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GO)'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입니다. 일종의 모바일 게임인데요. 스마트폰 카메라로 특정 장소를 비추면, 화면 위에 포켓몬스터(포켓몬) 캐릭터가 뜹니다. 그걸 잡는 게임이에요. 이른바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을 이용한 거죠. 그게 뭐냐고요. 뒤에서 설명할 게요.
포켓몬 잡으려다 변사체를 만나다
하여간 난리입니다. 미국 와이오밍 주에 사는 샤일라 위긴스 씨는 포켓몬고를 하다가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게임 화면 속 시체가 아니라 진짜 시체요. 포켓몬을 잡으려고, 스마트폰을 든 채 강가를 배회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게임 하다가 변사체를 만나는 경험이라니….
포켓몬고 속의 아이템을 무료로 주는 곳을 '포켓스탑'이라고 하는데요. '포켓스탑'으로 지정된 가게는 적극적인 광고를 합니다.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려드니까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대형 마트 '울워스'도 최근 "우리 마트의 전자제품 코너에 가면 피카츄를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홍보했죠.
미국이 한 교회는 "WE ARE A POKESTOP, GET SUPPLIES OUTSIDE, FIND JESUS INSIDE"라는 대형 팻말을 걸었습니다. 대략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포켓스탑 입니다. 밖에서는 아이템을 얻고 안에서는 예수를 만나세요."
미국인들에게 '미터법' 가르치는 포켓몬고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포켓몬을 잡으려고 새벽 골목을 돌아다니던 청년들을 경찰이 잡았습니다. 마약 사범으로 오해한 거죠. 청년들로부터 포켓몬고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경찰도 함께 포켓몬을 잡으러 나섰습니다. 훈훈한 이야기죠. 살짝 걱정은 됩니다. 경찰의 사명은 포켓몬이 아니라 도둑을 잡는 것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 구글 검색 창에서 'pokemon go'를 입력해보세요. 온갖 황당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딱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넘어갈게요. 미국 사람들은 '야드-파운드 법'을 주로 씁니다. 길이를 잴 때, 우리처럼 '미터' 단위를 쓰는 게 아니라 '야드', '마일' 등을 쓴다는 거죠. 주요 선진국 가운데 유독 미국만 '야드-파운드 법'을 고집하니까 피곤할 때가 많은데요.
그런데 포켓몬고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미터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선 미터 단위를 쓰거든요. 구글에서 '킬로미터'를 '마일'로 환산하는 법에 대한 검색한 빈도가 폭증했습니다. 미국이 '미터법'을 도입한다면, 어쩌면 포켓몬고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이 불과 1주일 남짓 안에 벌어졌습니다. 포켓몬고는 지난 7월 6일 출시됐습니다. '유례없는 일'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속초는 북한 땅?
이 게임, 한 번 해보고 싶다고요. 저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못해요. 이 글을 읽는 중간에, 포털에서 검색해보셨으면 알 겁니다. 한국에선 서비스가 안 되죠. 속초 등 강원도 일부에서만 된다고 합니다. '공간 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때문인데요.
이 법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구글에 지도 정보를 제공할 수 없어요. '어, 나는 한국에서 구글 지도 잘 쓰고 있는데….' 그 지도는 SK플래닛이 구글에 제공한 겁니다. 정부 공식 자료는 아니지요. 그래서 정확도가 낮고요. 구글 지도 기능 역시 제한돼 있습니다.
포켓몬고는 구글 지도를 활용하죠. 그러니까 한국에서 서비스가 안 되는 거고요. 그런데 속초에서는 왜 서비스가 되는 걸까요. 그 이유를 놓고, 13일 하루 내내 누리꾼들이 토론을 했는데요. 유력한 가설은, 포켓몬고 개발 업체가 속초 일대를 '북한'으로 분류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북한은 게임 서비스 가능 지역이고요. 업체가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막국수, 물회 그리고 포켓몬"
그럼, 속초는 한국 땅이 아니란 거냐. 속초 사람들이 화내겠죠.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포켓몬고가 서비스 된다는 소문이 난 뒤로, 속초로 가는 길이 미어터집니다.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많이 되겠죠. 실제로 제 주변에도 '올 여름 휴가지는 속초'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요. 더구나 '게임 중독' 걱정도 할 필요가 없죠. 휴가를 마치고 속초를 떠나는 순간, 포켓몬고 서비스도 끊어지니까요.
속초시장도 신이 났습니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13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속초에는 설악산, 속초해수욕장, 영랑호, 청초호가 있고, 속초 중앙시장에 가면 요새 뜨고 있는 붉은 대게, 닭강정, 속초 식 냉면, 막국수, 물회에 포켓몬도 잡을 수 있어 젊은 사람,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모든 게 한 번에 해결 된다"며 "지금까지의 게임은 앉아서 하는 거였지만 이제는 걸어 다니면서 하는 시대다. 속초시를 찾는 (포켓몬) 컬렉터들은 자연 조건이 좋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속초시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즐기시기를 바라며 우리는 그분들의 안전에 최대한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습니다.
따라 읽으면 숨이 차는데요. 하여튼 "막국수, 물회에 포켓몬도 잡을 수 있어"라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사람들이 편의점에서 포켓몬만 잡아가요"
그런데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올라온 속초 시민들의 실제 반응은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밀려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쓰는 분위기는 아니라네요. 속초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은 "사람들이 편의점에 와서 포켓몬만 잡아 간다. 물건을 사지는 않는다. 번잡하기만 해서 피곤하다"라고 밝혔습니다.
만우절 프로젝트, 그리고 구글 지주회사
포켓몬고 개발은 원래 만우절 프로젝트에서 비롯됐습니다. 시작부터 장난스러웠는데요. 2014년 4월 1일, '구글맵스' 앱에서 만우절 이벤트가 진행됐죠. 이름은 '포켓몬 챌린지'. 지금 인기몰이를 하는 포켓몬고와 거의 같은 콘셉트입니다. 구글맵스 앱에서 전 세계 명소를 검색해 돌아다니면서 주변에 등장하는 포켓몬을 잡는 방식이었죠.
당시 이 이벤트를 총괄한 사람이 존 한케 당시 구글 부사장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구글에서 나와서 '나이앤틱'이라는 회사를 차렸고, 포켓몬고를 개발했죠.
구글은 왜 존 한케를 잡아두지 못했을까요. 그가 구글에 남아서 포켓몬고를 개발했더라면, 구글은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렸을 텐데요.
구글은 지난해 8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죠.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가 구글 및 관련 회사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에서 변화의 폭이 컸는데요. 검색, 광고, 안드로이드 등의 사업은 구글이 계속 진행합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분야가 구글에 남은 셈이죠. 무인자동차, 생명공학 등은 원래 구글이 벌인 사업이었는데, 별도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놓고 말이 많았었죠. 이런 혼란과 관계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나이앤틱'이 실제로 그 무렵 구글에서 떨어져 나왔으니까요(Spin-off, 기업 분할). 물론 자세한 내막은 당사자만 알 테지요.
'이명박의 저주', 포켓몬고가 풀다
포켓몬고 개발에는 나이앤틱 외에도 닌텐도, 포켓몬 주식회사 등이 참가했습니다. 포켓몬 주식회사는, 말 그대로 포켓몬스터 관련 지적 재산권을 가진 회사고요.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 업체로 유명한 바로 그 닌텐도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우리는 왜 닌텐도 같은 걸 못 만드느냐'고 질책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명텐도'라는 말이 유행했었죠. '이명박의 저주'였던 걸까요. 그런데 하필, 그 무렵부터 닌텐도의 실적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닥친 거죠. 가정용 게임기, 전자사전, MP3플레이어, 보이스레코더, PDA…. 모두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퇴장한 제품들이죠.
그랬던 닌텐도가 포켓몬고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1889년 화투 생산 업체로 출발한 닌텐도의 역사에, 외부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성공한 사례를 추가하게 됐습니다. 닌텐도 주가 역시 폭등했고요. 닌텐도의 역사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소재인데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서든어택 2'의 실패, '선정성' 문제만이 아냐
포켓몬고의 성공은 우리 게임 업계, 그리고 정보기술(IT)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국내 게임 중에 '서든어택 2'가 있죠. 넥슨지티가 개발했어요. '진경준 검사장 주식 대박 사건'에 연루된 넥슨의 자회사죠. 출시되자마자,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서입니다. 전작인 '서든어택'에 한참 못 미친다는 거죠.
여기에 또 '선정성' 논란까지 겹쳐 있습니다. 완성도가 높으면, 보수 언론이 '선정성'을 거론해도 게임 이용자들이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옹호하죠. 영화 등 다른 문화 영역과 마찬가지입니다. 수준 높은 영화는 '선정성' 시비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런 시비를 거는 쪽이, 오히려 욕먹죠. 하지만 형편없는 영화가 오로지 벗기는 장면만으로 관객몰이를 하려 하면, 누구나 욕을 합니다. 서든어택 2는 후자죠.
롯데와 넥슨의 공통점
넥슨은 개발보다 유통, 마케팅에 치우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기술력보다는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웠죠. 이런 기업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올해는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기업들의 총수가 유독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롯데, 넥슨 모두 마찬가지죠. 인수합병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회사의 실력을 키우는 인수합병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저 매출 규모만 키우는 식이라면, 언젠가는 문제가 될 겁니다.
평평해진 세계, 눈 높아진 이용자
게다가 지금은 세계가 꽤 평평해진 상태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의 표현이죠. 세계가 한 덩어리로 묶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죠. 물론 최근 상황은 또 다릅니다. 이른바 '브렉시트' 등이 그렇습니다. 하나로 묶이던 세계를 다시 쪼개는 흐름이죠.
하지만 게임 부문에선 다릅니다. 이 분야만 놓고 보면, 세계는 지금도 계속 평평해지고 있어요. 예컨대 우리는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을 통해서 외국 게임을 곧장 다운받을 수 있죠. 게임 CD를 주문하고 한참 지나서 택배로 받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국내 게임 이용자들은 눈이 훌쩍 높아졌죠. 그런데 국내 1위 게임 업체는 전보다도 못한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1위 업체와 2위 업체는 합병과 결별을 거치면서 온갖 추태를 보였죠. 이게 바로 산업의 위기입니다. 물론 잘 활용하면 오히려 약이 되겠죠. 미국 드라마가 직접 소개되니까, 국내 시청자의 눈이 높아졌습니다. 거기에 부응하느라 한국 드라마 수준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있죠.
구글 지도 데이터 위에 카메라 영상, 그 위에 게임
또 하나 짚어볼 대목은 글머리에 언급한 '증강 현실' 기술의 성공인데요. 포켓몬고가 바로 증강 현실을 활용했습니다. 증강 현실이란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 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잘 이해가 안 된다고요. 혹시 '포토샵' 프로그램 써보셨나요? 이미지 파일을 불러옵니다. 그 위에 다른 이미지를 얹을 수 있죠. 각각의 이미지를 '레이어'라고 하는데요. 레이어를 여러 겹 쌓을 수도 있고, 지울 수도 있습니다. 그걸 떠올리면 이해가 쉽죠. 카메라로 찍은 화면 위에 레이어를 한 겹 더 쌓는 겁니다. 스마트폰에서 증강 현실 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어떤 풍경을 찍어요. 화면이 뜨죠. 그 위에 레이어가 한 겹 더 생기고, 거기서 어떤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겁니다.
포켓몬고 프로그램이라면, 크게 세 개의 레이어가 있는 셈입니다. 구글이 제공하는 지도 데이터가 맨 밑에 깔립니다. 그게 첫 번째 레이어겠지요. 그 위에는 스마트폰 뒷면 카메라가 찍는 현실 영상이 놓입니다. 두 번째 레이어입니다. 그 위에 그래픽으로 연출한 포켓몬스터 캐릭터와 게임 인터페이스가 얹혀 있죠. 마지막 레이어죠.
전투기 조종사와 증강 현실
이런 기술은 이미 쓰인 지 오래 됐습니다. 신기술은 대개 군사 부문에서 먼저 활용되죠. 증강 현실도 마찬가지인데요. 전투기 조종사에게 이 기술이 적용됩니다.
조종사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정보를 처리해야 하죠. 전투기를 모는 일만 해도 까다로운데, 실제 전투까지 벌어지면 정신이 없습니다. 조종과 사격을 한꺼번에 해야 하니까요. 헬멧에 있는 안경에 증강 현실 기술을 적용하면, 조종사가 훨씬 편해집니다. 눈앞의 장면 위로 각종 데이터가 겹쳐 보이는 거죠.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조종과 사격을 할 수 있습니다.
신기술이 그 다음에 쓰이는 게 보통 놀이 목적이죠. 아니면 19금(禁) 콘텐츠고요. 포켓몬고의 성공은 증강 현실 활용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걸 보여줍니다.
<포브스> "게임의 미래, VR 아닌 AR"
이와 관련해서 <포브스>가 최근 흥미로운 기사를 냈습니다. "'포멧몬고'가 '게임의 미래는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VR)이 아닌 증강 현실(AR)'이라는 걸 보여줬다"라는 기사입니다.
가상 현실이란, 말 그대로 가짜 체험을 제공하는 겁니다. 예컨대 나는 실제로 방안에 틀어박혀 있지만, 유명 관광지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해주는 거죠. '사이버 섹스' 등이 화제가 됐죠. 최근 정보기술 업계의 화두가 가상 현실(VR)입니다. 삼성전자, 페이스북 등 거대 기업들이 투자를 했죠. AR보다는 VR 쪽이 더 새롭고 난이도 높은 기술이고요.
그런데 <포브스>는 게임의 미래가 AR이라고 했어요. VR은 결국 사람을 기계 안에 가두는 것입니다. VR 전용 안경을 쓰건, 혹은 다른 장치를 이용하건 마찬가지죠. 사람은 기계하고만 접촉합니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어요. 반면, AR은 사람이 기계를 들고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어느 쪽이 더 경쟁력이 있느냐는 거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저는 <포브스>의 결론을 지지합니다. '사이버 섹스' 따위보다는, 스마트폰을 들고 속초로 달려가는 쪽을 택하겠어요.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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