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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과달카사르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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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과달카사르는 어떻게 됐을까?

[한미FTA 뜯어보기 63][멕시코 논쟁(7)][르포] 그곳은 '암과의 전쟁' 중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과달카사르. 인구라고 해봐야 1200명 남짓인 이 '깡촌'이 멕시코 사람들은 물론 한국 사람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이곳이 미국기업 메탈클래드와의 소송에 휘말리면서부터다.

1993년 메탈클래드는 멕시코 기업 코테린이 이곳에 설치한 유독성 폐기물 하치(transfer)장을 사들인 다음 그 하치장을 폐기물 매립(landfill)시설로 바꾸는 확장공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과달카사르 주민들 사이에서는 원인 모를 병에 걸리는 이들이 속출했고, 이에 과달카사르 정부는 폐기물 매립시설의 건설·운영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메탈클래드가 멕시코 연방정부와 산 루이스 포토시 주정부의 허락을 받았다며 3동이나 되는 매립시설을 지은 뒤였다. 메탈클래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의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를 이용해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에서 패한 멕시코 정부는 1500만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메탈클래드에 지급해야 했다.

그 후 과달카사르는 어떻게 됐을까?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한 차가 시 외곽으로 빠져나가자 벨트 모양으로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세계 최대의 빈민촌이 눈에 들어온다. 멕시코 사람들이 집 외벽을 빨강, 노랑, 초록 등 원색으로 칠하기 좋아하는 덕에 이 빈민촌도 멀리서는 '이국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인다. 시속 120km로 차를 운전한지 30분이 지났는데 빈민촌의 행렬은 끝나지 않았다.
▲ 차로 30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멕시코시티 외곽의 빈민촌 벨트. ⓒ 프레시안

5시간 넘게 차를 달려 문제의 과달카사르에 도착했다. 고속도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한참 들어간 곳에 있는 이 마을은 세계 여느 나라 시골이 다 그렇듯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주말을 맞아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 있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동네 유지 격인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마을 아이들은 2~3명씩 무리를 지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았다. 이곳에 도착해 첫 눈에 들어온 이런 모습에서 10년 넘게 원인 모를 불치병이 속출해 '죽음의 마을'로 변한 과달카사르의 아픔은 잘 느껴지질 않았다.
▲ 과달카사르 마을 입구. ⓒ 프레시안

▲ 과달카사르 사람들은 몇 년 전부터 오염된 지하수 대신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다. ⓒ 프레시안

"도대체 왜 암에 걸리게 됐을까요"

▲ 난소암 투병 생활을 시작한지 1년 만에 머리카락과 눈썹이 거의 다 빠져버린 에스텔라 가르시아. ⓒ 프레시안

"보시다시피 우리는 자연 속에 살고 있어요. 저는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고기도 많이 먹지 않아요. 피임기구도 사용하지 않고, 유산 경험도 없고, 성관계도 복잡하지 않아요. 운동도 많이 합니다.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왜 내가 암에 걸리게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난소암을 앓고 있는 에스텔라 가르시아. 가르시아는 2005년에 발병한 난소암으로 눈썹이 다 빠졌고 머리카락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마을잔치에 가기 위해 눈썹을 그리고 친구가 선물로 사준 가발을 썼다.

그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국립병원인 IMSS에서 치료를 받는다. 원래는 의료보험이 없어 한 달에 250만 원 가까운 치료비를 모두 감당해야 했으나, 동생이 사회보장 기관에서 일하는 덕에 이제는 가족의료보험 혜택이나마 받게 됐다.

"배움이 부족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 바로 옆에 유독성 폐기물이 버려지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여기를 떠나면 갈 곳도 없는데 안다고 한들 뭐 하겠습니까."

가르시아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지만 이내 풀이 죽어 "그런다고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뇌증과 같은 병으로 죽는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 "제 아이 말고도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들은 많습니다"라고 말하는 후안 로모. ⓒ 프레시안

1997년 후안 로모의 아내는 뇌가 없는 아이를 낳았다. 후안 로모는 태어난지 6일 만에 죽은 아이를 들쳐업고 멕시코 정부가 주최한 공청회에 나가 "이래도 메탈클래드의 폐기물 처리시설에 문제가 없느냐"고 절규했다. 결국 로모는 아이의 죽음이 불러온 부부간 불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내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97년 제 아내가 무뇌아를 낳았을 때 여기서 24km 떨어진 인근 마을에서 4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4명 중 3명의 여자아이들이 얼굴에 물혹이 솟아오르는 병(뇌수종)으로 인해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죽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명의 남자아이는 척추가 2개로 갈라져(척추분리증) 있습니다."


1993년부터 2006년 현재까지 이곳에서 무뇌증, 뇌수종, 척추분리증, 다운증후군 등과 같은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의 수는 43명으로 집계된다. 로모는 "이런 증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 아이가 태어나기 며칠 전에 똑같은 증상을 가진 여자아이가 태어났지만 그 아이의 가족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그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자궁암에 걸려 자궁을 들어낸 젊은 엄마들도 많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아는 게 부끄러워 말하지 않습니다."

마을 묘지, 10년 전부터 갑자기 붐비다

과달카사르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의 공동우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동우물의 물은 빨래를 하거나 마을 옥수수를 재배하는 데만 사용한다. 먹는 물은 슈퍼마켓에서 산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과달카사르에서 생수를 사다 마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생수뿐 아니라 코카콜라의 소비량도 크게 늘어났다.

메탈클래드의 폐기물 처리시설과 가까운 곳에 사는 동물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가 많다. 새로 태어나는 동물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장애나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들도 많다.

"동물들에게까지 생수를 사다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죠. 사실 마을사람들 중에도 지하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생수를 사먹을 돈이 없어 그냥 지하수를 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페르난도 토레스, 마을주민)

과달카사르뿐 아니라 인근 마을의 사람들도 '원인 모를'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암으로 죽은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또한 이들이 걸린 암은 간암, 폐암, 위암, 자궁암, 유방암, 백혈병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암들이 다 망라돼 있다. 마을 묘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암으로 죽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 마을사람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마을 공동우물. ⓒ 프레시안

▲ 형형색색의 꽃으로 치장된 마을 공동묘지. ⓒ 프레시안


"메탈클래드가 멕시코 회사였다면 정부가 보상 명령을 내렸겠죠"

과달카사르에서 28km 떨어진 라 페드레라에 가보았다. 바로 이곳에 메탈클래드의 폐기물 매립시설이 있다. 메탈클래드가 800헥타르가 넘는 사유지에 돌담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기자는 온몸을 선인장 가시에 긁혀가며 근처 야산 위로 올라가서야 비로소 문제의 폐기물 시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폐기물 매립시설 주변에서는 작은 실개천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물이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만약 메탈클래드가 멕시코 회사였다면 정부가 그 회사 때문에 고통받는 지역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주라고 명령했을 겁니다."

기자와 동행하며 메탈클래드의 폐기물 매립시설로 가는 길을 안내해준 과달카사르의 환경감시원은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그는 4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오히려 정부가 메탈클래드에 보상금을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무력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 인근 야산에서 내려다본 메탈클래드의 폐기물 매립시설.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은 이곳에서 매립된 유독성 폐기물이 지하수를 오염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 프레시안

▲ 과달카사르 마을 담장에 '메탈클래드는 물러가라'고 적혀 있다. ⓒ 프레시안

정부의 보호를 못 받는 과달카사르 사람들

과달카사르 마을 사람들은 그린피스 등 외부 환경단체들의 도움을 받아서 멕시코 정부에 환경오염의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비난과 함께 마을사람들 중 일부에게만 돈을 뿌리는 이간질이었다. 기자를 안내한 환경감시원은 "우리는 기형아 출산이나 암 발병 등의 문제를 정부에 알렸지만 정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거짓말로 치부했다"고 말했다.

매탈클래드와의 소송에서 패하고, 멕시코 정부로부터 보호받지도 못하고, 그런 와중에 암과 전쟁을 벌어야 하는 과달카사르. 이 작은 마을의 비극은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기업인 매탈클래드와 멕시코 정부가 바로 이렇게 말한다. 과달카사르 사람들은 매탈클래드를 상대로 직접 보상을 받아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우리 정부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하는데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봤자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있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을 보호해줄 정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달카사르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돌아오던 길에, 한 농촌 마을 앞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멕시코 사람들이 방울뱀이나 살쾡이의 껍질을 말린 것을 내놓고 팔고 있는 모습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야생동물을 포획해 파는 것은 이 나라에서도 불법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 말고는 뾰족한 생계수단이 없다. 그들은 나프타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그런 '어렵고 거대한 것'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너무 고달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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