 잘 몰랐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언론도 장님 코끼리 그리듯 하기 일쑤였다. 워낙에 복잡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들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 것은 이런 까닭일 테다.

2006년 5월 19일의 <프레시안> 단독기사

▲ ISD조항이 처음으로 나타난 2006년 5월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목표 및 우리측 협정문 초안 주요 내용' 문건ⓒ프레시안

협상 공식 선언 이틀 전인 2006년 2월 1일 <프레시안>에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 미국의 제1목적'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544편에 달하는 방대한 기획물 <한미FTA 뜯어보기>의 시작이었다. 2011년 현 시점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투자자국가제소제의 경우 2006년 5월 19일 한미FTA뜯어보기35회 [단독입수] "미국기업에 한국정부 제소권 보장"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60518150946&Section=)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국에 처음 알려졌다.

ISD의 실례인 매탈클래드 사례의 경우 <프레시안>의 멕시코 콰달카사르 현지 르포 기사로 실체가 드러났다. 그런데 무려 5년 6개월여 전에 처음 문제가 제기되고 이후 여러 기사와 탁월한 전문가들에 의해 샅샅이 파헤쳐졌었는데도 불구하고 논란은 진행형이다.

독소조항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것들이 마찬가지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프레시안>을 비롯한 소수의 언론, 그리고 눈밝은 극소수의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이미 다 이야기한 것들이다. 새삼 논쟁이 뜨거운 것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 청와대의 기억

기자는 한미FTA 협상이 공식 선언 될 때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을 출입하고 있었다. 2007년 본협상이 타결될 때는 참여정부 청와대 출입기자였고, 2010년 추가협상이 타결될 때 그리고 지금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여당과 정부,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취재도 했고 논쟁도 했다. 청와대 386 실세로부터 격려인지, 비아냥인지, 압박인지 모를 "우국충정이 너무 강한 거 같아"라는 소리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등에게 "FTA 피해규모를 부풀린다"고 '격노'한 사실을 처음 보도해놓고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 즈음 <프레시안> 차원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광고 피해도 적지 않았다. 한미FTA 반대 광고가 정부 기관에 의해 전파를 타지 못했던 것도 그 때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던 구 여권 관계자들이 반FTA 전선에 서 있는 것을 보는 게 떨떠름하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극소수지만 한미FTA의 독소조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선 안타까운 느낌도 든다.

김현종과 노무현의 FTA

한미FTA는 도대체 왜 시작됐을까? 주유엔대사를 거쳐 삼성그룹 사장으로 '영전'해 있는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미 통용되지 않는 일본식 경제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 미국과의 FTA를 통해 (…) 한층 업그레이드된 한국경제를 달성하자는 것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핵심"이라고 솔직히 천명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한미FTA를 '내부 개혁'의 돌파구로 고려했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한미FTA를 통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의 개성공단까지 엮어 놓으면 한반도 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남북 FTA 카드까지 만지작거렸다. 한미FTA 이후 남북FTA가 체결되면 호혜평등의 원칙상 북미가 간접적으로 FTA를 체결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심모원려였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이런 구상은 안일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라크 파병 했다고 해서 미 부시 행정부가 잘 봐준 것이 없는 것처럼, 한미 FTA 했다고 해서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가 풀린 것도 없다. 그게 미국 탓이든, 이명박 정부 탓이든 간에. 그리고 지금으로선 한미FTA가 국내의 기득권을 혁파하는 효과를 가져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노랑머리냐 검은머리냐를 떠나 '투자자'의 권한을 확대할 뿐이다.

그리고 이명박의 FTA

노 전 대통령이 시작한 FTA를 자기가 '꼭지 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현 청와대를 보면 그냥 허망할 따름이다. 복잡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노무현 정부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아주 단순하긴 하다. 이해하기도 쉽다.

첫째, 한미FTA를 통해 한·미 군사동맹을 넘어 포괄동맹, 경제동맹의 차원으로 들어선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이 경제 '동맹'을 맺고 어떤 공동의 적이나 위협에 대응한다는 말인가? 북한? 중국? 한미 FTA를 맺지 않으면 기존의 안보 동맹도 흔들린다는 이야긴데, 이건 케케묵은 '신식민지론'을 부활시키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FTA하면 경제영토가 넓어진단다. FTA 안 하는 중국은 경제영토가 좁은가? 가장 FTA를 많이 하는 멕시코는 경제영토가 가장 넓은가?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 미국 공영라디오와 인터뷰에서 한미FTA 반대진영을 "매우 소수의 반미감정을 가진 사람들로,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거리로 나와 그들의 불만을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고 폄훼할 수밖에.

이미 역사의 교훈은 나왔다

어쨌든 노무현이 시작한 FTA를 이명박이 매듭짓겠단다. 매듭은 이명박이 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과는 온 국민들, 그리고 다음 대통령이 나눠지는 것이다.

"멕시코에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추진한 관료들이 총살 당했다"는 괴담이 인터넷상에 떠돌았다고 한다.(기자는 이 괴담을 인터넷에선 못 보고 <조선일보>보도를 통해서만 봤지만)

물론 우리 나라는 절대 그렇게 안 될 것이다. 그런 괴담 따위가 실현될 리가 없다.

한국의 경우 FTA협상 개시 때 경제부총리를 지낸 사람은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총리로 영전했다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주미대사가 됐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유엔대사를 거쳐 삼성그룹 사장이 됐다. 협상수석대표는 장관급 통상교섭본부장이 됐다. 농업부분 대표는 외교부 차관이 됐다.

아마 그들은 계속 잘 나갈 것이다. IMF의 주역이 기획재정부 장관을 거쳐 산업은행금융지주 회장이 된 것 처럼. 혜택은 '그들끼리', 고통은 '우리끼리' 나누는 것이라는 게 역사의 교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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