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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의 몰락'이 불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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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송희영의 몰락'이 불안한 이유

[성현석의 토이 스토리] ‘시장 우파’가 사라졌다

한국은 시험 지옥입니다. '토이 스토리'가 비판하려는 것도 이 대목입니다. 시험을 잘 쳐서 얻은 우월감, 혹은 못 쳐서 생긴 열패감에 너무 오래 묶여 있는 이들이 많아요. 놀이가 숨을 쉴 수 없는 문화죠.

'수험의 달인'이 교육감 되면, 우리 아이도 시험 잘 친다?

다들 시험에 한이 맺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시 3관왕'이 교육감 후보가 됐었죠. 개인이 시험을 잘 쳤다는 것과 교육 행정을 잘하리라는 것 사이에서 상관관계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고시 3관왕'은 당선이 유력했었죠.

일종의 신앙처럼 보입니다. 뉴질랜드의 옛 식인 부족은 강한 전사의 살을 베어 먹으면, 그 힘을 흡수한다고 믿었습니다. 비슷한 예가 흔하죠. 암컷과 교미를 자주 하는 동물의 성기를 먹으면, 성적 능력이 세진다고 믿는 사람이 지금도 많아요.

닮은꼴입니다. '고시 3관왕을 교육감으로 뽑으면, 우리 아이도 시험을 잘 치게 될 거야.'

하긴, '부자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우리 모두 부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선거 결과를 정한 적도 있습니다. 식인 부족의 믿음과 우리의 투표 심리는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시험 지옥의 스타,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이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시험 지옥입니다. 심지어 지갑에 넣고 다니는 돈에도 '수험의 달인' 얼굴이 있습니다. 5000원짜리 지폐를 펼치면 나오죠.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입니다.

조선의 과거 시험은 소과 초시, 소과 복시, 대과 초시, 대과 복시, 대과 전시의 다섯 단계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3년마다 치르는 과거 시험(식년시)이 아닌, 별시가 있었고요. 갑작스런 관료 수요가 생겼거나, 왕실의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시험이 별시입니다. 소과는 다시 생원과와 진사과로 나뉩니다. 둘은 시험 과목이 달라요. 생원과는 인문학 고전 지식을, 진사과는 글쓰기 능력을 주로 평가합니다.

이이는 이 가운데 진사과 초시, 진사과 복시, 생원과 초시, 생원과 복시, 별시 초시, 대과 초시, 대과 복시, 대과 전시를 모두 장원으로 합격했습니다. 조선 50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29살에 아홉 번째 장원 급제를 기록하자 한양 도성 안이 난리가 났다고 하죠. 시험 지옥 조선의 스타였던 겁니다.

9번 수석 합격한 율곡의 1등 공부법?

율곡 이이가 지금 되살아나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면 바로 당선되겠네요. 실제로 <율곡의 공부-아홉 번 장원 급제의 비밀>(송석구 지음, 아템포 펴냄)이라는 책도 나왔죠.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조선 500년 역사 최고의 공부 천재, 9번 수석 합격한 율곡의 9가지 1등 공부법"이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앞에 적은 내용을 꼼꼼히 읽은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겁니다. '구도장원공', 그러니까 아홉 번 장원 급제를 했어요. 그런데 앞서 열거한 시험 횟수는 여덟 번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뭐죠. 이이는 진사과 초시를 두 번 치렀어요. 이미 장원 급제를 했는데, 또 시험을 쳐서 장원을 한 겁니다. 그래서 아홉 번 장원을 했습니다.

당대에도 욕을 먹었어요. 장원 급제 횟수에 목을 맨 사람 같다는 거죠. 생원과와 진사과 가운데 하나만 붙어도, 소과 합격자가 됩니다. 대과 응시 자격을 얻는 거죠. 그런데 굳이 둘 다 쳐서 장원을 했어요. 물론 생원과 진사는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학위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이이는 전공이 다른 학위를 두 개 얻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게 이해해도, 예전에 합격했던 시험을 굳이 또 치른 건 사실 너무했죠.

한편에선 '수험의 달인'으로 추앙했지만, 다른 편에선 '대체 왜 저러나' 싶은 눈길도 있었어요. 지금의 '고시 3관왕'에게도 '어차피 법조인, 행정 관료, 외교관 가운데 한 가지 직업을 택할 텐데 나머지 시험은 왜 쳤나'라는 질문이 늘 따라다닙니다. 자신의 총명함을 과시하느라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건데요. 이이 역시 비슷한 비난을 들었습니다.

율곡 이이가 없었다면, 조선 후기 역사는?

지금도 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하면 이런저런 혜택이 있습니다. 하지만 첫 직급 자체를 높여주지는 않아요. 예컨대 행정 고시 합격자는 모두 5급 사무관으로 출발합니다. 수석 합격자라고 해서 바로 4급 서기관으로 시작하지는 않죠. 하지만 조선 시대의 대과 장원 급제자는 첫 직급 자체가 더 높았어요. 반드시 장원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죠.

어찌됐건 이이는 장원 급제를 한 덕분에 29살에 종6품 호조정랑이 됩니다. 뭇 선비들의 관심, 그리고 질시를 한 몸에 받으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죠. 그리고 49살에 세상을 떠납니다. 딱 20년 동안 공인(公人)으로 지낸 거죠. 그 사이, 정치와 학문 양쪽에서 눈부신 활약을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글은 '수험의 달인'을 조롱하는 걸로 끝났을 겁니다. 조선 사회가 숱한 시련을 거치면서도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체제가 선발해서 기득권을 줬던 이들이 나름의 역할은 했기 때문일 겁니다.

율곡 이이 같은 이들이 꾸준히 나왔던 거죠. 이이는 대표적인 경장론자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개혁가입니다. 국가는 창업-수성-경장의 단계를 거친다고 봤죠. 당시 조선은 경장, 그러니까 개혁이 필요한 때라는 겁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개혁 정책들은 대부분 이이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조세 개혁 정책인 대동법 역시 이이의 구상과 연결됩니다. 이이는 <동호문답>, <만언봉사> 등에서 현물 세금인 공납을 쌀로 내게끔 하자고 주장합니다. 그게 대동법의 기본 줄기죠. 물론 조광조, 류성룡 등도 비슷한 주장을 했어요. 하지만 이이의 주장이 더 적극적이고 정교했죠. 후대의 정치인들에게 미친 영향력도 더 강했고요. 개혁적인 경세가 이이가 없었다면, 조선 후기 역사는 더 망가졌을 겁니다.

'공공의 적'이 된 검사들

역시 시험 지옥인 한국은 어떤가요. 역시 국가가 시험으로 선발해서 막강한 기득권을 부여한 집단, 대표적으로 검사들이죠. 개혁을 주도하기는커녕 공공의 적이 돼 버렸습니다.

검사 출신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정을 혼란의 끝장으로 몰고 갑니다. 2005년 초 개봉한 영화 <공공의 적 2>에선 배우 설경구 씨가 주인공 '강철중 검사' 역을 맡았죠. 강력부 검사가 사학 이사장의 범죄를 파헤치는 내용인데요. 기대만큼 흥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관객이 보기에, 검사가 공공의 적과 싸운다는 설정이 영 어색했던 겁니다. 그때 이미 드러났죠. 검사는 개혁의 주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개혁의 대상입니다.

▲ 영화 <공공의 적2>. 사진 오른쪽이 주인공 강철중 검사(설경구 분). ⓒ시네마서비스

'접대' 아닌 '놀이'가 필요하다

검찰 개혁의 한 축은 검사들의 보상 심리를 꺾는 겁니다. 시험 지옥에서 살아남느라, 이미 많은 심리적 비용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기껏 들어온 검찰이, 알고 보니 군대입니다. 지나친 권위주의, 폭력적인 술자리 문화, 혹독한 야근…. '이러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어지죠. 여기서 물러서면, 책상 앞에서 보낸 지난 세월이 허무해집니다.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버팁니다.

그렇게 해서 검찰 고위직이 됐습니다. 보상 심리, 그러니까 본전 생각이 안 들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거죠. 후배 검사들을 '모욕'하기, 지역 유지들에게 '갑질'하기, 업자들에게 '접대' 받기…. 그간 묻어둔 본전이 워낙 크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욕, 갑질, 접대로 지난 세월을 보상받을 수는 없죠. 누구나 알 듯,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고생하는 검사들이 좀 놀아봐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도 밤에 많이 놀아'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건 '놀이'가 아니죠. '접대'를 받거나 하는 일입니다. 남에게 스트레스를 떠넘기거나, 혹은 자신이 떠안는 거죠. 스트레스의 총량은 여전합니다. 오히려 늘어나죠. 그것 말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놀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검찰 조직의 야근 및 회식 문화도 바뀌어야 할 겁니다. 그게 개혁인 거죠. '놀이 밥'을 듬뿍 먹고 자란 어른은 '갑질'에 별 재미를 못 느낍니다. '갑질'로 풀어야 할 본전 생각 자체가 없으니까요.

누구든 처음 만나면 서열 정리부터

'토이 스토리'가 비판하려는 또 한 가지는 군대 문화입니다. 한국은 나라가 통째로 군대죠. 앞서 검찰이 군대 같다고 했는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디나 비슷합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인들의 세계조차 종종 군대와 닮은꼴입니다.

누구든 처음 만나면, 일단 호구 조사부터 하죠. 그리고 곧장 서열을 정리합니다. 그게 군대 문화죠. 그 역시 놀이 문화의 적입니다. 서열 사회에선 접대만 있을 뿐이죠. 마음 가는대로 즐기는 놀이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시험 점수가 개인을 다치게 했다면, 전쟁의 상처는 사회에 새겨져 있습니다. 군사력 콤플렉스가 뿌리 깊습니다. '고구려의 영광'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우리도 한때는 강했다'라는 거죠.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

이런 정서가 지나치다보니, 역사 왜곡도 잦습니다. 앞서 율곡 이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장론자, 그러니까 개혁적인 경세가라고 했죠.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나오는 게 '십만 양병설'입니다. '이이는 훌륭한 개혁가', '조선은 문약해서 망한 나라', '그래서 필요했던 개혁은 군사력 강화', '훌륭한 개혁가니까, 당연히 군사력 강화 주장'…. 이런 논리 전개인 거죠.

그런데 실제로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이가 정말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는지 의심스러워집니다.

이이가 진지하게 '십만 양병설'을 주장 했다면, 그의 성격상 대단히 치밀한 준비를 했을 겁니다. 아주 풍부한 논거를 확보했겠죠. 그리고 조정에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을 겁니다. 이이는 매끄러운 논리로 논쟁을 주도했을 테고요. 그럼 당연히 <조선왕조실록>에 자세한 기록이 남습니다. 그런데 <실록>에 기록이 없어요. 인조 반정 뒤, 그러니까 이이가 죽고 나서도 한참 뒤에 편찬된 '선조수정실록'에 담긴 내용일 뿐입니다. 여기도 짧게 소개돼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처음 소개된 건,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의 글입니다. 여기 한줄 적혀 있어요.

이이는 '십만 양병설'을 아예 주장한 적이 없거나, 했더라도 무게를 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군대가 십만 명은 돼야 할 텐데'라고 했을 수는 있겠죠. 그거야 누가 알겠습니까.

'지킬만한 나라' 만드는 게 진짜 안보

오히려 이이는 '양병'보다 '양민'이 더 중요하다고 했어요. 백성의 살림살이가 국방보다 먼저라는 거죠. 꼭 이이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유교 정치의 이상이 원래 그래요. 공자가 그랬죠. 백성의 신뢰, 먹을거리(경제력), 군사력 순으로 중요하다고요. 이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군사력입니다.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경제입니다.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무기와 병력을 늘려봐야 뭐 하나요. '이 나라를 꼭 지켜야 하나' '지배층이 바뀌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창을 든 군인들이 이런 생각을 하면 끝입니다. 그 군인들 역시 백성의 일부죠. 그래서 신뢰가 중요합니다. 나라가 잘 되면 지배층뿐 아니라 나머지 다수에게도 이롭다는 믿음이 있어야죠. 이 나라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이 군대만 늘리면, 쿠데타와 내전이 필연이죠.

정유재란 때 의병 봉기가 드물었던 이유

실제로 율곡 이이가 죽고 나서 8년 뒤에 임진왜란이 터졌습니다. 군인이 아니었던 백성들이 스스로 창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전쟁 초기 일본 군대는 저항하지 않는 백성에 대해선 우호적인 정책을 폈습니다. 조선 왕만 잡으면 전쟁이 끝난다고 봤는데, 그럼 조선 백성들을 그들이 다스려야 합니다. 다스릴 백성 수를 굳이 줄일 필요는 없었던 거죠. 그런데도 의병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장수들은 당황했죠. 일본에서 경험한 전쟁에선 없었던 일이니까요.

당시 조선 백성에겐 '이 나라는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또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보답이 있으리라는 신뢰도 있었고요. 자발적인 의병 봉기는 유교 정치의 한 성공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콤플렉스에 젖어 있던 지배층이 이런 믿음을 깼습니다. 의병장을 의심하고 탄압했죠. 일본의 두 번째 대규모 침략, 정유재란 때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본 군대의 점령지 정책이 가혹하게 바뀌었는데도 말이지요. "무신불립"(無信不立,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이라는 유교 정치 이상에 비춰보면, 조선은 이때 무너진 겁니다.

'이런 나라, 굳이 지켜야 하나'

무기가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조선 땅에서 거둘 수 있는 쌀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그걸 정치가 해결하긴 무리입니다. 군사력이 아무리 중요해도, 백성을 굶겨가면서 무기를 늘릴 수는 없죠. 그렇게 되면, 외적이 쳐들어오기 전에 나라가 망하겠죠.

하지만 백성이 나라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건, 그래서 이 나라를 굳이 희생해가며 지킬 필요는 없다고 느끼게 된 건, 누가 다스리나 마찬가지라고 여기게 된 건, 기득권을 누려 왔던 권력 엘리트의 책임입니다. 조세 개혁을 주장했던 이이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이 대목에서 땅을 쳤을 겁니다.

율곡 이름 팔아 뒷돈 챙긴 군인들

이이가 지금 되살아난다면 한숨 쉬었을 대목은 또 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진행된 한국군 전력 증강 사업 이름이 '율곡 사업'입니다. 율곡 이이가 '십만 양병설', 그러니까 군사력 확대 정책을 주장했다는 걸 전제로, 붙인 이름이죠.

밑도 끝도 없는 비리의 온상이었습니다. 한국군은 어차피 병력을 징병으로 확보합니다. 그러니까 전력 증강 사업은 무기 확보가 중심입니다. 무기를 사들이는 과정이 썩어도 너무 썩었던 거죠. 김영삼 정부가 1993년 출범 직후 여기에 메스를 들이댔습니다.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이회창이 지휘했죠. '율곡 비리' 조사를 계기로 이회창은 스타가 됩니다. 그걸 발판으로 정치권에 진출했죠.

'양병보다 양민이 먼저'라던 율곡 이이가 그걸 보면 얼마나 놀랄까요. 율곡의 이름을 팔아서 무기를 늘린 것도 황당한데, 그걸로 뒷돈까지 챙겼습니다.

늘어나는 무기 예산, 누가 감시하나

그리고 지금, 율곡 사업을 시작한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입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방 예산이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정부가 '201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국방 예산은 올해 대비 4.0%가 증가한 40조3000억 원입니다. 올해보다 1조5000억 원이 늘어난 거죠. 국방 예산이 40조 원을 넘어선 건 사상 처음입니다. 현 정부 들어 군인들 처우가 특히 나아진 기미는 없습니다. 오히려 병영 내 인권 유린 사건이 잦았죠. 그렇다면, 늘어난 국방 예산은 주로 무기를 사는 용도라는 겁니다.

그런데 한술 더 뜰 모양입니다. 아니, 아예 막나갑니다.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걸 핑계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추가 도입하자고 합니다. 핵 추진 잠수함을 만들자고 합니다. 독자적인 핵무장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라의 살림살이는 규모가 정해져 있습니다. 무기 사는 돈만 마구 써대면, 다른 돈을 아껴야 합니다. 그런데 인구는 고령화 되죠. 출산율은 여전히 바닥입니다. 이는 재정 수요가 앞으로 확 커지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비싼 무기만 사자고 합니다. 그게 과연 효과가 있는지를 따져보자는 이들도 없습니다. 그간 사들인 무기가 대개는 창고에서 녹슬어 갔던 걸 잘 알면서도 그럽니다.

쓸모 없는 무기 사자는 이들이 바로 '간첩'목이 잘린 백제 개로왕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백제에 보낸 간첩 도림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둑 고수였죠. 역시 바둑 마니아였던 백제 개로왕과 친해졌습니다. 도림은 개로왕을 꼬드겨서 성곽을 튼튼히 하는 공사를 벌입니다. 그 바람에 백제가 망할 뻔합니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진 거죠. 개로왕은 목이 잘리고요.

튼튼한 성곽, 좋은 무기가 나라를 지켜주는 게 아닙니다. 정부 재정이 파탄 나고 민심이 흩어지면, 무기나 성곽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쓸모없는 무기를 사라고 부추기는 자들이 바로 '간첩'일 겁니다.

'시장 우파'가 안 보인다

그 많던 '시장 우파', 신자유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정부가 돈을 낭비합니다. 그런데 작은 정부를 주장하던 이들이 침묵합니다. '시장 우파'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하필 이런 시기에 송희영 전(前) <조선일보> 주필 사건이 터진 것도 상징적입니다. 송 전 주필은 전형적인 '시장 우파' 논리를 폈습니다. 그의 선배 격인 조갑제 씨와 대조적이죠. <월간조선> 편집장을 지낸 조 씨가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안보 우파'라면, 송 전 주필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시장 우파'입니다. 실제로 송 전 주필은 국가가 주도하는 토건 사업에 대해선 거리를 뒀어요. 또 정부 주도 산업 정책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죠. 박정희 식 경제 정책과는 다르죠. 2008년 금융 위기 전까지는, 금융 자본주의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하자고도 했죠. 그가 이런 주장을 한 직후, 리먼브라더스는 망합니다.

확실히 이젠, '시장 우파'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그들은 역사 논쟁 뒤로 숨어버린 것 같아요. 건국절 주장 따위나 하고 있죠.


▲ 2007년 6월 2일자 송희영 칼럼. "금융이야말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제왕적인 산업으로 이미 등장했건만, 아직도 토목-건설 공사나 항만-운송업, 물류업을 기반으로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 구식(舊式) 경제 전문가들이 한국에는 많다"라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질타하는 내용이다. "지금 이 땅에는 박정희나 정주영, 이병철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이 다시 왔으면…' 하고 과거 지향의 추억에 젖어 드는 계층이 두텁게 남아있다."이라는 내용도 있다. <조선일보>의 다른 칼럼니스트들과는 색깔이 다르다. ⓒ조선일보

'시장 우파'의 퇴장이 불길한 이유

시장 만능주의는 명백히 잘못입니다. 하지만 '시장 우파'의 퇴장 역시 불길합니다. 민주주의와 복지를 확대하는 흐름 때문에 뒤로 물러난 게 아니잖아요.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안보 우파'에게 밀려난 겁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안보 우파'만 너무 득세한 사회를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의 일본 제국이죠. 북한도 어쩌면 비슷합니다. 시장의 순기능을 믿지 않아요. 통제 경제에 집착합니다.

시장 만능주의가 나쁘다고 해서, 시장까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와 시장은 다릅니다. 자본주의가 생기기 전에도 시장은 있었죠. 고조선 역시 중국과 무역을 했습니다. 금관가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은 고대의 무역항이었습니다. '철의 바다'(김해)라는 이름에 그 흔적이 있죠. 간척 사업이 진행되기 전에는 그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습니다. 자본주의는 예전에는 시장에서 팔리지 않았던 것들, 예컨대 노동력, 토지 등까지 시장에 내놓는 체제일 뿐입니다. 시장 기능 자체를 통째로 적대시하는 건, 위험합니다.

<맹자>도 권장한 시장 경제

흔히 유교가 시장과 적대적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맹자>만 읽어봐도 알 수 있죠.

"市廛而不征,法而不廛,則天下之商皆悅而願藏於其市矣 (시전이부정 법이부전 즉천하지상개열이원장어기시의).
關譏而不征,則天下之旅皆悅而願出於其路矣. (관기이부정 즉천하지려개열이원출어기로의)"

대략 이런 뜻입니다. (배병삼 영산대학교 교수의 해석입니다. 의역돼 있습니다.)

"상품 거래에 세금을 매기지 말고, 점포를 열어도 자릿세를 물리지 말라. 그러면 천하의 상인들이 기뻐하며 몰려오리라. 수출입에 관세를 매기지 말고, 국경에선 다만 범죄만 기찰하라. 그리하면 온 세상의 무역상들이 기껍게 몰려오리라."

한마디로 자유 무역을 권장하는 내용입니다. 상인들의 이윤 추구는 보장하되, 권력 엘리트가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 건 막았어요. 그게 <맹자>의 논리입니다.

시장을 억누른 총동원 제제, 오래 갈 수 없다

오히려 상업을 억누른 건, 유가가 아니라 법가입니다. 적어도 제자백가가 활동하던 때를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법가 사상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통치 이념이었죠. 법가 사상에 비춰보면, 상인은 잉여 집단입니다. 생산 계층에 기생하는 집단이라는 거죠. 농민이나 공인처럼 직접 생산에 종사하지 않죠. 군인처럼 나라를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상인들을 탄압했어요. 잉여 집단을 용납하지 않는 법가 사상은 국가 총동원 체제를 위한 이념에 가깝습니다.

옛 일본 제국의 통치 방식이 법가와 닮았죠. 지나치게 서열을 따지는 문화 등 우리가 흔히 유교 문화의 잔재라고 부르는 것들도 유교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대개는 옛 일본 군대 문화의 흔적입니다. 굳이 따지면 법가와 가까울 겁니다.


법가 이념이 주도했던 진나라는 통일에는 성공했지만 곧 망했습니다. 일본 제국 역시 한동안 팽창했지만, 넓은 영토를 유지하지 못했죠. '안보 우파' 논리와 가까운 법가 이념의 한계입니다. 통제 경제, 국가 총동원 체제는 일시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갈 수는 없습니다. 진나라 다음의 통일 왕조가 한나라인데요. 한나라 창업자의 군대가 진나라 수도에 진주했을 때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내걸어서 민심을 샀던 건, 상징성이 큽니다. 불필요한 통제와 규제를 확 줄인다는 거죠.

'페이퍼스 플리즈', '서류 스릴러' 게임을 아시나요?


개인의 욕망, 자유 의지를 긍정하는 시장주의자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안 보입니다. '시장 우파'는 안 보이고, '안보 우파'만 설칩니다. 그 끝에 뭐가 있을까요.

이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디 게임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페이퍼스 플리즈'( Papers, Please)라는 게임입니다. 루카스 포프(Lucas Pope)라는 개발자가 혼자 만든 게임이에요. '서류 스릴러'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게임을 실행하면, 당신은 '아스토츠카'라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의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됩니다. 거기서 여권 등 서류를 심사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온갖 사람들이 국경을 드나듭니다. 그저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도 있고요. 범죄 수배를 피해 도망치는 이들도 있어요. 또 정치적 망명자, 체제 전복을 노리는 혁명가도 있습니다. 말단 공무원인 당신은 서류를 보고 이들을 잘 가려내야 합니다.

서류 심사를 열심히 해야 수당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의 서류를 통과시키면 안 됩니다. 그걸 조심하느라 서류 처리가 늦어지면, 소득이 부족해서 가족이 굶게 됩니다. 이 경우, 뇌물을 받는 선택지도 있는데요. 역시 위험이 따릅니다.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아야죠. 그래서 '서류 스릴러'입니다.


▲ '페이퍼스 플리즈.' ⓒ3909

'동무, 려권 내라우'

게임에 대한 이용자의 평가는 다양합니다. '독특한 경험을 했다'와 '지루하다'가 엇갈립니다. 하지만 공통분모가 있죠. 전체주의 사회, 통제 사회의 공무원 노릇이 참 쓸데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앞서 소개한 <맹자>의 내용처럼, "국경에선 다만 범죄만 기찰"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왜 굳이 길을 가로 막고 서류 심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한국 이용자들이 개발자에게 한국어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오기가 생긴 한국 이용자들이 독자적인 패치를 제작했어요. 역시 통제 사회인 북한을 배경으로 삼았죠. '동무, 려권 내라우'라는 겁니다. 배경만 북한일 뿐 설정은 똑같아요.

"성만 쌓지 말고, 길도 좀 내자"

'안보 우파'만 득세할수록 우리 현실은 이 게임 속 설정과 닮아갈 겁니다. '시장 우파'도 목소리를 내기 바랍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고 하죠.

'성만 쌓지 말고, 길도 좀 내자'라고 하는 게 '시장 우파'의 역할일 겁니다. 창업과 도전, 자유로운 교역을 지지하는 '시장 우파'라면 마땅히 그래야죠.

앞서 시험 지옥과 군대 문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놀이'의 적이라고 했죠. 시험과 군대는 모두 국가가 담당합니다. 엘리트 집단이 오로지 시험지옥과 군대 문화를 통해서만 배출되는 사회 역시 '시장 우파'라면 반대해야 할 겁니다. 그건 국가의 통제가 너무 강하다는 뜻이니까요.

'시장 우파' 목소리 컸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한국에서 '시장 우파'가 활발했던 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입니다.


벤처 창업이 활발했고, 자유 무역을 옹호했습니다. 정부의 역할을 줄였고, 엘리트 선발 통로도 다원화 했습니다. 고시가 아닌 방식, 예컨대 로스쿨 도입 논의가 급류를 탄 것도 그 때입니다. 당연히 부작용이 있었죠. 이런 변화 속에서 기회를 잡는 건 아무래도 '금수저'가 유리하니까요. 그게 우파 개혁의 한계일 겁니다. 그걸 바로 잡는 게 좌파 개혁의 몫일 테고요.


현 정부 수뇌부가 모조리 '안보 우파'. '고시 엘리트'로만 채워집니다. 그래도 '시장 우파'가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시험지옥, 군대 문화와 싸우는 우파를 기다린다

시험 지옥과 군대 문화와 싸우는 우파의 등장. 그럼, 진보 진영도 좋은 적수를 만나게 될 겁니다. 조갑제와 같은 '안보 우파'만 남으면, 진보도 함께 늙어갑니다.

송희영 전 주필이 잘못에 걸맞은 책임을 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그의 빈자리를 메울, 실력있는 '시장 우파' 논객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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