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해 오던 공공기관의 허위출장이 드디어 도마에 올랐다. 상당수 정부부처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동행자 수를 부풀리거나 아예 가지도 않은 출장자에 대해 비용을 신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고를 쌈짓돈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태가 일부 확인된 것.
"한 부서에서 2년 새 2000만 원이 허위출장으로 나가"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22일 제33회 '밑 빠진 독' 상을 '공공기관 허위출장'에 수여하고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 단체는 "최근 건설교통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사례를 조사하면서 공공기관 허위출장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해 이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건설기술연구원 소속인 제보자의 의사에 따라 이 기관의 일상적 허위출장 실태를 국가청렴위원회에도 고발했다. 두 단체는 "건설기술연구원이 제보 내용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확대 조사나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결국 청렴위원회에 신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제보자는 "출장을 갈 때 동행자 수를 부풀리거나 허위출장 등을 통해 출장비를 횡령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며 "한 부서에서 직접 관련되거나 목격한 허위출장만 돈으로 1000만 원대에 이른다"고 제보했다.
이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 최근 2년 간 소속 부서장 등의 지시에 의해 해당 제보자가 관련된 허위 출장은 총 7건이었다. 이 제보자는 가짜 출장기안을 작성하거나 허위출장에 동행자로 기재한 후 받은 출장비 약 440만 원을 계좌이체, 현금 전달 등의 방식으로 부서장에게 전달했다.
이밖에 제보자가 직접 관련돼 있지는 않으나 같은 부서 내에서 허위출장 사실을 목격한 건도 총 40건이나 된다. 이런 허위출장으로 부서 직원들이 챙긴 출장비는 약 615만 원이다. 총 1000만 원이 넘는 돈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빠져나갔다. 이렇게 빠져나간 돈은 개인 카드대금 결제 등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 허위출장 만연…"살림살이에 보태 써라"
이런 제보자의 제보는 건설기술연구원의 내부감사에서도 확인됐다. 최초 제보자의 강한 요청 탓에 해당 부서를 대상으로 2006년 4월 실시한 내부감사 결과, 해당 부서에서만 19개월 간 허위출장으로 판명된 출장비 지출액이 총 1852만 원으로 확인됐다.
허위출장은 건설기술연구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2년부터 2006년 7월 14일 현재 청렴위원회에 접수된 허위출장 관련 신고는 모두 5건. 청렴위에 신고되는 사례가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공공기관의 허위출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실제로 2006년 4월에는 노동부의 하위직 공무원이 장관에게 건의서를 보내 허위출장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공무원은 건의서에서 "허위출장에 의한 출장비 횡령은 거의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며 "예산부족을 이유로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직원 살림살이에 보태라며 묵인돼 왔다"고 장관의 조치를 거듭 요구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은 "현재 공공기관의 여비규정에 의하면 출장비를 쓰면서 구체적인 증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동료끼리 눈만 감아주면 쉽게 출장비를 타낼 수 있다"며 "실제 쓸 만큼의 돈을 주고, 쓴 다음에는 정확하게 영수증을 붙이도록 공공기관 여비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들 단체는 또 "이번 건설기술연구원의 내부자 고발을 계기로 '공공기관 허위출장비 근절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작은 것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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