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고 지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유승민 의원을 '배신의 정치인'으로 지목한 후, 친박 세력은 유 의원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9개월 만이다. 9개월 동안의 '괴롭힘'은 뭉툭한 칼날로 베는 것과 같은 고통을 안겼다. 친유승민계, 친이명박계 및 비박 '학살'에 이은 새누리당의 유승민 공천 배제는 박 대통령 '사심 정치'의 종결판이다.
친박계는 이장우, 김태흠 의원 등 '돌격대'를 내세워 지난해 7월 직선으로 선출된 원내대표의 사퇴를 끝내 관철해 냈다. 박 대통령은 유 대표가 물러난 자리에 '진실한 사람'을 불러들였다. 전국에서 '진실한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작년 11월 부친상을 당한 유 의원이 상복을 입고 염을 하고 있을 때,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은 상가에 찾아가 '대구 물갈이론'에 불을 붙였다. 이른바 진박 후보들은 유 의원 상가에서 명함을 돌리고 '대구의 진박'을 자처했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한달 뒤인 12월 유 의원과 공천을 두고 맞붙었던 이재만 전 동구청장 선거 사무소 개소식을 '진박 투어' 일정에 포함시켰다. 자칭 '진박 감별사' 조원진 의원은 이 전 청장을 가리켜 "누가 진실한 사람인지 헷갈릴 테지만 조(조원진)가 (찾아)가는 후보가 진실한 사람"이라며 '유승민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던졌다.
압권은 지난 10일이었다. '진박 마케팅이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대구 동구에 있는 행사장(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종의 신호였다. '주군'이 '영지'에 등장한 것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유승민을 쳐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이후 새누리당 친박계는 공천에서 대구와 수도권의 '친유승민계' 의원 대부분을 날렸고, 이재오, 진영 의원 등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반기를 들었던 거물급 인사들을 쳐냈다. 유 의원은 '공천 학살극'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던 셈이다.
유승민 의원 공천 배제는 '한번 찍은 사람은 반드시 제거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다. '사심 정치'다. 청와대는 당의 공천 문제와 관련해 "관여해서도 안되고, 관여할 수도 없다"고 설명하지만, 이같은 설명을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인 박종희 제 2사무부총장은 유 의원의 '죄목'과 관련해 "유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당헌에 어긋나는 대정부질문이나, 대통령 방미 과정에서의 혼선을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지칭해다든가, 당명 개정에 반대했다던가 그런 부분이 있다"고 했다.
청와대를 비판하고, 박 대통령의 당명 개정에 비토를 놓았다는 것이 공천 배제의 이유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심기 경호'가 공천의 목적이었던 셈이다.
아무리 비정한 정치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당에서 이런 집단 따돌림은 없었다. 여당 인사들은 "이렇게 집요하게 사람을 미워하고 괴롭힌 전례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친박'을 자임하는 한 인사도 "이건 너무 나간 것 같다. 정말 무섭고 두려운 느낌"이라고 했다.
공천이 아니라 사실상 박 대통령의 '사천'으로 귀결된 새누리당의 행태는 벌써 수도권 민심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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