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두 차례에 걸쳐 교육청과 관내 중학교의 부패 행위를 제보한 직원을 '성적 모욕감을 준 폭언' 등을 했다는 이유로 파면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청은 최고 중징계인 '파면'을 내린 결정이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사자는 공익 제보에 따른 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시교육청, 학원ㆍ급식업체와 유착폭로한 공익 제보자 파면**
10일 서울시교육청과 부패방지위원회에 따르면, 박모(32)씨는 2004년 7월과 2005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서울시교육청 산하 중부교육청과 관내 S중학교의 부패행위를 부방위와 시교육청 감사팀 등에 공익 제보를 했으나, 이후 같은 학교 교사에게 전화로 성적 모욕을 주는 폭언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 4월28일 파면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중부교육청에서 1년여 근무하면서 특히 관내 학원과 중부교육청 일부 직원 사이의 유착 관계가 일상적으로 만연돼 있는 것을 목격하고 관련 사실을 2004년 7월 서울시교육청 감사팀 등에 고발했다. 박씨의 제보후 감사가 진행돼 학원 업무를 담당하는 과 공무원들이 학원장들에게 월 2~3회의 정기적인 접대를 받은 사실이 확인돼 해당 과장이 경고 처분을 당했다. 이 일로 박씨는 관내의 S중학교로 하향 전보 조치를 당하는 것도 감수해야만 했다.
교육계의 부조리는 S중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박씨는 이 중학교가 급식업체가 제시한 급식비 인상 요인을 검토조차 않은 채 급식비를 인상해주는 등 급식업체와의 유착 관계, 학교 예산의 부당한 사용 등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등을 다시 확인하고 이를 부방위와 서울시교육청 감사팀 등에 지난 2월 인터넷을 통해 제보했다.
제보를 접수한 부방위는 관련 사실을 서울시교육청에 조사의뢰했고 ▲교장의 복무 관리 태만, ▲학교 급식업체와의 유착 의혹, ▲학교 회계 금고를 부당하게 지출한 건 등을 사실로 인정하고 서무부장 등을 '경고' 처분하는 등 징계 처리했다. 박씨가 두 차례에 걸쳐 제보한 내용 모두 상급 기관 감사에 의해 일부 사실로 인정된 것이다.
박씨는 "공직에 들어와 1년여 동안 근무를 해보니 국민의 세금을 받아 생활하고 또 그것을 집행하는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될 부조리가 너무 많아서 고민과 망설임 끝에 제보를 하게 됐다"며 "개별 사안만 놓고 보면 경미하다 생각될지 모르지만 전국의 모든 교육청, 학교에서 똑같은 일이 만연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기 때문에 제보를 하면 상급기관에서 응분의 조처를 취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공익 제보를 할 때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그만의 생각이었다.
***교육청, "50명과 한 사람 말 중 누구 말이 맞겠나"**
박씨는 그 후 채 두 달도 못 돼 온갖 시련을 겪은 뒤 4월28일 파면을 통보받았다.
중부교육청은 지난 3월3일부터 3월11일까지 박씨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박씨가 2월27일 S중학교에서 교무실 물품 구입 문제로 말다툼이 있었던 같은 중학교 원모(45)교사에게 전화로 성적 모욕을 주는 말을 하는 등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중부교육청은 또 "박씨가 같은 날 교감을 비롯한 교직원 7명과 한 교사의 처에게도 휴대전화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성적 모욕을 주는 말이 포함된 성희롱, 폭언을 한 사실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중부교육청은 "지난 3월2일 박씨가 S중학교 서무실에서 기물 파손을 나무라는 서무부장에게 앙심을 품고 폭행을 당했다고 거짓으로 112에 신고해, 허위 신고로 즉결 심판에 넘겨져 '구류 5일'의 즉결 처분을 받은 사실 등이 있다"며 서울시교육청에 징계를 요구해 결국 박씨는 4월26일 파면 당하게 됐다. 이 과정에 S중학교 교장 이하 50명 전 직원은 "박씨를 학교에서 격리시켜 달라"며 탄원을 하기도 했다.
박씨는 이와 별개로 중부교육청 전 직속상관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다. 박씨가 공익 제보를 하는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박씨와 많은 갈등을 빚었던 S중학교 관계자는 9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중부교육청에서 감사한 사실 그대로"라며 "학교 선생님들이 설마 거짓말을 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이젠 조용해졌다"며 "박씨가 재심을 청구했다고 해서 우리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는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씨를 감사한 중부 교육청 관계자도 "50여명이 다 똑같은 소리를 하고 단 한 사람이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당연히 50여명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더구나 50여명은 학교 교사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씨 때문에 3월2일 개학이 어려울 정도로 학교가 망신창이가 된 상태였다"며 "2월27일 당직을 서는 용역회사 직원이 박씨가 서무실에서 전화하는 것을 봤다고 증언도 있다"고 덧붙였다.
***"'왕따', 폭행에 자살 시도, 정신병원 입원도…"**
하지만 박씨는 중부교육청 감사로 밝혀진 모든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나를 내쫓기 위한 전형적인 표적 감사"라며 "고양에 사는 내가 휴일에 학교까지 가서 개인적 감정이 전혀 없는 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성희롱과 폭언을 할 까닭이 없지 않겠느냐"고 관련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중부교육청이 박씨의 혐의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로 제시한 것은 전화로 성적 모욕 및 폭언을 들었다는 당사자의 진술, 행정실 대표 전화 내역이 담긴 KT의 통화 기록, 박씨가 전화를 했다는 것을 봤다는 당시 당직자의 출근 확인뿐이다.
상급자를 무고해 '구류 5일'의 처분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박씨는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제보후 감사가 진행된 후에 교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은 물론 상급자와 일부 교사로부터 폭행까지 당했다"며 "3월2일에도 상급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인데 경찰이 상급자 얘기만 듣고서 나를 즉결 심판에 넘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구류 5일'의 처분을 받은 뒤 생전 처음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본 박씨는 억울함과 절망감에 빠져 안경으로 손목을 긋는 자살을 시도해 다섯 바늘을 꿰매기까지 했다.
박씨는 또 3월19일 직위 해제된 뒤 사서 고생을 하는 박씨를 못 마땅하게 생각한 형에게 이끌려 정신병원 진료를 받게 되고 극도의 우울, 불안 상태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 결과 박씨는 3월 한 주간에 걸쳐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박씨는 "비정상인들만 있는 사회에서 정상적인 목소리를 냈더니 '미친놈' 취급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며 "형까지 나보고 그만두라는 상황에서 내 처지를 이해해주는 이들은 오히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방위 결정이 유일한 희망"**
박씨는 현재 4월28일 파면 통보를 받은 직후 서울시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해놓은 상태이나,혐의 사실이 인정되는 한 정상이 참작되더라도 '파면'에서 '해임'으로 징계가 완화될 뿐이다. 직장에 복귀하는 것은 영영 어렵게 된 것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박씨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막막한 상황이다.
이같은 파면 징계는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같은 중부교육청 산하 H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여교사를 폭행해 물의를 빚은 한 여교사는 네티즌의 빗발치는 비난여론에도 '6개월 휴직' 결정만 내려진 상태다. 반면에 부패행위를 공익 제보했던 내부고발자의 경우는 성적 모욕을 주는 전화통화를 했다는 혐의로 가장 중징계인 '파면'을 당한 것이다.
현재 박씨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부방위가 조속히 자신을 '제보로 인해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은 자'로 판단해 적절한 조처를 취해주는 것이다. 박씨는 3월19일 '직위 해제'된 직후 바로 부방위에 보호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부방위 관계자는 "현재 조사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얘기를 해줄 수 없다"며 "단 제보로 인해 파면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서울시교육청 입장에서도 복직 조처를 취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씨는 "막 파면 통보를 받은 뒤에는 어떻게든지 복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정뿐"이라며 "한 집단 전체가 똘똘 뭉쳐서 한 개인을 적대시하는 현실에서 구제받기는 힘들 것 같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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