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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가 '흙수저'라서 창피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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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구가 '흙수저'라서 창피한가요?"

[성현석의 토이 스토리] 흙수저 개발자의 '내 꿈은' 시리즈

지난 회에서 <손자병법>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자 손무가 이 책을 쓴 곳이 궁륭산인데요. 지금의 쑤저우(蘇州, 소주)에 있는 산입니다. 당시엔 오나라 땅이었습니다. 거기에 집을 짓고 <손자병법>을 집필하던 손무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오나라 대부 오자서였죠. 초나라 출신으로 오나라에 망명해서 활동했던 그의 처절한 복수극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초나라 평왕이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을 죽였죠. 그 복수를 한 겁니다.

오나라는 왜 손무를 '스카우트' 했을까

오자서가 궁륭산을 찾은 건, '스카우트' 목적이었습니다. 손무는 곧 오나라 장수로 기용됩니다.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손무가 활동하던 때는 춘추 시대 말기입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죠. 손무는 그때까지 유명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손자병법>이 완성돼 널리 유포된 때도 아니었죠.

오나라 고위층은 손무의 실력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요. 대체 무엇을 보고, 손무에게 군사를 맡기기로 한 걸까요. 사마천이 쓴 역사책 <사기>에 짧은 일화가 소개돼 있습니다. 오자서가 추천한 손무를 왕이 만납니다. 구술 면접을 치르죠. 손무는 대답을 잘 합니다. 왕의 궁녀들을 데리고 용병 시범을 보이라는 숙제가 나옵니다. 궁녀들이 손무의 명령을 무시했어요. 하지만 손무가 도끼로 궁녀 두 명의 목을 베자 나머지 궁녀들이 말을 잘 듣게 됐죠.

별로 설득력이 없죠. 이런 내용을 읽고, '아 그래서 오나라 왕 합려가 손무에게 군사를 맡겼구나'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거의 없을 겁니다.

전쟁 명문가의 후손

다른 단서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가문'입니다. 손무는 원래 제나라 전 씨 가문 출신입니다. 전 씨? 맞습니다. 원래 전 씨 집안인데요. 그 중 한 갈래가 손 씨가 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론 "제나라 낙안 사람이며 전완(田完)의 후예"라고 소개됩니다. 중국 고대의 성(姓)과 씨(氏) 개념은 지금과 달라요. 그래서 좀 어색할 수 있는데요. 어찌 됐건, 제나라 전 씨 집안 출신입니다. 전쟁 명문가예요. 훗날 제나라 왕위를 찬탈하죠.

당시엔 근대적인 학교 개념이 없었죠. 가문의 전승으로 지식과 기술이 전수됐습니다. 전쟁의 노하우는 요즘으로 치면 산업 기밀쯤 됐겠죠. 외부로 알리지 않고, 자식에게만 전수합니다. 대대로 장군을 배출하는 집안은, 그래서 나온 거죠. 무협지에서도 흔히 보죠. 가문 안에서만 읽히는 무예 비급이 있습니다.

손무는 유명하지 않았어도, 전쟁 명문가 전 씨 집안은 다들 알았죠. 당시 오나라는 신흥 국가였어요. 막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던 참이죠.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컸습니다. 오자서 같은 망명자에게 고위직을 맡긴 것도 그래서겠죠.

그런데 전 씨 집안의 후손이 고국 제나라와 척을 지고 오나라로 흘러들었어요. 그걸, 오나라 고위층이 알게 된 겁니다. 전 씨 집안의 전쟁 노하우를 흡수할 수 있는 기회였던 거죠.

가문이 곧 스펙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전문가로 활동했던 사람이 퇴사한 뒤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칩시다. 중국 반도체 업체 관계자라면, 무조건 그를 만나려고 할 겁니다. 단지 '삼성 반도체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만날 이유는 충분한 거죠. 기업의 핵심 노하우는 외부에 잘 공개되지 않죠. 조직의 구성원이 돼야만 배울 수 있습니다. 전 씨 집안의 전쟁 비급을 익힌 손무를, 오나라 고위층이 영입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근대 이전 사회에서 왜 '가문'을 중시했는지가 쉽게 이해됩니다. 지금은 어느 학교에서 뭘 전공했고,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로 사람의 능력을 가늠합니다. 지식과 기술이 학교와 직장에서 전수되니까요. 하지만 옛날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가정과 학교가 분리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어느 가문 출신이냐'라는 질문은 '어느 학교, 혹은 어느 회사 출신이냐'라는 것과 비슷한 의미였던 거죠. 가문이 곧 스펙이었던 겁니다.

옛 사람들은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 가문 출신인지를 종종 자랑했습니다. 구전으로만 전승되던 지식이 책으로 갈무리돼 유통된 뒤에도 말이죠. 사람에게 꼭 지식만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예의범절, 문화에 대한 안목, 인간관계의 요령 등도 중요합니다. 이런 건, 책으로 익힐 수 없죠. 가정 교육이 담당하는 몫이 큽니다.

이런 생각, 오래 하면 속이 답답해지죠. 모든 사람이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역적의 후손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가끔, 통념을 깨는 이들이 나타납니다. 가문이 나쁘면, 거짓말로라도 가문 자랑을 하던 시대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나는 역적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기꾼이었다. 가짜 암행어사 노릇을 하다 들통이 나서 감옥에 갔다. 이웃 양반 댁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17살에 나를 낳았던 어머니는 내가 귀찮아서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꾼이었는데, 술에 취하면 사람을 팼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장애인이 됐다. '판박이 상놈' 집안이라서, 우리 가문의 딸이 양반 집안으로 시집가는 일은 있어도, 양반 가문의 딸이 우리 집안으로 시집오는 일은 없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을 겁니다.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 도입부를 간추린 거죠. <백범일지>는 원래 김구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읽히려고 쓴 것입니다.

"얘들아, 우리 가문이 실은 상놈 집안이란다. 아버지는 공부도 제대로 못했지. '출신은 비천하나 훗날 큰 인물이 될 관상' 따위를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과거 시험 포기하고 펼쳐든 관상 책을 보니, 내 얼굴과 몸 어디에도 귀한 구석은 없다더구나. 온통 천(賤)하고, 빈(貧)하고, 흉(凶)하기만 했지."

자식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버지, 신선하죠.


▲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독립기념관

"경순왕의 자손" vs. "김자점의 자손"

<백범일지>는 판본이 다양합니다. 일단 김구 스스로 내용을 여러 차례 고쳤어요. 그걸 한글로 옮기고 책으로 내는 과정에서, 문장을 대폭 손질했습니다. 이른바 윤문을 한 거죠. 예전에 널리 읽히던 판본은 춘원 이광수가 윤문 작업에 참가했습니다. 당대의 문장가가 글을 고친 겁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쉽게 읽힙니다. <백범일지>가 베스트셀러가 됐던 한 이유죠.

그런데 이광수가 윤문한 판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안동 김 씨 경순왕의 자손이다."

김구가 직접 쓴 글에는 없는 내용이에요. 다른 판본, 그러니까 김구의 원본에 충실한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선조는 안동 김 씨로 김자점 씨의 방계 후손이다. 김자점 씨가 반역죄를 저질러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

친일파였던 이광수 입장에선 해방 이후 김구의 자서전 관련 일을 하면서 자기 과거를 정리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무리를 했습니다. 원문에 없는 문장을 집어넣은 거죠.

하지만 이런 태도는 김구가 글을 쓴 취지와 어긋납니다. <백범일지>가 1947년 출간될 당시, 김구가 썼던 머리말은 이렇습니다.

"나는 내가 못난 줄을 잘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으므로 내가 할 수 있을 일을 쉬지 않고 하여 온 것이다. (…) 그러므로 내가 이 책을 발행하기에 동의한 것은 내가 잘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못난 한 사람이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기록으로서이다. 백범(白凡)이라는 내 호가 이것을 의미한다. 내가 만일 민족 독립 운동에 조금이라도 공헌한 것이 있다고 하면, 그만한 것은 대한 사람이면, 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는 걸 계속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경순왕의 자손"이라고 시작하는 건, 확실히 생뚱맞습니다.

'아이비리그 엘리트' 이승만박사를 '신분'으로 만들다

김구의 이런 태도와 반대 편에 섰던 사람이 있습니다. 정치적 경쟁자였던 이승만이죠. 이승만은 김구와 달라요.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는 걸 줄기차게 강조합니다. '양녕대군의 후손'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조선 왕족 출신이라는 겁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조지워싱턴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를 거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죠. 평생의 정치 자산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 장군들에게 아이비리그 인맥 자랑을 했다고 하죠. 조갑제 씨의 글에 나온 내용입니다. 실제로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교에 다닐 당시 이 대학 교수 및 총장을 지낸 우드로 윌슨이 이끄는 기도 모임에 꾸준히 나갔다고 해요. 윌슨은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그가 언급한 민족 자결주의는 3.1 운동에도 영향을 주죠.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은 '박사'가 그저 학위가 아니라 직업이나 신분인줄 알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이승만 박사' 때문입니다.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해방 이후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면, 다른 건 몰라도 지나친 학벌주의는 조금 덜 했을 듯합니다.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겐 김구의 암살이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겠네요.

건국을 반대하는 독립 운동가?그들은 왜 김구를 지우려 하나


최근 건국절 논란이 한창이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건데요. 당초 뉴라이트 진영의 주장이었는데, 어느새 정부-여당의 입장이 됐어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건데요. 이런 입장에 서면, 이승만 정부 출범 당시의 관료, 경찰, 법조인들이 건국 세력이 됩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친일파였는데 말이지요.

더 큰 문제는, 당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다수 독립 운동가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김구가 대표적이죠. '1948년 건국'이라는 주장대로라면, 이들은 '건국 반대파'가 됩니다.

'건국을 반대하는 독립 운동가'라니, 이게 말이 되나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손쉬운 해법이 있죠.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겁니다.

'1948년 건국' 주장은 그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받드는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승만의 정적이었던 김구를 '건국 반대파'로 몰아서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김구와 이승만의 대립은,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이승만이 박사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추앙할까

궁금합니다. 뉴라이트 진영은 왜 그토록 이승만과 김구를 차별하는 걸까요. 두 사람 모두 공로와 과오가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승만만 추앙하고, 김구는 깎아내립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자고 할까요.

김구,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보수 진영이 깎아내리는 건, 아주 낯선 현상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통성의 근거를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습니다. 반면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에서 정통성을 찾습니다. 그래서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깎아내리면, 보수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주장이라는 거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보수 진영이 김구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폄하합니다.

우파의 세대 교체, 이승만의 재발견

우파의 세대 교체와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전엔 상류층, 주류 엘리트 역시 영어 회화를 부담스러워했죠.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불편해 했습니다. 재벌가 자제 역시 김치와 된장찌개, 소주를 먹고 마셨죠. 미국 유학 역시 늦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부 과정은 보통 한국에서 마쳤죠.

지금은 다릅니다. 서울 강남에는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하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겐 미국이, 그리고 미국 엘리트의 세계가 이웃집처럼 가깝습니다. 미국 유학 역시 일찍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미국에서 다니는 게 낯설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승만의 매력을 새로 발견했습니다. 다시 보니, 확실히 친근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미국 대통령과 인맥이 닿았던 아이비리그 엘리트잖아요.

반면, 김구는 그들에게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김구는 평생토록 영어를 익히지 못했습니다. 서구 문화와도 거리를 뒀죠.

중국 국민당과 친했던 김구, 미국과 친한 이승만왜 지금 건국절 논란인가?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도 한 변수입니다. 사드 배치 논란은 한 단면일 뿐이죠.

김구는 중국 국민당과 가까웠습니다. 장제스(蔣介石, 장개석) 중국 국민당 총재와도 친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한 광복군 역시 중국 국민당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반공주의자였죠. 공산당은 국민당의 적입니다.

이승만 역시 반공주의자입니다. 하지만 김구와 달리, 철저한 친미파였죠.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의 일부인 사드 배치 결정 직후, 건국절 논란이 다시 불거진 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건데요. 미국과 가까운 입장에선 김구가 더 못마땅해 보일 겁니다.

'친미'도 양극화

글머리에서 <손자병법> 저자 손무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선 '가문이 곧 스펙'이라고 했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예전에는 '가난한 수재'도 상류층이 될 기회가 있었죠. 지금은 달라요. 집안 좋은 금수저가 공부도 잘합니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을 쌓기에도 유리하고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은 손쉽게 국회 인턴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를 뽑았던 유기준 의원실은 채용 공고도 내지 않았었죠. 스펙을 쌓을 기회는 선명하게 양극화 돼 있습니다.

미국과의 거리 역시 양극화 돼 있습니다. 금수저들에겐 미국이 너무 가깝습니다. 흙수저들은 여전히 미국 땅 한 번 밟을 기회가 없고요. 미국과의 친밀도가 중요한 스펙으로 여겨질수록 금수저들에게 유리합니다.

양극화 시대의 신세대 우파가 미국 아이비리그 엘리트 이승만을 갑자기 추앙하고 나선 건,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계급의 이익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죠.

흙수저가 만든 게임 '내 꿈은 정규직'

스펙 양극화 시대, 추천하고 싶은 모바일 게임이 있어요. 지난해 출시된 '내 꿈은 정규직'입니다. 이미 해보신 분들이 많죠. 게임 주인공은 잇따른 면접에서 탈락한 뒤, 가까스로 인턴이 됩니다. 직장에서 정규직 상사들이 시키는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승진을 하는 게임인데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모욕을 견뎌야 합니다. 취업 준비생 및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가 폭발적이었죠. 지난해 구글 플레이 국내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어요.

처음에는 한국어 서비스만 됐는데, 지금은 12개 국 언어로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 번역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고 합니다.

지난 10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게임 개발자 이진포 씨의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이 씨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대학을 관둬야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했는데요. 3년 동안 세 차례나 해고를 당했죠. 그 뒤론 재취업을 포기했습니다. 이런 울분을 담아 만든 게임이 '내 꿈은 정규직'입니다. 백수 시절, 하루하루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여자 친구와 함께 게임을 개발했다고 해요. 이 게임이 성공하면서 그는 당장 먹고사는 걱정에선 풀려났습니다. 여자 친구와 함께 '퀵터틀'이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빠른 거북이'라는 뜻인데, 재미난 이름이네요.


▲ '내 꿈은 정규직'. ⓒ퀵터틀

'명절날 직장인', "아직도 거기 다녀?"

올해 3월에는 '내 꿈은 멘탈갑'이라는 게임도 출시했죠. 게임을 시작하면, 먼저 다양한 연령대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를 고릅니다. '명절날 취준생', '명절날 직장인', '명절날 대학생' 등이 있고요.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나뉩니다. 여성인 '명절날 직장인'를 골라보죠. 그럼 "아직도 거기 다녀?", "그래서 결혼하겠어", "애인은 있어?" 등의 잔소리를 듣습니다. 그때마다 손으로 귀를 막는 게임입니다. 그걸 잘 막아내면, 최종 목표인 '멘탈갑'이 되는 거죠. 저와 마찬가지인 40대 아빠 캐릭터도 골라봤습니다. 아이가 용돈 달라고 하는 군요. 첫 단계인 '먼지 멘탈'에서 게임을 멈췄습니다.

이진포 씨는 '내 꿈은' 시리즈를 계속 출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말을 빌자면, 웃픈 일이죠.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 정규직!"

김구는 자신의 소원, 그 다음 소원, 또 그 다음 소원이 모두 대한 독립이라고 했죠.

하지만 지금 청년들의 소원은 독립도, 통일도, 혁명도, 민주화도 아닙니다. 정규직입니다. 아이들 역시 공무원을 꿈꾼다고 합니다. '잘릴 염려 없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거죠.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아이들 꿈은 죄다 과학자 아니면 대통령, 장군이었어. 요즘 아이들은 왜 그렇게 꿈이 작아'라며 혀를 차는 아저씨들이 떠오르네요.

가만히 돌아봅시다. 어린 시절 품었던 과학자, 대통령, 장군을 향한 꿈. 그게 정말 과학이 즐거워서, 좋은 정치를 하고 싶어서, 나라를 지키고 싶어서였나요. 대개는 아닙니다. 사회가, 학교가, 어른들이 주입한 꿈이었죠. 산업화를 위해선 똑똑한 아이들이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과학자를 권했죠. 군인 대통령이 휘두르는 권력이 부러웠던 어른들은 자기 아이가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길 바랐습니다. 아저씨들이 이야기하는 어린 시절의 꿈도 대개는 '진짜 자기 꿈'이 아니었습니다.

경쟁 양극화흙수저의 열망을, 금수저는 너무 쉽게 이룬다

'내 꿈은 정규직'이라는 청년들이 슬퍼 보이는 건, 너무 소박한 꿈을 품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역시 자기 꿈,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입을 상처가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앞서 '가문이 곧 스펙'인 시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정규직이라는 꿈을 이루려면 다양한 스펙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스펙 경쟁은 결코 공정하지 않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은 아무런 경쟁 없이 국회 인턴 자리를 얻었습니다. 흙수저 청년이라면 거친 경쟁을 뚫어야 했을 겁니다. 경쟁조차 양극화 돼 있습니다. 내겐 간절한 무엇인가가 다른 누군가에겐 주머니 속 지갑을 꺼내듯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깨닫고 느낄 흙수저 청년의 절망과 분노가 슬프고 두렵습니다.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사니'

흙수저 개발자 이진포 씨의 성공이 반가웠던 건 그래서입니다. 정규직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길을 찾은 듯 했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속은 답답하죠.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청년 가운데 이런 돌파구를 찾은 이들은 소수일 테니까요.

흙수저 청년이 '정규직' 말고, 다른 꿈을 꿔도 되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가난한 청년이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진짜 자기 꿈'에 도전했습니다. 이런 청년이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살려고'라는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꿈은 정규직' 게임 속의 일터라면, 박차고 나올 수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죠. 하지만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일터를 막상 관두려면, 엄두가 잘 안 납니다. 회사를 관둔 뒤의 삶이 너무 힘드니까요. 백수가 되면, 단지 경제적 빈곤만 겪는 게 아닙니다. '내 꿈은 멘탈갑' 게임에서 쏟아지는 온갖 모욕을 듣습니다. 직장이 없으면 이등시민 신세입니다. 그걸 잘 아니까 기업도 직원을 함부로 대합니다. 무슨 짓을 겪어도 직원은 스스로 나가지않으니까요.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내 꿈은 정규직' 게임 속 직장 문화도 영원할 겁니다.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는다면, 나쁜 직장도 금세 바뀝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이 다 떠나서 문을 닫아야 할 테니까요.

독립 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

불가능한 꿈이 아닙니다. 북유럽 복지 국가들은 경제 수준이 지금의 한국보다 낮던 시절에 이미 이런 꿈에 다가갔습니다. 한국 역시 세금을 제대로 걷는다면, 그래서 사회 안전망을 제대로 갖춘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던 독립 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도 어쩌면 그런 곳이었을 겁니다. 김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덧붙임.

뜬금없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합니다. 그 바람에 김구가 역사에서 지워지면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비판하느라, 김구의 잘못까지 덮어서는 안 될 겁니다. 한반도가 분단된 책임에서 김구 역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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