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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문분야일수록 내부고발 더 어렵다"

[인터뷰] '투명사회상' 받은 여상근 씨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등 각 영역에서 부패를 없애보자는 취지로 1998년에 설립된 시민단체인 한국투명성기구(회장 김상근)가 7일 제6회 '투명사회상' 수상자 명단을 발표하고 시상식을 가졌다. 투명사회상은 한해 동안 내부 고발을 통해 공익을 실현했다고 평가되는 공익제보자나 부패방지 시스템을 잘 갖췄다고 평가되는 기관에 수여되는 상이다.

올해에는 6명의 공익제보자와 2개의 기관이 투명사회상을 수상했다. KT에서 30여년 간 근무하다가 공익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올해 해고당한 여상근(51) 씨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투명성기구 측에 따르면 여 씨는 KT가 부당하게 국고를 지원받은 사실을 고발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

여상근 씨는 지난 2005년 KT가 고속철이 지나는 철로 주변에서 통화잡음이 발생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 공사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1200억 원을 국비에서 지원받은 일이 정당하지 않다고 국가청렴위원회에 고발했다.

그러나 여상근 씨는 현재 KT와 해고의 정당성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 씨는 자신에 대한 해고 처분이 사내 부정행위를 외부에 고발한 데 대한 회사의 보복조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윤리경영을 다짐하면서도 자신의 치부는 애써 감추려고 하는 회사의 태도에 실망감을 적잖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투명사회상' 시상식에 참석한 여상근 씨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내부고발에 뒤따르는 고통이 시간이 갈수록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익제보자모임의 김용환 대표는 "공공기관의 내부고발이 쉽지 않은 만큼이나 대기업에서의 내부고발도 어렵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시상식이 있기 직전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상근 씨를 만나 그간 KT 측과 벌여 온 진실공방 내용과 그 과정에서 내부고발자로서 느꼈던 소회를 들었다.

"KT, 필요없는 전력유도 방지장치 설치한다며 국비 1200억 유용"

프레시안 : KT와 3년째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 싸움의 발단은?

여상근 : 2004년에 공기업을 비롯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윤리경영 선포식이 잇따랐다.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 경영을 하겠다는 대내외적인 약속이었다. 당시에 KT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KT에서 30년 근무한 나로서는 자못 감동적이었다. 그런 배경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사내 '부정행위'를 공론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윤리경영을 하겠다고 대내외에 선포한 마당에 그냥 넘기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문제를 지적하면 사내 감사가 이뤄져서 문제점이 뿌리 뽑힐 거라고 판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했던 것 같다.

▲ 투명사회상을 받은 여상근 씨. 여 씨는 지난 2004년 KT가 국비 1300억 원을 부당하게 지원받은 사실을 고발했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번 진실공방의 핵심은 뭔가?

여상근 : 설명하기가 간단치 않다. 매우 전문적인 분야다. 알기쉽게 정리하면 2003년 KT는 철도시설관리공단과 함께 KTX가 지나가면서 발생하는 전류가 철로 주변에 설치돼 있는 통신선에 영향을 미쳐 일반 전화통화에 잡음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전력유도방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국고에서 1200억 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KTX 철로 주변에서 잡음발생 여부를 수차례 측정해보니 전력유도방지 장치를 마련할 만큼의 잡음이 발생하지 않았다. 1200억 원이라는 국고가 불필요하게 낭비됐다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전문가가 왜 설치냐"는 식이었다. 회사 내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일을 처리했겠느냐는 것이었다. 끝까지 내가 굽히지 않자 회사에서는 "왜 회사에 해가 되는 일을 하려고 하나", "여기서 번 돈으로 자식 먹이고 키우면서 정말 이럴 수 있느냐"면서 압박해 왔다.

프레시안 : 누구 말이 맞는지는 함께 검증실험을 하면 되지 않나? 이 문제는 국가청렴위원회(구 부패방지위원회)나 감사원 등 KT 외부 기관에서도 진실을 가리기 위해 나섰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상근 : 지난해 8월 국가청렴위원회에 이 문제를 고발했다. 청렴위는 이 사건을 감사원에 이첩했고, 지난 1월 감사원이 정보통신부 산하 전파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실제 검증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검증작업을 벌였다. 문제는 이런 검증작업이 KT 측의 로비와 조작으로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검증은 실제 KTX가 지나갈 때 주변 통신선에서 잡음이 얼마나 나는가를 알아보는 것인데, KT측이 고의적으로 검증하는 기계의 수치를 조작해 마치 잡음이 큰 것처럼 들리게 한 것이다. 국회 건교위원들도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KT를 질타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답답한 것은 외부기관이 나서기 전에 KT가 먼저 내부적으로 정밀 검증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회사 내 직원이 일리 있는 지적을 했으면, 자체적으로 검증을 해보는 것이 순리 아닌가. 검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KT는 검증에 나서지 않았다.

프레시안 : 지난 8월에 국가청렴위원회가 이 사건과 관련해서 KT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들었다. 또 감사원도 지난 6월에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비 낭비가 일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일단 진실공방은 끝난 게 아닌가 싶다. 한국투명성기구가 올해의 투명사회상의 수상자로 선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경에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들었다.
▲ 여상근 씨. ⓒ 프레시안

"전문적인 부분일수록 내부고발 어렵다"

여상근 : 감사원 발표가 나기 직전에 회사는 내가 회사 기밀을 외부로 알리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면서 나를 해고했다. 바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1심에서 기각 결정이 났다. 전력유도장치라는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판단하기 힘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KT가 비싼 노무사들을 동원해 적극 대응했기 때문에 기각 결정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2심 절차를 밟고 있다.

해고가 되면서 생활도 힘들어지고 가족들 보기도 미안하지만, 사실 더 힘든 것은 따로 있다. KT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왜 비전문가가 나서느냐"며 윽박지르거나 "회사에 해가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비꼬았다. 나는 단지 잘못된 일을 지적했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인신공격과 근거 없는 비방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에 대한 실망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왔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게 벌써 1년이 넘었다. 때로는 자살충동마저 느낀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의 설명만으로도 KT와 벌인 진실공방의 내용이 매우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이 많은 것 같다.

여상근 :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 중 하나가 전문가 아니면 파악하기 힘든 영역일수록 부정이나 부패가 드러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면, 그 진상도 쉽게 드러나고 그만큼 해결도 잘 되는 편인데,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일반인들 모르게 얼마든지 조작이나 은폐하기가 쉽기 때문에 부정이나 부패를 드러내 보이기가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예정인가?

여상근 : 지금은 구세군 활동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일인데…. 실업자가 되고 나니 본격적으로 사회봉사활동을 겸해서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국가청렴위가 검찰에 고발해 놓은 상황인 만큼,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을 추스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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