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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가 '동시다발 FTA'를 추진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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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가 '동시다발 FTA'를 추진했던 이유

[한미FTA 뜯어보기 48:멕시코 논쟁(3)] 사파타 멕시코대학 교수 인터뷰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NAFTA)이 발효된 후 멕시코 경제와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100명의 전문가에게 물어본다면 100가지의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의 기본원칙을 옹호하는 전문가는 "외국인투자와 수출이 늘어나 멕시코 경제가 성장했다"고 대답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전문가는 "비정규직의 비중이 늘어나고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FTA 협상을 벌이고 있는 우리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나프타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주장'이 아닐까. 한미 FTA를 국가의 최우선 경제정책으로 정했다면 미국과의 FTA가 멕시코의 경제와 사회에 어떤 부작용을 가져왔는지 파악해 그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국민들을 협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급하게 요구되는 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나프타가 멕시코 경제와 사회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의 권위자로 이름이 높은 프란시스코 사파타 멕시코대학 교수(노동사회학)를 만나봤다. 프란시스코 사파타 교수는 현재의 멕시코 경제를 나프타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전제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프타가 멕시코 경제에 '독'이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이제는 미국 경기가 좋아져도 멕시코의 대미수출이 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프란시스코 사파타 교수. ⓒ 프레시안

사파타 교수가 나프타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든 것은 멕시코 경제와 미국 경제의 '동조화' 현상이다. 나프타로 두 나라의 경제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서 미국의 경기가 나빠지면 멕시코 경기도 덩달아 악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나프타가 발효된 후 멕시코 정부가 다른 많은 나라들과 FTA를 체결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동조화의 부작용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노력에서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멕시코는 FTA 체결국들 대부분과의 교역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자 2003년 일본과의 FTA 체결을 끝으로 당분간 어떤 나라와도 FTA를 추가로 체결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사파타 교수는 나프타가 발효된 후 특정 산업분야의 고용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열악한 노동조건과 최저치의 임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프타가 발효된 후 가장 생산 활동이 왕성해졌다는 산업부문에서 창출된 일자리란 것이 대부분 '4개월짜리 임시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사파타 교수는 교육, 의료 등 멕시코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가 나프타로 다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통신, 교통, 금융, 보험 등 대부분의 공공서비스가 나프타를 계기로 완전히 잠식됐으며, 의료 등 아직 남아있는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수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에만 목맸던 멕시코…나프타의 부작용 상쇄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FTA 추진

<프레시안>: 나프타가 멕시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사파타: 모든 멕시코 경제가 나프타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전자 등 일부 생산부문들에만, 특히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북부지역의 마킬라도라(면세 부품과 원료를 조립·수입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멕시코의 공장지역) 산업에만 영향을 미친다.
▲ 멕시코시티 인근의 마킬라도라 단지에 입주한 삼성.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에만 있었던 마킬라도라는 이제 멕시코 전역에 퍼져 있다. ⓒ 프레시안

1996~2000년에는 마킬라도라 산업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기간 동안 세 국가(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의 무역이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자동차, 전자제품 등 마킬라도라 산업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2000~2001년에는 미국(경제 침체)의 영향을 받아 마킬라도라의 수출이 감소했다. 그러다 (미국의 경기가 회복된) 2002~2003년에 수출이 다시 증가했다.

따라서 나프타 이후 나타난 수출의 증가란 연속적인 증가가 아니었다. 수출이 감소하는 시기도 있었다. 이는 미국 경제에 대한 멕시코 경제의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미국 경기가 호황이면 멕시코 경제도 좋아지고, 그 반대면 멕시코 경제는 휘청거렸다.

한편 칠레는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정책을 펴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을 확대했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매우 공격적이었다. 이에 따라 칠레는 한 나라의 경기에 의한 영향을 덜 받게 됐다. 미국에만 목을 매고 있는 멕시코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이제는 미국 경기가 호황이어도 멕시코의 대미수출은 증가하지 않는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 상품에 밀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킬라도라의 공장들도 인건비 때문에 중국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1996~2000년 당시 멕시코 정부관료들이 다른 나라들과 FTA 협상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멕시코는 나프타에 앞서 유럽연합(EU)과 FTA를 맺은 칠레 등과 FTA를 추진했다. 미국 경제에의 동조화를 상쇄하기 위해서였다.

<프레시안>: 멕시코 경제와 미국 경제는 나프타 이전에도 밀접한 관계에 있지 않았나?

사파타: 맞다. 멕시코는 원래부터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의 경제주권이 지금처럼 제약을 많이 받는 때는 없었다. 멕시코는 경제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데 있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장과 논의를 해야 하고, 미국 은행들과 상의를 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나프타 이후 크게 증가했다.

반면 멕시코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다른 남미 국가들과의 사이가 멀어졌다. 1980년대 이전에 멕시코는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과 가까웠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들이 멕시코를 아예 북미로 친다.

고용 증가?…생존의 몸부림일 뿐

<프레시안>: 나프타가 멕시코의 노동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사파타: 나프타가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도 매우 제한적이다. 나프타가 발효한 후 가장 활성화됐다는 산업분야에서도 고용은 증가하지 않았고, 이전의 고용 수준을 간신히 유지했을 뿐이다. 나프타는 노동자들의 능력이 급료에 반영되지 않도록 했고, 취업자 수를 증가시키지도 않았으며, 임금 수준을 높이지도 않았다. 멕시코의 최저임금이나 산업별 평균 임금은 (나프타가 발효된) 1994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단 미국 경제와 연관된 산업부문의 생산성은 상당히 상승했다. 가령 GM, 폭스바겐, 닛산,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산업의 생산성은 아주 많이 상승했다. 이 경우에도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1994년과 다름이 없다.

이에 따라 멕시코의 남부 지역에서는 미국으로의 경제적 이주가 급증했다. 매년 40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문서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노동자의 신분으로 미국으로 이주한다.

<프레시안>: 하지만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의 고용효과가 상당하다고 주장한다.

사파타: 멕시코에는 공개된(open) 실업률이 3.4%에 불과하다. 하지만 숨은(under) 실업, 즉 비정규직 취업은 많다. 비정규직의 경제활동은 주로 아웃소싱, 하도급 등의 형태로 이뤄진다.

고용의 증가는 사람들의 생존과 연관돼 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 많은 멕시코 가정에서 남자 가장 혼자만 돈벌이를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 아내도 일을 하고, 아이들도 16세만 지나면 일자리를 찾아나선다. 멕시코에는 최저임금이 120달러로 규정돼 있는데 이 돈이라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인구는 이전보다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규직 일자리의 창출은 없었다. 멕시코의 경제활동인구는 총 인구의 40%, 즉 4000만 명이다. 이 중 정규직이 1800만 명(40%), 비정규직이 2200만 명(60%)이다. 1800만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많은 멕시코 사람들이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

<프레시안>: 나프타로 멕시코의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는데?

사파타: 2000년~2005년 GDP 평균 성장률은 3% 이내에 불과하다. 지난 10년 간 수출이 5배가량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GDP는 정체돼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프타 이후 산업구조가 마킬라도라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마킬라도라에서는 미국의 원료와 부품을 싼 값에 수입해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가공한 후 다시 미국에 수출하거나 멕시코 내수시장에 되팔고 있다. 즉 멕시코 경제에서는 수출의 증가가 곧 수입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GDP의 성장이란 '착시'에 불과하다.

멕시코인들의 예금을 타국 은행장이 관리하는 현실

<프레시안>: 나프타가 공공서비스의 제공 등 국가의 역할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사파타: 나프타로 멕시코 정부가 스스로 판단해 정책을 결정하고 독립적으로 이를 실행에 옮길 권리, 즉 경제주권이 큰 제약을 받게 됐다. 금융, 통신, 철강, 비료, 구리 채굴 등 거의 모든 공공부문이 민영화됐다. 최대 규모의 민영화가 일어난 것은 바로 금융 부문이었다. 현재 멕시코 고유의 은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다른 은행들은 모두 미국, 스페인, 캐나다, 영국 등 해외 금융자본의 소유다. 멕시코 사람들의 예금을 타국의 은행장들이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이런 상황을 나프타 때문만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아닌가?

사파타: 물론 이런 상황이 모두 나프타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나프타를 계기로 국민경제에 매우 중대한 공공 부문들이 속속 민영화됨으로써 정부의 경제개입 능력에 변화가 온 것만은 분명하다.
▲ 멕시코시티 곳곳에서 '끊긴 철도'를 발견할 수 있다. 나프타가 발효된 후 여객 수송용 철도는 사실상 사라졌다. ⓒ 프레시안

멕시코의 공공서비스 중 전기, 수도, 의료, 교육 서비스 부문에는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 예를 들어 멕시코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병원인 IMSS에는 1200만 명의 직속 직원들과 이들의 가족인 총 5000만 명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또 다른 사회보장 기구인 ISSTE에서는 총 200만 명의 공직자와 이들의 가족 1000만 명이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멕시코의 1억 인구 총 6000만 명의 인구가 의료, 퇴직연금 등과 같은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는다. 나머지 국민들은 의료나 퇴직연금의 혜택에서 제외돼 있다. 이나마 지켜낸 것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대한 멕시코인들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 항공, 철도, 운송 등과 같은 서비스들은 모두 민영화됐다. 공공서비스가 상당부분 잠식당한 것이다. 석유회사도 아직 국영이지만 석유에 대한 정부 보조금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주유소에 가면 휘발유값이 1리터당 0.7페소인데 미국보다는 낮지만 그다지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의료, 교육 부문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회계사, 경영자 등 화이트칼라(사무직 직원)는 국영병원인 IMSS에서 진료를 받거나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회사가 지급하는 특별수당으로 민간 의료보험을 구입하고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낸다. 멕시코에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영리 병원과 학교가 있다.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 그 이익은 모조리 미국으로

<프레시안>: 그러면 나프타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파타: 자동차, 전기 등 수출업 부문에 종사하는 극소수의 노동자들이다. 물론 멕시코 경제 전체가 아니라 노동자 한 명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유명한 경제잡지인 <엑스판시온>에 따르면 멕시코의 500대 대기업은 겨우 150만 명만을 고용하고 있다. 이 500대 기업의 총매출을 근무하는 직원수로 나누면 각 개인은 엄청난 돈을 버는 셈이다. 따라서 경제가 아주 극소수의 생산성 높은 사람들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500대 기업에 상품을 파는 중소기업들은 약 10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 1000만 명이 고작 150만 명에게 상품(과 서비스)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수출입 부문에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나오는 수익은 해외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바로 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높은 수익이 외국인투자를 끌어당긴다.

<프레시안>: 한국 정부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양극화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파타: 멕시코뿐 아니라 칠레 등 미국과 FTA를 체결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라. 멕시코나 칠레에서 고용은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 상태다. 또한 이들 나라에서 임금수준 역시 동결돼있다. 멕시코의 최저임금은 120달러, 평균임금은 5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즉, 미국과의 FTA는 고용을 창출하지도, 임금을 올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수출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으로 증대된 수익을 미국 기업들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수익을 결코 멕시코 노동자들에게 배분하지 않는다.

칠레는 포도, 사과, 복숭아, 체리 등 농작물을 많이 수출한다. 주로 여성들이 이런 수출 농작물을 수확하는데, 이들은 11월부터 2월까지 약 4달 동안 일을 하고 3000달러를 받는다. 그런데 이 부문은 3~10월 8개월간 인력을 고용하지 않는다. 멕시코의 수출산업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가장 활성화된 부문에서 4~5개월짜리 임시직만 고용하는 것이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의료보장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부의 재분배를 위한 (정부의) 정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임금의 분배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지난 10년간 멕시코에서 소득의 편중화와 양극화 문제는 크게 심화됐다. 멕시코에서는 인구의 10%가 GDP의 57%를 차지한다. 이는 또한 멕시코의 빈곤문제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멕시코 인구 1억 명 중 4000만 명은 일을 하고 있고 6000만 명은 미취업 상태다. 이 중 약 3500만 명이 빈곤하다. 빈곤의 수준은 도시보다 시골에서 더욱 심각해 약 900만 명의 농부들이 빈곤선 아래서 허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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