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7일에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됐다. 이른바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 사건과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다. 저축은행 사태와 파이시티 비리 의혹, 얼핏 동떨어져 보이는 이 두 사건을 꿰뚫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PF(Project Financing) 사업이다.
사채 등 지하경제를 제도권으로 흡수하기 위한 비은행 금융기관의 일종인 신용금고에서 비롯된 저축은행이 지금처럼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것 역시 PF 사업 때문이다. 이번에 퇴출된 솔로몬저축은행이 업계 1위 규모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동시에 영업을 강제로 정지시켜야 할 만큼 심각한 부실을 안 게 된 것도 모두 같은 이유다.
'고위험 고수익'의 PF 사업은 권력과의 공생관계가 필수적이다. '고수익'의 떡고물을 노린 권력, '고위험'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PF 시행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현 정부 권력 실세들이 비리 의혹으로 연루된 파이시티 사업 역시 PF 사업이다. 그리고 이처럼 비리와 부실로 얼룩진 PF 사업장이 전국 곳곳에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다름 없다. <프레시안>은 저축은행 퇴출 사태와 파이시티 비리 의혹을 계기로 PF 사업을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서울 강남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양재복합물류단지개발. 일명 파이시티 사업이 연일 신문지면을 오르내리고 있다. 인·허가를 둘러싼 비리의혹은 고구마 줄기처럼 캐면 캘수록 또 다른 비리가 터지고 있다. 끝을 종잡을 수 없다. MB 측근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 측근까지 다양한 정치권 인사, 브로커, 고위 공무원들이 연루돼 있다. 무엇이 잘못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파이시티 사업은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 Project Financing) 사업이다. PF는 사업주체가 사업(프로젝트)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수익성으로 대출을 받는다.
한마디로 미래에 수익이 얼마가 날지를 예상해 그에 따른 대출을 해주는 식이다. 물론 은행은 시행사(개발업체)에 지급 보증을 서준 시공사(건설사)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PF 사업 대부분은 시공사가 시행사에 속해 있기에 지급 보증은 쉽다. 물론 이자는 부동산 담보대출 이자보다 훨씬 비싸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이자의 덫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대출 이자의 압박이 파이시티 사태를 유발한 주요 이유라고 지목한다.
▲ 서울시 양재동에 위치한 파이시티 부지. ⓒ프레시안(이명선) |
파이시티, 무엇이 문제인가
파이시티 사업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9만6017㎡를 재개발해 전체 75만8606㎡ 규모의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사업이다. 시행사 파이시티 계획대로라면 5층짜리 터미널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하 6층 지상 35층짜리 오피스빌딩 2동, 터미널 및 물류센터 1동 등을 짓는다. 주변에는 쇼핑몰과 백화점, 할인점 등이 들어선다. 단일 복합유통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파이시티 시행사는 2004년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사들인 뒤, 2006년까지 사업에 필요한 용지 매입 절차를 끝냈다. 애초 저축 은행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경매에 나온 화물터미널 부지를 사들인 파이시티 시행사는 2년 정도 후인 2007년이면 관련된 모든 인-허가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건설사인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의 지급 보증으로 2007년엔 우리은행과 농협 등으로부터 8620억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PF 사업은 빠르게 인·허가를 받아 사업을 마무리해야 더 많은 수익이 남는 구조다. 그렇기에 사업 성공의 관건은, 대출 이후 얼마나 초단기에 인·허가권을 따내느냐에 있다. PF 이자율은 다른 대출 이자율보다 높기 때문이다. 파이시티 사업의 이자율은 연 17%였다.
하지만 인·허가는 쉽지 않았다. 예상했던 2007년을 넘겼다. 자연히 이자비용 조달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파이시티 시행사는 이 사업을 위해 금융권에 총 1조450억 원 규모 PF 대출을 일으켰는데 이 중 이자와 금융수수료만 4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대로 인·허가가 나지 않자 자연히 이자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파이시티 시행사 이정배 대표는 불법 로비자금을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 억 씩 쌓이는 대출 이자금보다 로비 비용이 저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2009년 11월에 이르러서 어렵게 인·허가를 받아냈지만 건축 허가를 신청한 지 5년6개월이 지난 후였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지나간 뒤라 과거처럼 사업 수익성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파이시티 사업의 수익성이라는 신기루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이시티 대출 보증을 선 시공사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은 이자 비용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손을 들었다. 2010년 4~5월에 걸쳐 워크아웃 수순을 밟았다. 파아시티 시행사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8월 대출 만기가 돌아오자 채권단은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다. 회생 가능성을 인정한 법원이 파산신청을 기각하자 그 해 10월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회생계획안을 공식 인가했다.
수렁 헤매는 PF 사업
현재 사업 시행권과 용지는 채권단으로 넘어간 상태다. 채권단은 지난달 새 시공사로 포스코건설을 선정했다. 다음달께 업무시설과 판매시설 분양에 들어 갈 예정이었다. 계획대로라면 2015년 준공 예정이었지만 이번 인·허가 비리 사태로 첫 삽을 뜨는 날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서울시는 인·허가 취소까지 검토 중이다.
문제는 이것이 파이시티 사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PF 사업과 관련, 형태는 다르지만 원인은 비슷한 제2, 제3의 파이시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투자 위축 현상과 부채 이자 비율 증가, 그에 따른 수익성 저하가 맞물려 사업 자체가 백지로 돌아가거나 중단될 위기에 처한 PF 사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추진 중인 공모형 PF사업은 27개, 사업비는 74조 원을 넘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사업성이 나빠지고 자금조달마저 막히면서 용산역세권개발, 판교 알파돔시티 등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멈춘 상태다.
송도랜드마크시티는 송도국제도시에 2018년까지 총 사업비 18조8706억 원을 투자해 151층 인천타워를 중심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를 건설하는 대형 개발프로젝트다. 하지만 인천타워 사업비 조달이 지체되면서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인천타워 건립비는 3조 원가량이지만 분양·임대수익을 생각해도 8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금융비용까지 합치면 1조5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게 인천시의 분석이다. 게다가 침체한 부동산 경기를 생각할 때 인천타워 층수를 대폭 낮춰 규모를 줄이는 게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층수를 낮출 경우, 수익은 더욱 줄어들기에 개발사업자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충남 아산신도시에 추진 중인 '펜타포트' 복합단지는 2005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땅을 대고 SK건설 등 민간기업이 1조2000억여 원을 투입, 아파트,·오피스,·백화점 등이 결합한 랜드마크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2010년 말까지 개발을 끝낼 계획이었지만 작년 말, 지상 66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3개 동이 완공됐을 뿐이다. 나머지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서울 강남 세곡동 헌인마을에 고급 주택단지를 짓는 헌인마을 PF 사업의 경우,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공동 시공사로 대출금 4270억 원에 대해 각각 절반씩 지급보증을 서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두 회사가 잇달아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사업은 중단됐다.
총 사업비 3조6783억 원, 133층 높이 상암 DMC 랜드마크타워 사업도 부동산 시장 불황으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수익성이 없다며 사업계획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시행사인 서울 라이트타워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100층과 70층으로 낮춘 사업계획안을 서울시에 냈지만 서울시에선 더 낮춰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 2008년 6월 20일 열린 인천타워 기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하지만 아직까지 공사는 시작도 못했다. ⓒ연합뉴스 |
누구를 위한 PF 사업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미 투입된 자금에 대한 대출 이자는 계속 늘어난다. 게다가 기존 개발 방식으론 수익성은 떨어지니, 개발업체는 용적률을 상향하려 각종 로비를 펼칠 수도 있다. 제2, 제3의 파이시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파이시티 사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이런 비리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PF 사업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사업으로 애꿎은 서민만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메가 프로젝트가 일순간 가동을 멈추면 일부에서는 부도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출 보증을 선 건설 회사가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감당하지 못하면 워크아웃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자금을 댄 금융 투자사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제1금융권인 일반은행이야 별 타격을 입지 않지만 자기자본비율이 비교적 부실한 제2금융권, 즉 저축은행은 큰 타격을 입는다.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토마토저축은행 등 16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 것에 이어, 지난 6일 제2금융업계 1위인 솔로몬저축은행을 비롯해 4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이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이유는 무리한 PF 사업 대출 때문이다. 업계 1위인 솔로몬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270억 원을 빌려줬으나 현재 제대로 된 채권은 81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때 이자를 받지 못하는 PF 대출 건도 전체 대출의 36%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825억 원을 PF 사업에 대출해준 한국저축은행도 531억 원만이 정상 채권이었다. 미래저축은행과 한주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6월 말 기준 각각 783억 원과 158억 원을 PF 대출로 빌려줬다. 영업 정지된 20개 저축은행 PF 대출액을 합산하면 6조 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저축은행에 부실 대출이 높은 이유는 중소 건설사와 시행사가 부동산 호황기에 무분별하게 PF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낮은 신용도 때문에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과 거래하기 어렵고, 자본시장에서 PF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도 불가능하기에 대출 이자율은 높지만 비교적 문턱이 낮은 저축은행에 손을 벌리는 구조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감독이 부실한 저축은행을 이용하면, 각종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쉽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는 2008, 2009년 토마토저축은행으로부터 1200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이 돈은 파이시티의 공식 회계로 처리되지 않아 파이시티 법정관리인도 최근까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검찰은 이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거로 보고 있다.
▲ 지난 6일 저축은행 업무 정지가 내려졌다. ⓒ연합뉴스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동전은 왕 서방이 줍는다?
문제는 저축은행에서 대출된 돈은 대부분 서민의 종잣돈이라는 점이다. 저축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선호하는 서민이 대부분이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저축은행이 시중은행과 마찬가지의 '은행'이라고 알고 있다. 이름만 저축은행일 뿐, 실제로는 은행이 아니라는 점을 모른 채 돈을 맡긴 것이다. 이렇게 모은 서민 종잣돈을 가지고, 저축은행은 담보 없는 대출뿐만 아니라 불법 로비 자금으로도 사용한 셈이다.
이번에 정지된 4개 저축은행의 예금은 총 7조4400억 원, 예금자는 36만8000여 명에 이르며 예금자 보호가 안 되는 5000만 원 초과 예금과 후순위채권 투자 금액은 모두 2188억 원에 이른다.
더구나 4개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6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금보험공사는 추정하고 있다. 예금 가지급금 4조 원과 부실채권 정리 등에 필요한 자금이다. 저축은행이 정상화된 뒤, 이 자금이 모두 회수된다면 괜찮겠지만, 언제 회수될지는 기약 없다. 수렁에 빠진 PF 사업 때문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동전은 왕 서방이 줍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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