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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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만취상태서 반란군 지휘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7> 청진동 술집에서 궁정동 안가까지
5.16 군사반란은 박정희가 술을 상당량 마시고 지휘한 '취중 쿠데타'였다. 거사 시점으로 잡은 5월16일 0시가 되기 2시간 전 준비상황에 차질이 생기자 그는 청진동 술집에서 막걸리를 서너 대접이나 마셨다. 이로 인해 박정희는 거의 만취상태였으며 당시 전화 통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반란군 3대 타깃은 육군본부, 장면 총리, 방송국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6> 전두환도 군권장악 후 정권찬탈
박정희는 군사반란에 일부 불만분자들만이 아니라 군부 전체가 참여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육참총장 장도영을 포섭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것은 무혈 쿠데타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유엔군 모자를 쓰고 있는 주한미군 사령부 측의 지지를 얻기
박정희, 은인 장도영을 포섭하다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5> 학생 시위 격화되기 기대
5.16 군사반란은 군대의 기본적 규율과 함께 국민이 선택한 정부의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국민이 선거로 결정한 정부를 정치군인 집단이 총칼로 무너트렸기 때문에 국민주권에 대한 반란이었다. 국가권력이 정치군인의 선의에 의해
박정희 좌천·하극상 처벌에 정권찬탈 결의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4> 총무:김종필,작전:옥창호 신윤창
4.19혁명으로 새로운 민간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정군운동파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해 오던 관성대로 나갔다. 민주당 정부의 등장은 4.19혁명의 승리로 새로이 만들어진 헌법에 바탕한 성과였고 국민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박정희를 보스로 옹립한 정군파는 4.1
8기생 정군파 논란 "박정희는 남로당 프락치 전력"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3> 정군파의 역사흐름 외면
1960년 4.19혁명이 발발하자 사회 각 영역에 '혁명'바람이 불었다. 정치권에서는 독재권력에 빌붙었던 구악 정치인을 퇴출시키자는 쇄신운동이 일었고 사회 각 영역에서 기성세대의 무기력한 순종문화를 탈각하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4.19혁명 시기 기성세대에 대한
5.16 세력 '구국혁명'커녕 사리사욕 싸움질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2> 5.16군사반란의 원인, 군내 파벌과 승진불만
5.16군사반란에 대해 구국의 혁명이니 사회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니 하는 역사왜곡이 등장했다. 새누리당의 대통령예비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내놓은 나름의 역사평가다. 그러나 그 발언은 박 의원이 5.16군사반란 주모자 박정희 소장의 딸로서 사인(私人)의 입
5.16 쿠데타 세력 부패상에 학생과 장교들 분기탱천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1> 63년 7.6음모와 79년 12.12반란
쿠데타 주도세력 40여명 체포 계획, 전두환 하나회'살모사 하극상'습성 노란싹 움터…방첩대장 정승화 싹 자르지 못해 1963년 7월 5일 오전, 육군방첩대 조사실. 군 수사관이 김식 대위(육사 11기, 후에 민정당 의원)를 상대로 '7.6 쿠데타설'에 대해
전두환 노태우 반란군, 옛 상관 정병주를 총격 체포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10> 특전사의 패륜
박희도 1공수여단, 국방부를 총격살상 점령 1979년 12월12일 밤 11시경, 경기도 중부의 3군사령부 사령관실. 소파에 앉은 이건영 사령관 옆으로 직할 헌병대장 조명기 대령(육사13기, 후에 육본 헌병감)이 다가갔다. "잠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조명기는 대구
"12.12는 5.16쿠데타보다 훨씬 치밀했다"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9> 장태완을 사살하라
믿었던 탱크부대도 반란군이 장악 수경사의 박동원 작전참모는 야포단과 동시에 전차대대에도 출동명령을 하달했다. 그는 사령부 내에 있던 전차대대장 차기준 중령(육사 21기, 후에 합참통합군 기획단 부단장)을 불렀다. "차 중령, 당장 쓸 수 있는 전차와 기갑병을
하나회 멤버들이 행동대장 맡은 전두환 반란군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8> 보안사 지령에 군 지휘계통 마비
하나회 반란군 대통령 숙소를 장악하다 육본 헌병감 김진기가 삼청동 총리공관에 출동하겠다며 수경사령관 장태완에게 병력을 요청한 직후의 경복궁 30경비단. 청와대 경호실 작전담당관 고명승 대령(후에 보안사령관, 대장 예편)이 종합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