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뉴노멀 시대에 힘에 의한 일방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취임사를 '위대한 미국의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와 같이 선거 캠페인 때 내걸었던 구호들로 채워 넣었다. 그 대신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등장했던 '생명, 자유, 평화, 행복'과 같은 인간기본권과 국민주권의 원리를 담은 미국 독립선언문의 정신은 빠졌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타난 정책 방향은 크게 보아 통상정책의 보호무역주의와 대외정책의 불개입주의다. 통상정책과 관련해, '국산품 애용과 미국인 고용(Buy American, Hire American)'이라는 경제통상 원칙을 제시하였다. 대외정책에서는 극단적 이슬람세력에 대해서는 강경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 반대자들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 구호를 내걸면서 적극적인 대외개입을 피해 국가재건에 열중하겠다는 불개입주의를 강력히 시사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국경선 강화를 통해 멕시코 불법이민의 유입을 차단하여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미국에서 파는 제품은 미국 안에서 제조하도록 압박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해 나갈 태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정부보조금으로 저소득층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주는 건강보험개혁법안(일명 오바마 케어)을 폐지해 자산층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서명한 행정명령이 바로 오바마 케어를 최소화하는 내용이다. 또한 연방예산자동삭감제도(Sequester, 시퀘스터)를 폐기해 국방비 증액제한을 없앰으로써 강력한 국방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뉴노멀의 시대를 맞이하여 동맹과 자유무역주의로 이루어진 세계질서를 미국의 주도 아래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고 있다. 트럼프의 세계전략에는 두 개의 흐름이 깔려있다. 하나는 닉슨 대통령이 했던 대외정책 대전환이고, 다른 하나는 레이건 대통령이 했던 군비경쟁 강화이다. 그 결과 닉슨 대통령 때 냉전체제의 해체가 시작됐다면, 레이건 대통령 때 냉전체제의 해체가 완성됐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기 위해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상정하고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정권의 출범은 '세계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소외감'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브렉시트를 현명하고 위대한 결정이라며 공개 지지하고 있다. NATO에 대해서는 시대에 뒤떨어져 폐기되어야 할 기구이며, 일부 동맹국들이 충분한 재정부담 없이 안보에 무임승차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 때문에 NATO 개편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회원국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 국가들은 가뜩이나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가 유럽에 대한 가시적인 위협이 완화되어 대미 안보의존 의식이 과거에 비해 떨어진 상황에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꺼려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냉전 당시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의 50%를 담당했으나 현재는 30%를 밑도는 데 대해 불만이 크다. 따라서 미국은 전통적인 안보위협에 대처한 집단안보체제보다 초국가적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의지 연합(coalition of willings)으로 개편하길 바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중국 '미치광이 전략'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질서의 재편을 위해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는 대상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냉전 시대의 옛 소련을 대신하는 미국 세계패권에 대한 도전국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기간 내내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중국 상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중국에서 생산 활동하는 미국기업들은 미국으로 돌아 오라" 등 중국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전략의 목적은 '미국 대통령이 작은 일에도 발끈해 핵전쟁이라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믿게 해 적국들이 감히 미국에게 덤비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원래 이 전략은 닉슨 행정부 때 키신저 국무장관이 고안한 것이지만, 닉슨 대통령이 직접 이 이름을 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국이 중국과 손잡고 옛 소련의 견제에 나선 것처럼, 이번에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적과의 동침'에 나섰다.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고 달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IS테러와 경제침체로부터 미국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고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전략은 닉슨 방식뿐만 아니라 레이건 방식도 혼용하고 있다. 그는 레이건이 선거운동 때 사용했던 '힘에 의한 평화', '위대한 미국의 재건'과 같은 선거구호를 그대로 빌려 썼다. 레이건 대통령이 전략방위구상(SDI)의 시동을 걸면서 군비경쟁을 가속화해 옛 소련의 국력을 소진시켰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그 동안 진행됐던 핵 군비감축을 거부하면서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며 핵 군비경쟁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러한 정책전환의 배경에는 전임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는 트럼프의 평가가 자리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간전쟁·이라크전쟁을 일단락 지으면서, 한편으로 NATO의 동방확대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 재균형정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반발에 부딪쳐 우크라이나사태가 발생하고 IS사태와 시리아 내전의 장기화로 대규모 중동 난민이 발생해 유럽경제가 대혼란을 겪었다. 대러 제재 차원에서 이뤄진 서방국가들의 송유관 차단조치는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이 에너지, 군사 등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득을 본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고 첨단군사기술의 도입으로 '군사 굴기'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일본과 손잡고 대중국 포위망 구축에 나섰지만, 경제적으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역내 국가들은 쉽게 중국 포위망에 참가할 수 없었다. 오바마의 세계전략이 별다른 성과 없이 '중국의 꿈'만 조기 실현할 수 있게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에 기초해 미국의 세계전략을 크게 전환하고자 나선 것이 바로 트럼프의 구상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선 닉슨 방식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을 분리시키고자 한다. 다음으로 역시 닉슨 방식대로 '하나의 중국 원칙' 훼손과 타이완 무기 수출,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군사력 투입, 북핵문제에 대한 비협조를 구실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 실시 등으로 중국을 흔들어놓는다.
끝으로 레이건 방식을 적용해 시퀘스터를 폐기하고 해군·공군 전력을 대폭 증강하며 러시아와 첨단 핵무기경쟁에 돌입함으로써 중국을 군비경쟁에 끌어들이고 국력을 소진시켜 저성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시대의 한미동맹과 북한정책 협력 방향
그렇다면 트럼프 미 행정부의 '미치광이 전략'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는 먼저 한미동맹에 크고 작은 도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다음으로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한미동맹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대선 기간 중 트럼프는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100% 올리라고 주장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남한 내의 미군 주둔이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역외균형자 역할이 큰 만큼, 실제로는 방위비 분담금 때문에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실리(實利)를 중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상 새로운 한미동맹은 공동 가치에 기반한 가치동맹을 넘어 이익 공유의 호혜동맹으로 재규정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북핵 문제의 해결방향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틸러슨(Rex Wayne Tillerson) 미 국무장관 내정자는 1월 11일 미 상원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북한과 같은 적들이 국제규범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세계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북한을 '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북한과 같은 국가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최첨단 미사일 방어시스템 개발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을 '적'이라고 규정하면서도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선제타격을 언급하지 않고 적극방어를 내세운 것은 주목된다.
그렇다면 북미대화의 가능성은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생활방식을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백악관 홈페이지의 6대 국정과제에서 "국익에 기초한 대외정책은 외교적 방식으로 추진할 것이며, 오래된 적들이 친구가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를 환영하며, 적들을 찾아 해외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미사일이 직접 미 본토를 위협하지 않는 한 굳이 북한 내정을 간섭한다든지 먼저 공격에 나서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정책으로부터 어떠한 한반도 문제 해법을 도출할 수 있을까? 트럼프 시대의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위한 핵심과제는 바로 '경제'이다. 경제재건을 위해 불필요한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신행정부의 '미치광이 전략'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 활용하여 남북관계의 개선, 더 나아가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미국은 중-러 에너지·군사 협력관계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유럽 송유관을 재개통하여 러시아의 석유·가스가 중국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하려고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틸러슨이 정권 출범 직전까지 석유 대기업 엑슨모빌의 회장이자 미국석유협회 회장을 맡았던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엑슨 모빌은 동시베리아를 비롯해 만주, 북한지역의 에너지자원에 눈독을 들여왔고, 특히 틸러슨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전략 구상을 읽는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큰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동맹을 호혜관계로 업그레이드해 나가고, 이를 기반으로 러시아 천연가스의 한반도 연결과 북한지역 지하자원의 개발을 통해 미국과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동시베리아·북한지역의 에너지·자원 개발에 한·미 양국이 협력해 나간다면 한반도 긴장 완화는 물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길도 자연스레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을 호혜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없지 않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의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통상압력이 한층 거세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러 관계가 정상궤도에 오르는 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러시아 가스 연결사업이나 북한 지하자원 공동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와 한·미·일 3국의 독자제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전 세계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하면 더했지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손 놓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남북관계, 북핵 문제는 지금까지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제반 환경이 불확정적이고 불확실한 지금이 우리가 먼저 움직일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적기다. 트럼프 시대의 출범을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회로 삼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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