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개돼지 취급하면 된다"라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결국 파면 당했습니다. '정부 고위 관료가 이런 말을 하다니….' 놀랍다고요. 글쎄요. 나 전 기획관은 자신을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요.
국정 교과서는 가축 사육 매뉴얼?
이미 '1%'에 포함된 사람 가운데는 나머지 99%를, 개돼지 취급하는 경우가 많이 있죠.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잊으셨나요. 사건의 책임이 있는 옥시 경영진의 태도, 99%의 보통 사람들을 개돼지로 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일은 죄다 협력 업체에 떠넘기고, 사람이 숱하게 죽어나가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현대중공업 경영진. 마찬가지죠. 비슷한 사례는 끝이 없습니다.
1%를 향한 나 전 기획관의 기대와 "민중은 개돼지 취급하면 된다"라는 말은 서로 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는 이들이 '1%' 안에 수두룩하니까요.
나 전 기획관은 국정 교과서 관련 업무도 했다죠. 그가 보기에, 그 일은 '가축 사육 매뉴얼 제작'쯤 됐겠네요.
이용자를 "개돼지"로 여기고 만든 게임
최근 논란이 된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2'를 보며, 나 전 기획관의 "개돼지" 발언을 떠올렸습니다. 이용자를 "개돼지" 취급하면서 만든 게임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민중을 개돼지 취급한다는 건, 적당히 배만 채워주면 된다는 뜻입니다. '서든어택2'가 딱 그래 보였습니다.
'온라인 게임 하는 녀석들이 원하는 건 뻔하지. 여캐(여성 캐릭터)가 가슴, 엉덩이 흔들면 기본은 하게 돼 있어. 거기에 운이 좀 따르면, 대박 나는 거고. 아니어도 중박은 되는 거고. 깊이 고민할 게 뭐 있나.'
이런 생각으로 만든 게임 같았으니까요.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에서 특히 문제가 된 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입니다. 대개의 게임에선 캐릭터가 죽는 장면이 끔찍하죠. 그런데 '서든어택2'에선 죽는 장면이 야합니다. 가슴을 출렁이거나, 엉덩이를 들어 올리거나, 다리를 벌리는 식이죠. 죽는 장면마저, 성(性)적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겁니다. 여성을, 그리고 게임 이용자를 모두 개돼지 취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발상이죠.
결국 이 게임을 서비스하는 넥슨 측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여성 캐릭터를 삭제하는 걸로 마무리 됐습니다.
환갑 할머니가 전사 캐릭터
'서든어택2' 논란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닙니다. 같은 시기에 나온 같은 장르의 게임이 있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하는 '오버워치'입니다. 원래 게임 업계의 전망은 '오버워치'와 '서든어택2'가 동시에 출시돼서 서로 경쟁하리라는 거였는데요. 맙소사, '서든어택2'는 PC방 게임 점유율 10위 안에도 들지 못했죠. '오버워치'는 1위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별의별 설명이 다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알 수 있고요.
저는 딱 한 가지만 거론하겠습니다. '오버워치'가 새로 내놓은 여성 캐릭터가 '아나 아마리'입니다. 게임 속 설정으론 나이가 60살입니다. 환갑 나이 할머니를 카리스마 넘치는 전사 캐릭터로 묘사했습니다. 반면, '서든어택2'에서 삭제된 젊은 여성 캐릭터 '김지윤'과 '미야'는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전쟁터를 뛰어다니다 총에 맞으면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죽는 캐릭터죠.
이건 철학의 차이입니다. 할머니를 전사로 설정하는 발상, 할머니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설정, 그게 진짜 혁신이죠. 사람의 생로병사에 대한 철학이 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철학이 밥 먹여 주느냐, 라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넥슨 경영진이 이 글을 읽는다면, 같은 말을 할지 모르죠. 제가 볼 땐, 철학이 밥 먹여 줍니다. "'오버워치'는 1위, '서든어택2'는 10위 밖"이라는 기록이 입증합니다.
게임 업계에 진출한 여성들, 그런데 왜?
<게임 회사 여직원들>이라는 웹툰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기획자가 등장하는 만화입니다. 게임 개발자들의 일상이 잘 묘사돼 있죠. 뜬금없이 웬 웹툰 이야기냐고요.
만화에 묘사된 것처럼, 게임 업계 역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합니다.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도 여성이 참가했을 겁니다. 당연히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을 했겠죠. 물론, 남성 개발자 가운데 상당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의견은 게임 제작에 반영되지 않았을까요. 왜 개발 실무자들은 중간에 제동을 걸지 못했을까요.
물론, 거대 프로젝트가 제동이 걸리면, 매몰 비용이 생깁니다. 하지만 "역대 급 망작"이 탄생해서 생긴 비용보다는 적습니다.
주식 고수들의 특징이 '손절매'에 강하다는 겁니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주식을 팔죠. 작은 손해가 아까워서 주식을 계속 갖고 있으면, 더 큰 손해를 입으니까요. 빨리 팔아치우고, 다른 투자처를 알아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역대 급 망작", 왜 방향을 틀지 못했을까
'서든어택2'가 망한 건, 단지 선정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였죠. 넥슨 경영진이 여성 캐릭터가 지닌 문제를 파악하는 감수성은 없었을 수 있어요. 그래도 그들은 이 게임이 재미가 없다는 건 개발 도중에 알아차렸을 겁니다. 그 정도 감각도 없다면, 게임 업계에서 버틸 수가 없었겠죠.
그런데 왜 중간에 방향을 틀거나, 접지 않았을까요. 왜 "역대 급 망작"이 탄생하도록 내버려 뒀을까요.
'재미가 없어도, 여성 캐릭터의 가슴과 엉덩이만 출렁이면 기본은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믿음, 정말 근거가 있다고 봤을까요.
근거가 모호한 믿음에 수백억 원대 예산과 회사의 평판을 거는 모험. 이런 결정을 하는 조직이 정상일까요.
질 줄 알면서 벌인 전쟁
저는 이 대목이 진짜 큰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 게임 산업, 아니 한국 사회의 문제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봐요.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볼 게요. 야마모토 이소로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지냈죠. 태평양 전쟁의 시작, 바로 '진주만 공격'을 기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태평양 전쟁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그는 20세기 초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유학했었는데요. 당시 경험 때문에, 미국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미국과의 전쟁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진주만 공격'을 다룬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도 나오죠. 공습이 성공했다는 보고를 듣자, 그는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것은 아닐까"라며 무거운 표정을 짓습니다. 이게 영화 속 대사인데요. 실제로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줄곧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했고, 전쟁을 주장하는 육군 강경파와 날카롭게 대립했습니다. 육군 강경파를 국제 정세에 어두운 바보들로 여겼죠. 그래서 종종 암살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는 역할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게 그의 임무니까요.
실제로 20세기 초중반, 일본 사회에도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꼭 평화주의적인 신념 때문은 아닙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한 이들도 많았죠. 하지만 그들은 전쟁을 막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죠. 세계 최초로 원자 폭탄이 떨어진 나라가 됐어요. 참담한 패전이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귀축영미(鬼畜英米, 영국과 미국은 귀신과 짐승이라는 뜻)'를 외치던 나라가, 맥아더 장군을 '살아있는 신'으로 모시게 됐죠. 비굴할 정도로 미국에게 엎드리는 나라가 됐고요.
집단의 결정은 그저 따를 뿐…태평양 전쟁과 '서든어택2'
일본은 왜 전쟁을 막지 못했을까요. 전쟁의 결과를 내다본 이들이 많았는데 말이지요.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한 이유였을 겁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같은 이들이 '맡은 일만 잘 하는 것'으로 자기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집단의 결정'이니까 개인은 그저 따를 뿐"이라는 논리가 꼭 옳은 건 아닙니다. 어쩌면 그건 또 다른 현실 도피일 수 있겠지요.
'서든어택2'를 보며, 태평양 전쟁으로 달려간 일본을 떠올렸습니다. 집단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개인들이 막지 못했다는 점에선 닮았으니까요.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너무 거창한 비유라고요. 그럼 이건 어떤 가요.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른바 '녹조 라떼'가 생겼죠. 생태계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우리는 개성공단 폐쇄 이후 사드 배치까지 오로지 대결 일변도로만 남북 관계를 몰아가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아무런 제동도 걸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참 많죠. 하지만 그뿐입니다. 다들 '자기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합니다.
거대한 게임 개발 과정은 잘게 분업화돼 있습니다. 개발 팀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진은 '돈만 벌면 된다'고 합니다. 그게 '맡은 일'이니까요. 그 결과가 "역대급 망작"이라는, '서든어택2'의 탄생입니다. 이게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까요?
신분의 틀과 '맡은 일만 잘하자' 논리
글머리에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죠.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이게 나 전 기획관의 말인데요.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앞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이야기를 했죠. 애초 그는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했어요. 하지만 일왕이 전쟁을 승인한 뒤로는 입장을 바꿉니다.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식이죠. 어찌 됐건, 이왕 맡은 일이니까 잘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왕, 그러니까 '텐노(てんのう, 天皇, 천황)'와 자신은 '신분'이 다릅니다. 높은 신분을 지닌 사람이 결정하면, 그냥 따라야 합니다. 그게 틀린 결정인줄 뻔히 알아도요. 그게 미덕입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로 기어 올라가 '텐노'와 맞장을 뜬다면, 그건 부도덕한 일이 됩니다.
'신분이 정해져 있고, 위쪽 신분으로는 올라가려 하지도 않는 것. 사회의 큰 방향을 정하는 결정, 예컨대 정치는 위쪽 신분에게 맡기는 것. 대신, 자기 신분의 틀 안에서 맡은 일을 잘 하는 것.'
신분을 인정하는 논리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은 이렇게 바짝 붙어있습니다.
기업 실무자도 사회의 구성원, 시민의 책임은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잘못된 결정을 그냥 밀어붙이는 기업 역시 비슷합니다. 총수, 혹은 경영진과 실무자는 '신분'이 다른 거죠. 그러니까 신분 높은 사람이 결정하면, 아래쪽 신분은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그냥 따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설득하죠. '나는 맡은 일만 잘 하면 돼. 문제가 생겨도 내 책임은 아냐.'
경영진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실무자가 나눠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업의 결정은 어떤 식으로건 사회에 영향을 미치죠. '서든어택2'와 같은 게임이 만약 성공했다면,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의식을 심는 부작용이 있겠죠.
기업 실무자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 시민입니다. 따라서 시민으로서의 책임까지 피해서는 안 됩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맡은 일만 잘 하면 된다'며 뒤로 빠지는 건, 잘못입니다. 물론, 맡은 일을 내팽개치는 것도 무책임하죠.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나향욱은 정치는 위쪽 신분이 독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맡은 일, 즉 정치를 내팽개치면 어떡하나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 분)이 말하죠. "정치는 곧 책임"이라고요. 그러니까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네요. 정치를 독점한 위쪽 신분이, 책임을 내팽개치면 어떻게 하나요? 나향욱의 발언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어요.
다만 '나향욱 식 세계관'이 실제로 구현됐던 사례를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예컨대 제국주의 일본이 있죠. 전쟁을 승인한 일왕은 패전 이후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어요.
육군 강경파의 수장이었던 도조 히데키. 앞서 소개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대척점에 서 있던 그는 전쟁 기간 내내 "살아서 적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받지 말라"라는, 이른바 '전진훈'을 청년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아들은 전쟁터에 보내지 않았죠. 도조 히데키는 패전 이후 권총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 너도 할복하라"라는 투서가 집에 쏟아졌지만, 끝내 할복을 하진 않았어요. 이후 전범 재판을 통해 처형당합니다. 이에 대해선 할복을 하면, 시체가 훼손되는데 그게 싫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숱한 부하들이 할복 자살을 하도록 몰아갔죠. 또 그걸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예외라고 봤어요.
한국의 '1%'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이제는 민간인이 된 나향욱 씨에게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그도 '1%'에서 확 멀어졌으니, 객관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좌파 언론의 속성 모르는 순진한 발상"?
한 가지 더.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이 나향욱 사건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번 일(나향욱 사건)과 경우는 다르지만 청와대나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 중 좌파 언론과 만나 속내를 밝혔다가 곤욕을 치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쪽 진영을 설득할 수 있다' '내가 솔직히 대하면 저쪽도 마음을 열겠지'라고 자신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좌파 언론의 속성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입니다.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들 같지만 올해에도 여전합니다."
'좌파 언론'과는 아예 상종하지 말라는 거죠. 문 편집장이 언급한 '좌파 언론'이 정확히 뭘 가리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궁금한 게 많은데요. 만약 <월간조선> 기자들과의 좌파 유력 인사가 술을 마셨다면, 그 자리에서 '망언'이 나왔다면, <월간조선>은 어떻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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