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유승민을 찍어내려는 이유는 그가 ‘배신’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찍어내려는 것입니다.
궁금합니다. 청와대는 뭘 보고 유승민 원내대표가 배신했다고 분노하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단순한 의견차나 시행착오가 아니라 유승민 원내대표의 ‘철학’과 ‘노선’이 박 대통령과 달랐던 것”이 문제라고요. “철학의 차이는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숙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요.
청와대의 핵심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답니다. “유승민은 영민하지만 정책에 대한 기본 생각이 박 대통령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요. “정치는 생각이 달라도 같이 할 수 있지만 정책은 그럴 수 없다”고요.
이건 궤변입니다.
철학과 노선의 차이는 토론의 주제이지 찍어내기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궤변입니다. 정당은 같은 철학과 노선으로 뭉친 결사체라는 명제에 따르면 타당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역시 궤변입니다. 정당이 같은 철학과 노선으로 뭉친 결사체라면 그 정당은 사당이 아니라 공당입니다. 같은 철학과 노선을 관철시킨다 해도 그건 함께 결사한 당원 전체의 뜻으로 행할 일이지 대통령 일개인의 사견으로 강제할 문제가 아닙니다.
청와대 인사들의 주장은 궤변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귀를 닫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아주 재미있는 시사점이 녹아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나온 행적을 되살펴보죠.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은 김종인 씨를 영입해 경제민주화 담론을 선점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선 구도가 예각화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중간지대 유권자를 견인하는 효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 때뿐. 대선이 끝나자마자 경제민주화 약속은 팽개쳐버렸고, 김종인 씨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 표본 사례에 청와대 인사들의 주장을 대입하면 아주 기괴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철학과 노선이 녹아있어 비타협적으로 관철해야 하는 정책, 그 정책의 표본 사례라 할 경제민주화 공약을 박 대통령은 헌신짝 버리듯 팽개쳤습니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바로 차버렸습니다. 도대체 이 행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종인 씨의 경우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를 영입했다가 외면한 걸 ‘생각이 달라도 같이 했던’ 정치 행위로 간주해 정당화하면 정책이 오염됩니다. 김종인 씨가 주도했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 애당초 ‘생각이 달랐던’ 점을 자인하는 꼴이 되니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입장을 밝히면서 했던 말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한다”고요. 이 말 그대로입니다. 박 대통령은 철학과 노선이 투영된 정책을 선거 수단으로 삼아 당선된 후에 배신의 정치를 해왔고, 지금 현재 줄세우기를 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온몸으로 배신의 정치를 시연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6월 29일 <시사통> '이슈독털'입니다. (<시사통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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