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1일 2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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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공약 이행 벌써 걱정된다
[기고] 민주통합당, 역사 퇴행 책임지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민주통합당은 역사퇴행에 책임지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정권교체를 지지한 국민이 65% 안팎까지 이르지 않았던가. 이는 새누리당 이명박 정권의 극에 달한 비리 부패상과 민생 파탄 때문이었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의 '반 경제민주화' 유전자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26> 박정희의 불평등 경제성장
개발독재라는 말은 그냥 독재보다는 용서받을 수 있는 명분이 인정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일쑤다. 경제개발을 위한 독재라는 뜻에서 그렇다. 그러나 개발독재 체제 아래서 빈발하는 인권탄압을 비롯한 반민주행위가 더욱 아편과도 같은 중독증상으로 국민을 멍들게 한다. 그
63년 야권단일화 했으면 박정희 정권 없었다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25> 민의는 쿠데타세력 반대
역대 대통령선거를 보면 제도가 불비하거나 정치권 잘못으로 국민 의사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역사 방향이 틀어졌다. 그것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치권의 책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사례가 1963년 10월15일 치러
박정희 시대 언론자유 5등국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24> 멸망 직전 공산국들과 동점
한국 언론, 파키스탄 이집트 레바논 로디지아보다 뒤져 유신 말기인 1977년 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인권단체로 뉴욕에 위치한 프리덤 하우스가 각국 별 언론자유에 등급을 매겨 발표했다. 프리덤 하우스는 당시 세계 145개국의 언론 상황을 1등국부터 7등국까지로 분
박근혜 '국민대통합위'는 박정희 용어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23> 정치적 유전자의 증거
계엄령 하 찬반토론 금지된 채 실시한 유신 국민투표는 무효 국민기본권 박탈…국회 행정부 사법부의 3권분립 파괴 박정희의 1인 종신집권을 위해 만들어진 유신체제는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제거됐는데도 종식되지 않았다. 박정희가 키워놓은 군부내 친위대 전두
10.26 원인, 부마항쟁과 박정희 사생활 타락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22> 부마-광주항쟁-6월항쟁의 역사
현직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권총 살해한 10.26사건은 역사 상 어떤 자리매김을 받을까. 대통령 박정희를 제거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의리와 배신, 권력경쟁과 충동적 행동, 정국대처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대립, 망상적 사명감과
정수장학회 강탈 스토리, '더러운 전쟁' 능가했다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21> 박근혜 후보, 무지인가 거짓말인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아버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5.16 쿠데타집단이 부일장학회를 강탈해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가 됐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박 후보는 "법원에서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걸로 안다
박정희 유신선포 다음날 야당의원들 고문폭행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20> 국회 해산조치, 사실상 내란
1972년 10월17일 오후 7시,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중대 뉴스가 예고돼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대통령 박정희의 약간 감기 들리고 코 먹은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오늘 우리 조국의
박근혜의 원죄 '혁명과 반란'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9> 5.16의 성격규명
5.16 군사반란과 유신독재에 대해 "구국의 혁명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역사 평가에 맡기자"는 입장을 고수해 오던 박근혜 후보가 24일 결국 180도 선회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대법원이 서로 다른 두 개의 판결을 내 놓았으니 역사에 맡겨야 한다"고 했던
박정희 5.16 계엄령은 장도영의 명의 도용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8> 윤보선은 계엄령 추인 거부
5월16일 새벽 3시반경 반란군의 6군단 포병부대가 맨 먼저 육군본부를 점령했다. 이어 4시반, 임무를 맡은 대로 박정희 경호대의 소령 박종규와 공수단 대위 차지철이 반도호텔 808호실 국무총리 장면의 거처로 들이닥쳤다. 그러나 장면은 소식을 듣고 이미 몸을 피한 뒤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