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s)다. 대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측 협정문 초안의 '제8장 투자(Chapter 8 Investment)'에는 '투자국과 투자유치국 정부 사이에 투자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국내 사법절차 또는 국제중재를 이용한 적법 분쟁해결 절차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삽입돼 있다." (<프레시안> 보도, 5월 19일)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는) 미국기업뿐 아니라 미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들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며 (…) 투자자 승소 사례로 언급된 (미국) 메탈클래드 사의 사례는 멕시코 지방정부가 연방정부의 허가사항을 월권·번복해 문제된 사례로서 정부의 환경규제 자체가 문제된 것이 아니며 외국인 투자자를 의도적으로 부당하게 차별대우함에 따라 발생한 손해를 정부가 배상하도록 한 사건이었다." (재정경제부 보도자료, 5월 25일)
지난 5월 정부와 <프레시안>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프레시안>은 5월 1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우리 측 협정문 초안에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가 포함됐다는 것을 단독 보도하며 정부가 이 위험한 독소조항을 '자진해서' 협정문에 집어넣은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며칠이 지난 25일 재정경제부는 '항상 그렇듯'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도움을 받아 '한미 FTA: 투자자 대 국가간 투자분쟁 해결 절차'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는 미국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제도라는 정부의 인식 수준에 '경악한' 한미 FTA 반대 진영은 반격에 나섰다.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가 어떻게 한 국가의 공공정책을, 특히 환경·노동 정책을 무력화시키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는 한미 FTA에 꼭 들어가야 할 제도'라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6월 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FTA 1차 협상에서 이 제도는 통합협정문에 포함됐다.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의 성격과 본질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는 미국기업 메탈클래드가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금을 받아냈다는 내용의 '메탈클래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매우 크다. 정부와 보수언론 등은 '멕시코의 중앙정부가 메탈클래드에 폐기물 시설을 설립하라고 허가해줬는데 지방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거부해 메탈클래드가 손해를 봤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한미 FTA 반대 진영은 '멕시코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세운 환경정책을 핑계로 외국인 투자자가 거액의 보상금은 물론 미래의 기대수익까지 받아냈다'는 데 주목했다.
기자는 문제가 됐던 멕시코의 과달카사르 시와 메탈클래드의 폐기물 시설에 직접 찾아가 봤다. 그곳에서 확인한 사건의 전모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멕시코 주정부는 폐기물 '매립'시설의 건축을 허가한 적이 없다
재경부는 5월 보도자료에서 "1993년 5월 산 루이스 포토시 주 정부가 멕시코 기업인 코테린에 폐기물 매립시설의 건축을 허가했으며, 1993년 9월 미국의 메탈클래드는 위험 폐기물 매립시설의 건축·운영을 목적으로 코테린을 정식으로 인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멕시코 현지에서 확인한 결과 산 루이스 포토시 주 정부가 멕시코 기업인 코테린에 설치를 허가했던 것은 유독성 폐기물의 '매립(landfill)'시설이 아니라 '하치(transfer)'장이었다. 멕시코 법은 해외 기업들이 마킬라도라 산업단지에서 만들어낸 유독성 폐기물을 자국으로 되돌려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물론 미국기업들은 이같은 멕시코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 코테린의 하치장은 바로 이런 폐기물이 거쳐가는 '임시 거처'였던 셈이다.
코테린 역시 메탈클래드에 팔리기 직전인 1991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폐기물 하치장을 매립시설로 확장하려고 시도했으나 과달카사르 시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했다. 과달카사르 지역은 물이 모두 지하로 스며드는 토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독성 폐기물을 땅에 묻을 경우 그 안에 들어있는 해로운 물질들이 이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수로 스며들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코테린의 경영진은 하치장을 매립시설로 확장하려는 계획이 좌절되자 미국기업인 메탈클래드에 회사를 넘기기로 결정했다.
메탈클래드에 대한 보상금이 왜 100만 달러나 줄어들었을까
또 재경부는 5월 보도자료에서 "메탈클레드는 법적 의무가 아닌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과달카사르 시에 건축허가를 신청하고 사업을 진행했으며 (…) 멕시코 국내법상 폐기물 시설 운영은 연방정부 권한 사항이며, 시 정부는 이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정부의 이같은 주장은 '비밀주의 재판'으로 악명이 높은 세계은행(WB)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의 유권해석이었을 뿐 나중에 멕시코 정부가 요청한 재심에서는 이런 해석이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왔다.
2000년 8월 ICSID는 '메탈클래드가 중앙정부와 주 정부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 폐기물 매립시설을 건설·운영할 수 있다고 믿게 됐는데 시 정부가 건축허가를 내리지 않아 메탈클래드에 손해를 입혔다'며 멕시코 정부가 메탈클래드에 1668만5천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즉 멕시코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정책 결정 및 집행 상의 '투명성(transparency)'이 부족해 해외투자자가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2000년 10월 멕시코 정부는 이같은 판결에 불복해 ICSID가 재조정 법정으로 지정한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법원'에 재심을 요청했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폐기물 매립시설의 설립·운영은 연방정부뿐 아니라 주 정부, 시 정부 등 3단계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 5월 이 소송을 담당한 데이비드 티소 판사는 'ICSID가 내린 판결은 투명성 조항(Article 18)을 투자 조항(Article 11)에 억지로 가져다 붙힌 부적절한 유권해석'이라며 보상금의 액수를 1668만5천 달러에서 1560만 달러로 100만 달러 이상 낮췄다. 메탈클래드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요구했던 보상금의 액수는 9000만 달러였다.
하지만 캐나다 법정도 '멕시코의 산 로이스 포토시 주 정부가 1997년 뒤늦게 이 지역을 생물다양성과 종 보존을 위한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해외투자자의 재산을 수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끝내 미국기업인 메탈클래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프타 찬성했던 미국 환경단체들이 이제 와 후회하는 이유
나아가 재경부는 5월 보도자료에서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를 FTA에 도입하게 되면 투명하고 적합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환경 및 노동 관련 규제 권한을 무력화 내지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크게 과장된 것"이라며 "동 매립지 건설이 환경적으로도 문제 없다는 환경영향 평가도 발표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나프타 협정문의 투자 조항에는 '국내 보건, 안전, 또는 환경 조치들을 완화하는 투자를 장려해서는 안 된다'는 환경조치 조항(Article 1114)이 삽입돼 있다. 또 협정문 안에 별도로 마련된 환경 조항은 '무역·투자의 촉진을 위해 환경법에 규정된 보호수준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고 '환경보호의 향상을 위한 강제적인 조치는 물론이고 인센티브 등 탄력적이고 자발적인 이행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의 환경단체들도 나프타 체결 당시에는 이같은 나프타의 환경 관련 조항들이 '양국의 환경보호 수준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나프타에 찬성했었다. 하지만 1994년 나프타가 발효한 후 이같은 환경 관련 조항들이 화려한 수사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 현실로 드러났다.
환경영향 평가에서 '수치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과달카사르 시의 경우 폐기물 시설이 들어선 후 주민들 사이에 원인불명의 불치병이 속출했고, 많은 신생아들이 기형아로 태어났으며, 초중등 학생들의 안경 사용률이 급증하는 등 '눈에 띄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제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나프타를 포함한 미국식 FTA, 특히 그 안에 들어가는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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