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동시에 부동산 정책의 입안자에 대한 성토도 거세지고 있다. '정책 실패가 드러났으니 책임 지고 물러나라'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 또한 여야 정당을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집값 폭등에 분노한 국민들의 심정을 뒤늦게라도 깨달은 모양이다. 물론 내년 대선을 앞둔 각 정당들의 사전 포석, 즉 정략적 판단임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이런 가운데 줄곧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날을 세워 왔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거리에 나서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정책 비판과 대안 내놓기에만 머리를 쓸 때가 아니라 직접 시민들을 조직하고, 그 힘으로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더 이상 현 정부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고 현 정부가 선언했던 지난해 8월 31일, 같은 시간에 경실련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동산 정책팀 전원을 경질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8.31 대책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경실련의 '묵시록적 예언'은 불과 1년 남짓 지난 현재,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지난 12일 경실련의 부동산 정책팀을 이끌고 있는 홍종학 교수(경원대)를 서울 혜화동 경실련 사무실에서 만났다. 홍 교수는 올해 초부터 경실련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00년 초부터 경실련과 함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고민을 해 왔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의 앞자리는 매번 홍 교수가 차지하고 있었다.
홍종학 교수에게서 15년 만에 경실련이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었다. 홍 교수는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정부 부동산정책팀은) 경제학 원론도 공부 안한 것 같다"는 등의 직설적 표현과 함께 격정적 어조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질타했다. 홍 교수는 지금 상황에 대해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잘라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프레시안 : 경실련이 15년 만에 거리에 나서기로 했다. 어떤 절박함 때문인가?
홍종학 : 우리는 '시국선언'이라는 말을 붙였다. 한국 경제의 절대절명의 위기가 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부동산 충격은 외환위기 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경제의 토대를 뿌리째 흔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절박감 때문에 시국선언을 했고, 거리 운동에까지 나서게 됐다.
최근 들어 마지막으로 투기 대열에 들어선 사람들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더 커지고 있다. 거품의 특징은 그 근거도 없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면 계속 오르고 커지는 것이 거품의 속성이다. 거품이 꺼질 때 우리 경제는 파탄 날 것이다.
금융기관이 투기 자본을 쉽게 대주고 있다. 은행의 가계대출만 따져도 200조 원이 넘어가고 있다. 가계 소득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모두 은행 빚 내서 투기 대열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바다이야기' 보다 수백 배 큰 도박장이 부동산 시장에서 조성됐다고 본다. '바다이야기'에서 드러난 각종 비리나 도박자금과 부동산 대란은 서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단위부터 수십 조 내지 수백조 원이다.
부동산 투기붐은 건전한 근로소득자의 삶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거품이 꺼지면 고스란히 그 피해는 또다시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프레시안 : 정부가 조바심을 내면서도 오늘날 부동산 사태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만큼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홍종학 : 제일 답답한 일은 엉터리 대책들을 만든 그런 사람들이 훈장 받고, 승진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비리가 있는지 여부는 따로 밝힐 일이겠지만, 최소한 자신들이 내놓은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이들이 더 나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최소한 8.31 정책으로 훈장 받은 사람들은 다 훈장 반납하고 스스로 물러나야 하는 게 순리다. 웃기는 일은 정부는 당시 훈장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뭐가 두려워 공개를 안하는지 의문이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까지 포함해서 정부가 8.31 정책을 발표한 당일날 우리 경실련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책 입안자 모두를 경질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 이미 8.31 정책은 실패할 거라고 우리는 확신했다. 하지만 우리의 외침에 메아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판명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국민들은 철저히 투기세력을 옹호해 온 최고 권력과 정치권력자와 개발 관료들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프레시안 : 경실련은 '건설 오적'이란 표현을 쓴다. 개발 관료, 정치인, 전문가 그룹, 언론, 건설업체를 지칭하는 것인데, 굳이 '오적'을 규정한 이유는 뭔가?
홍종학 : 개발 세력들의 무기는 돈이다. 그들의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면 우리가 '건설 오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의 돈은 언론 광고로 들어간다. 정치권에는 로비 자금으로 투입된다. 정치인의 비리 사건만 터지면 자금줄은 건설업체로 판명나지 않는가. 건설업체들은 자치단체에 엉터리 분양가를 신고하는 방법으로 폭리를 취한다. 그렇게 조성한 돈들이 언론, 정치권, 관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부도 이를 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즉각 세무당국이 건설업체를 상대로 세무조사에 들어가고, 공공주택에 대해서는 감사가 들어가야 한다. 또 폭리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을 법한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세무당국, 검찰, 감사원 모두 (정치권과 관료의) 눈치만 보고 있다. 정치권과 관료들이 매번 건설경기 부양을 외쳐되고 있기 때문이다. 괜한 짓해서 자신들도 덤탱이를 쓸까 걱정하면서 건설업체의 비리를 다 봐주고 있는 것이다.
"신도시 지어서 집값 잡겠다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프레시안 : 현 정부 들어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부동산 관련 정책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경실련은 가장 빨리 정책 비판을 내놓았다. 경실련 정책과 정부 정책의 기본적인 차이는 뭔가?
홍종학 : 경실련이 내놓고 있는 후분양제 실시, 선분양 시 원가공개 등의 정책은 이미 선진국에서 다 채택했고, 효과가 입증된 것들이다. 선진국의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정책이 아니다. 하다못해 보수적이라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조차 우리들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정부 정책은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신도시 지어서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신도시를 지으면 필연적으로 거품이 일고 투기적 가수요가 만연하는 상황에서 또 신도시를 짓겠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정부는 1980년대 말, 90년 대 초 1기 신도시의 공급확대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 사례를 들고 있다. 웃기는 주장이다. 당시에는 주택보급률도 낮았고, 금리도 높았다. 또 분양가 상한제(원가연동제)도 시행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투기 자금이 공급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또 투기 수요를 압도하는 공급 수준이었다.
공급을 통해 집값을 잡으려면 투기적 가수요를 누를 만큼의 압도적인 공급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이나 경기도에 그럴만한 땅이 없다. 강남에 50만 가구가 들어올 정도의 공급이 이뤄지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찔끔찔끔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급 확대론을 주장한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고 있다.
공공개발해서 투기세력에게 주택을 안겨주는 나라가 어디있나. 2기 신도시인 판교에 입주하는 사람들 중에 실입주자가 얼마나 될 것 같나? 투기장을 정부가 다 만들어준 꼴이다. 이런 정책을 펴고 있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는지 말해봐라.
프레시안 : 경실련의 정책은 세계 다른 나라에서 이미 채택된 정책이고 효과도 입증됐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와 같은 부동산 대란이 많았지 않았나?
홍종학 : 사실 부동산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과거에 이와 같은 상황을 겪었다. 대부분 나라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 다행히 그 과정 속에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기본적 원칙을 도출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제시하고 있는 3대 원칙(공공택지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 1가구 1주택 소유 유도, 소비자 중심의 주택정책 활성화)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것을 참조하지 않고서, 다른 어떤 나라도 취하고 있지 않는 정책만 검토하고 내놓고 있다.
금융전문가로서 주택금융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지금 3년 만기에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이 이뤄지고 있다. 비정상적인 방식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변동금리에 따라 단기로 주택담보대출해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고정금리에다가 장기 모기지론 방식으로 실수요자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고정금리 모기지론 방식이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고 주택 소비자에게 잇점이 크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따져 봐도 확인된 진실이다.
프레시안 : 부동산 거품을 이야기할 때는 매번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가 언급된다.
홍종학 : 중간층 이하는 내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려고 하고, 집을 사면 (대출금에 대한) 이자 내기에 급급해 한다. 거품이 꺼지게 될 경우 국민들이 자신들이 집 사는 데 빌린 빚을 갚는 데 얼마가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 빚 갚는 데에만 15년이 걸렸다.
일부에서는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 일본보다 우리는 충격이 적을 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주택임대사업자들이 제일 큰 타격을 입었지만, 우리는 일반 국민들, 즉 소비자들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집값 잡는다면서 경기부양 이야기 한 건 또 뭔가?"
프레시안 : 돌이켜보면 부동산 정책이 제대로 안 된 배경에는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정부 내에서 많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홍종학 : 그렇다. 한 쪽으로는 부동산 가격 잡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기 부양하겠다고 한 게 현 정부다. 경기 부양과 집값 안정을 함께 달성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사려고 염두에 둔 집이 2억 원에서 4억 원으로 두 배 올랐다고 치자. 그것이 그 사람의 평생 소득이 반으로 뚝 줄어든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 1% 올리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경기부양론은 뒤짚어보면 대다수 근로소득자의 실질소득을 줄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한 문제 중 하나는 집값 급등이 실질소득을 엄청나게 깎아먹고 있는 실상이 소비자물가지수 등과 같은 통계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통계만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부동산에 대한 불만을 일부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데 이는 통계만 봐서 그렇다. 국민들 다수가 부동산에 분노하고 있는데,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만 보고 있으니 판단 실수를 하는 셈이다.
"수요-공급론, 그만 이야기 하자"
프레시안 : 정책 실패가 완연히 드러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공급확대론을 고수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홍종학 : 부동산 시장에 대해 수요와 공급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경제학 원론도 제대로 공부 안 한 사람들 같다. 지금 수요의 문제는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다. 일단 투기적 가수요를 거둬내고 수요·공급 이야기를 하자. 투기적 가수요에 대한 비용은 높여주고,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비용을 줄여주자. 그 때 가서도 공급이 부족하면 공급물량을 늘리자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주장이다. 이게 왜 반시장적인 사고라고 비판 받는지 이해가 안간다.
프레시안 :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거리운동이 시작된다. 어떤 각오를 하고 있나?
홍종학 : 국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는 제2의 시민혁명을 기대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시민들이 더 많이 나서길 바란다. 우리 경실련은 알다시피 조직역량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시민보다 한 발짝도 앞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거리로 나서고 싶었지만, 당시만해도 시민들 사이에 부동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보류했었다.
이제는 정부가 실패했다는 사실만큼은 삼척동자까지도 알 만한 상황이 됐다. 시민들이 조금만 노력을 해주신다면 분명히 바꿔낼 수 있다. 시민들 10만 명만 모이면 건설·투기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 그 때 우리나라에서 투기는 항구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동안 수고했다.
홍종학 : 더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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