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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대책, 시장근본주의자들에 '백기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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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1.15대책, 시장근본주의자들에 '백기투항'

[기고] 투기상황에서 공급확대는 불에 기름 붓기

현 정부의 여덟 번째 부동산 종합대책이 15일 발표됐다. 2010년까지 164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방안이 두드러졌다. 충분히 물량을 대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겠냐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의 정책 변화는 재정경제부가 정책 주도권을 쥐면서 예견됐던 것이기도 하다.
  
  이에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강수 대구 가톨릭대 교수가 11.15 대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토지정의시민연대는 부동산 대란을 잠재울 수 있는 열쇠를 투기적 가수요를 잠재울 수 있는 세제 강화에서 찾고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줄곧 주장해 온 시민단체다.
  
  전강수 교수는 이 글에서 11.15 대책은 공급을 확대하면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작품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투기적 가수요를 잡지 않고서 공급확대만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편집자 주>

  
  이번에 수도권 일대에서 일어난 집값 폭등은 올 상반기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의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8.31 대책과 3.30 대책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휘될 것이라는 점과 금리가 두 차례 인상되었다는 점이 그런 전망을 하게 한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예기치 않은 사태의 발발로 인해 정책 당국자들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고 시장 전문가들도 심히 당황하고 있다.
  
  9월 집값 폭등은 '정치 실패'에도 원인이 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은 정부 여당의 '정치 실패'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5.31 지방선거의 결과는 열린우리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이는 비교적 강도 높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곧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이번에 시장 참가자들에게 강한 신호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동산 가격은 미래 가격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 부동산 정책이 완화되고 부동산 값이 올라갈 것이 확실하다면, 지금 아무리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요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다주택 보유자들은 보유 주택을 팔지 않고 버티게 되고, 주택구입 시기를 저울질하던 무주택자들은 매입에 나서게 된다.
  
  차기 집권이 유력시되는 한나라당은 부동산 투기 근절에 가장 효과적인 불로소득 차단 정책(보유세 강화, 양도세 중과, 개발이익 환수 등)을 '세금폭탄'이라고 매도하며 이를 후퇴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런 한나라당의 집권이 확실시되는 마당에 시장 참가자들이 정책 후퇴에 따른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집값 폭등의 원인을 '정책 실패'로 보건 '정치 실패'로 보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방식대로 새로운 부동산 대책의 발표를 통해 집값 폭등세를 잠재우기는 무척 어렵다. 더욱이 8.31 대책과 3.30 대책 속에 웬만한 대책은 이미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과 같은 극약처방 외에는 정부가 새롭게 내놓을 카드도 별로 없다.
  
  과녁 빗나간 진단에 엉뚱한 처방
  
  그래서 그런지 11월 15일 발표된 '부동산 시장 안정화 방안'(11.15 대책)에서는 현재의 집값 폭등세를 잠재울 만한 효과적인 대책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정책 당국자들 스스로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고, 대책이 발표된 후 시장에서도 집값 폭등세가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 않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처음부터 약했기 때문인지,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은 과녁을 벗어났고 처방은 엉뚱하다.
  
  11.15 대책에서는 최근의 집값 폭등의 원인을 "공급정책의 시차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고분양가 등으로 불안심리가 확산된 데"에서 찾는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수요 측면에서 ① 9월 이후 발생한 전세난이 소형주택에 대한 매수세 촉발, ② 은평·파주 등의 고분양가 논란이 불안심리 및 선(先)매수 수요 확산, ③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대출 취급이 매수 수요를 측면지원했다는 점 등 세 가지 원인을, 공급 측면에서 ① 개발밀도 감소 및 공급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차의 존재(공공택지), ② 계획관리지역 및 다세대 다가구 규제 강화로 공급 위축(민간택지) 등 두 가지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들은 부동산 시장에 존재하는 현상들을 단순히 열거한 것일 뿐, 최근의 '돌발적인' 집값 폭등을 설명해주는 직접적인 원인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원인분석의 결과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정책 내용을 미리 결정해 두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골라낸 원인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예컨대 '공급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최근에 발생한 새로운 사실이 아니므로 돌발적인 집값 폭등의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것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한 것은 그래야 뒤에서 공급확대책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재미있는 것은 11.15 대책 중 '최근 부동산 시장 진단' 부분에서는 투기수요 혹은 투기심리 등의 용어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값 폭등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 따른 수급 불균형'에서 찾고 투기적 가수요를 부정하는 것은 부동산 시장근본주의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이들은 집값 폭등은 부동산 시장의 수급 불균형에 의해 일시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므로 그냥 놔두면 저절로 조절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투기에 의해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져서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이 발휘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11.15 대책이 부동산 시장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공급확대론'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집값 폭등의 원인 진단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다.
  
  11.15 대책의 중심은 공급 확대와 분양가 인하이다. 주택담보대출 관리와 서민주거 안정 방안이 들어 있지만, 공급 확대와 분양가 인하에 비하면 극히 간단하게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공급 확대의 방법으로는 추가 신도시 건설, 신도시와 국민임대주택 단지의 개발밀도 및 용적률 상향조정, 녹지율의 합리적 조정 등이 활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공공택지에서 택지 조성비용 절감과 택지 공급가격 인하 등을 통해 분양가를 약 25% 낮추는 방안이 도입됐다. 택지 조성비용 절감 방안으로는 개발밀도 상향조정, 녹지율의 합리적 조정, 기반시설 비용에 대한 국고 지원 확대 등이 제시되고 있다.
  
  정부, 시장근본주의자들에 백기투항
  
  대대적인 공급확대 정책은 2005년도의 8.31 대책에 이미 들어 있던 내용이다. 11.15 대책에서는 그것이 더욱 강화되고 분양가 인하 대책이 추가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동안 투기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상태였다고 한다면, 이번 대책에 의해 부동산 정책의 무게중심이 공급 확대 쪽으로 크게 기운 느낌이다. 부동산 시장근본주의자들, 즉 공급확대론자들에게 백기투항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정책 당국자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있을 때 공급확대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부동산 값을 안정시키기는커녕 폭등을 가속화하고 확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11.15 대책이 이런 공급확대 정책을 집값 안정의 중심 처방으로 제시한 것은 큰 잘못이다.
  
  부동산 시장근본주의자들과 보수 언론들은 보유세 강화를 통한 투기수요 억제에 대해서는 극력 반대하는 대신, 공급 확대를 앵무새처럼 주장해 왔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므로 공급을 확대해 주면 가격이 잡힐 것 아닌가 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논거이다. 이는 수요공급의 법칙 내지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그럴싸한 논리인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택 공급이 실수요에 못 미치고 있고 그래서 집값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들의 말대로 공급 확대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투기심리가 발동하여 투기적 가수요를 팽창시키고 그것이 집값 폭등을 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공급 확대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최근의 상황은 후자에 해당한다. 주택 구입을 미루고 있던 세입자들이 대거 매입에 나서고 있는데 이를 무조건 실수요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의사결정의 배후에는 미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고, 그 기대에 의해 좌우되는 수요는 본질적으로 투기수요이기 때문이다.
  
  공급 확대한다고 투기적 가수요 잠재울 수 있을까?
  
  공급을 확대한다고 해서 실수요가 아닌 투기적 가수요를 충족시킬 방법은 없다. 투기적 가수요는 실수요와 달라서 순식간에 몇 배로 불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가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수요에 대한 면밀한 판단 없이 무작정 공급을 확대했다가는 투기가 사라진 후 주택 공급이 과잉상태에 빠져 지금과는 반대로 집값이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부동산 거품이 발생하는 시기에 주택 공급이 급증하고 거품이 꺼지면서 집값이 폭락했던 사례가 허다하다. 11.15 대책에서 강조하는 '공급의 시차', 바로 그것 때문에 막상 공급 물량이 나올 때는 시장의 상황이 역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2005년, 2006년의 집값 폭등은 바로 공급확대책 때문에 발생한 측면이 강하다. 강남과 분당권에서 2004년 잠잠해졌던 부동산 투기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2004년 말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 발표와 판교 신도시 개발인데, 이는 바로 공급확대책의 일환이다. 8.31 대책 이후 2006년 초에 강남에서 집값 상승세가 다시 시작된 것도 서울시 의회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부터다. 최근의 돌발적인 집값 폭등에 기름을 부은 것도 추병직 장관의 검단 신도시 건설 발표이다. 재건축 규제 완화와 신도시 개발과 같은 인위적인 공급확대책은 투기 장세에서 추진될 경우 집값 안정 효과보다 투기 촉발 효과를 훨씬 더 크게 발휘한다.
  
  사실 주택 건설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공급확대책을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공급 물량의 증가를 통해 '현재'의 집값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부동산 시장근본주의자들 중에는 "공급확대책을 발표하면 수요자들이 '앞으로 주택 공급이 확대될 것이며 그만큼 미래의 집값도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투기수요가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현재의 집값도 안정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공급확대책이 수요자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쳐서 현재 집값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런 유의 공급확대론은 "초과수요 상태에서는 공급확대만이 가격을 안정시킨다"고 주장하는 천박한 공급확대론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왜냐하면 투기수요 억제에 훨씬 효과적인 불로소득 차단 정책(보유세 강화, 양도세 중과, 개발이익 환수 등)에는 극력 반대하면서 오로지 공급확대만을 주창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급확대론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불로소득 차단과 공급확대를 동시에 주장하는 형태가 되었어야 마땅하다.
  
  건설족과 손 잡았다는 비판, 하등 이상할 게 없다
  
  11.15 대책은 공급확대론을 전면 수용했다는 문제점 외에, 분양가 문제를 불로소득 환수의 관점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대책에서 제시하는 분양가 인하 방법은 경실련이 주장하는 것과는 내용이 다르다. 경실련은 건설업체가 택지공급 및 주택 공급 과정에서 막대한 폭리(즉 토지 불로소득)를 얻는 것을 막아서 분양가를 인하할 것을 주장하지만, 11.15 대책에서는 건설업체의 이익을 전혀 줄이지 않는 방법으로 분양가 인하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적률을 높이고 기반시설 비용을 국고에서 부담하면 분양가를 낮추더라도 건설업체의 이익은 줄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11.15 대책이 '건설족'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1.15 대책을 발표하면서 "분양가 인하는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신규 주택의 분양가 상승이 기존 주택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선도 기능을 한다는 점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러나 이 가격선도 기능은 투기적 가수요가 없을 때는 발휘되지 않으며, 그 영향이 미치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투기적 가수요가 수도권보다 약한 대구 지역에서는 신규 주택의 분양가는 상승하고 있지만 기존 주택의 가격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신규 주택에 입주하기 위해 기존 주택을 매각하기 때문이다.
  
  11.15 대책에서 말하는 방식이든 경실련이 주장하는 방식이든, 분양가를 정책적으로 낮춘다고 해서 부동산 투기가 사라지거나 부동산 값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분양 후 주택 가격이 금방 주변시세 수준으로 올라가서 건설업체로 들어가던 불로소득이 최초 분양자에게 돌아갈 뿐이다. 최초 분양자가 누릴 불로소득 때문에 청약과열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투기가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11.15 대책에서는 무주택자 우선 공급, 전매 제한 강화, 재당첨 금지 등 청약과열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11.15 대책에 담긴 '공급 확대책'과 '분양가 인하책'은 최근의 집값 폭등을 잠재우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들이 집값 안정을 목표로 하는 11.15 대책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부 언론의 비판처럼 정부가 결국 '건설족'의 손을 들어 준 것이 아니라면, 쓸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그냥 있기 뭐 하니까 시늉만 한 결과가 아닐까.
  
  집값 안정은 기본적으로 '투기수요 억제 정책'을 통해 달성된다. 투기수요 억제 정책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은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토지보유세 강화는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패키지형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부동산 값을 안정시키는 효과와 함께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어렵사리 추진해 온 보유세 강화 정책은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의 '세금폭탄론' 공격을 받아 전도(前途)가 불투명하고, 11.15 대책에서는 기껏 대출 규제 정책만으로 주택 수요를 관리한다고 하고 있으니 바라보기에 처량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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