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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자회견에 '국민'이 되풀이 등장하는 이유?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 ④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연재 모아보기김홍욱(金弘郁)이 강빈 신원을 주장했다가 효종에게 국문을 당하였고, 결국 매를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왕정(王政)의 작동에 대해 고민할 주제를 준다. 김홍욱은 당시 황해도 관찰사였다. 관찰사는 통상 2품에 해당한다. 재상(宰相)의 반열에 속한다. 그런데도 효종은 부왕(父王) 인조, 그리고 자신과 관련하여 가장
오항녕 전주대학교 교수
2014.01.10 19:55:00
"나 죽거든, 두 눈 빼내어 조선 망국을 보겠습니다!"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 ③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연재 모아보기 4.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 ③전사(前史)가 없으면 역사가 아니다. 황해감사 김홍욱의 상소가 올라오는 데까지도 전사가 있었다. 효종 5년 대 파란을 일으킨 상소 이전에도 김홍욱(金弘郁)은 효종과 묘한 긴장감을 연출했다. 홍문관 응교로 있을 때 인조의 만장(輓章 추도사)을 썼는데, 그 내용이 논란이 되었다.만
2013.11.29 19:10:00
탄핵, 비판의 원칙과 예의!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 ②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연재 모아보기효종 초반, 문곡에게도 일이 많았다. 효종 2년(1651), 23세 되던 해 정월에 둘째 아들 창협(昌協)이 태어났다. 후일 숙종 때 대사성으로 있으면서 숙종이 장씨를 위해 무리하게 궁궐에 별당을 짓는 일을 비판했던 아들이다. 그로 인해 문곡이 기사환국 때 사약을 받게 되었다고 사관이 실록에 기록한 바 있다.
2013.11.15 19:14:00
'나라꼴' 망가뜨리는 방법,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 ①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연재 모아보기인조실록 편찬문곡은 장원급제했기 때문에 출육(出六)이라 하여 곧장 6품 관직에 임명되었다. 첫 관직은 성균관 전적(典籍)이었고, 곧 병조좌랑으로 옮겼다. 10월에 실록청 낭청으로 춘추관 기사관이 되었다. 실록청은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관청으로, 춘추관의 소속기관으로 보면 된다. 낭청은 실무를
2013.11.08 18:50:00
성균관 유생들의 '험난한' 나날! 수업거부 끝에 결국?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눈 속에서도 꽃은 피나니 ④
☞연재 지난 글 바로 가기 : 눈 속에서도 꽃은 피나니 ③시험 보이콧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묘종사에서 시작된 논란은 점차 지방에까지 격화되어 갔다. 경상도에서는 공도회(公都會), 즉 관찰사가 주관하는 소과, 초시를 열고 제술 시험을 보려고 했으나, 도내 유생들이 모두 시험에 응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성균관 태학생들이 경상도 유직(柳稷) 등이 율곡과
2013.10.18 18:51:00
"율곡 이이는 이단이다!"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눈 속에서도 꽃은 피나니 ③
☞연재 지난 글 바로 가기 : 눈 속에서 꽃은 피나니 ②곡절 끝에 효종이 즉위하였다. 인조가 궁궐 안의 조귀인(趙貴人) 세력이나 친청파(親淸派) 김자점(金自點) 세력에 편중되어 국정을 운영하면서 조선의 정세와 행보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소현세자의 죽음도 급작스러웠거니와 뒤를 이어 벌어진 옥사로 인한 세자빈 강씨(姜氏)의 죽음에 대해서는 억울하
2013.10.04 19:16:00
죽는 이 있으면 태어나는 이도 있으리라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눈 속에서도 꽃은 피나니 ②
☞연재 지난 회 바로 가기 : 눈 속에서 꽃은 피나니 ①배우고 살던 곳5세에 어머니를 잃은 문곡은 8살에 외할머니 정씨의 손에서 자랐다. 외삼촌인 김천석(金天錫)이 홍산(鴻山) 현감으로 나가면서 같이 따라갔다고 한다. 홍산은 부여군 홍산면이다. 문곡은 글을 정씨에게서 배웠는데, 자애로운 외할머니의 가르침 덕분인지 정씨가 먼저 잠든 뒤에도 문곡은 홀로 늦게까
2013.09.13 19:50:00
'용감한 형제', 2013년에도 나올까요?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눈 속에서도 꽃은 피나니 ①
인사동에서 나다문곡 김수항의 어린 시절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문곡의 둘째 아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에 따르면, 문곡은 기사년(1629, 인조7) 8월 1일 사시(巳時 오전9시~11시)에 경성(京城 한양) 대사동(大寺洞)에 있는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정묘호란 2년 뒤의 일이었다. 대사동은 '큰 절', 그러니까 원각사(圓覺寺)가 있었던 지금의 인사동
2013.08.30 19:19:00
인조가 광해군보다 무능했다고? 역사는 다르게 말한다!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상처를 입고 다스리던 시절 ⑥
☞전체 연재 :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2. 상처를 입고 다스리던 시절 ⑥가깝고도 먼 사람들종종 역사에는 어려운 운명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는데, 문곡 김수항도 그런 경우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할아버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이모부는 유자신(柳自新, 1533~1612)이었고, 광해군의 부인, 즉 왕비 유씨는 청음의 이종 4촌 누이였다. 그
2013.08.16 19:03:00
'고구려 타령' 좀 그만! 조선은 충분히 강했다!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상처를 입고 다스리던 시절 ⑤
☞전체 연재 :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예전 중·고등학교에는 '시련과 극복'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입에 발린 상투어로 '숱한 외침을 극복하면서 면면이 이어온 민족의 역사'를 운운할 때마다 나는 '시련과 극복' 과목을 떠올린다. 마침 광해군-인조 시대를 다루다보니 또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서, 시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
2013.08.02 18:5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