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14시 04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돈보다 당신을 사랑해!" 외치는 거짓말쟁이들
[김영종의 '잡설'·27]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 ⑤
진보 이념이 현대 생활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진보의 레일 위를 굴러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세 가지 예를 들어본다. 먼저, 사랑에 대해서. 얼마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너무나 사랑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우리 사
김영종 저술가
대한민국 '보수'의 진짜 이름은? '매국노' 집단!
[김영종의 '잡설'·27]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 ④
이제 우리는 진보가 '방식'의 형태를 취하는 문제에 집중할 차례다. 진보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방식을 통해 관철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은 헤겔이다. 진보가 방식이라고 말한다면, 소크라테스가 덕은 앎이라고 한 만큼이나 옹색하다. 그러나 "덕은 앎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받아든 진짜 이유는?
[김영종의 '잡설'·25]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 ③
근대적 진보의 역사적인 출발은 유대-기독교적 시간관이 르네상스기에 그리스ㆍ로마의 고전문화를 만나 물질세계까지 장악하기 위해, 즉 이성의 힘으로 사회와 자연을 재-디자인하기 위해 거듭 태어난 '직선의 시간관'에 있다. 다시 태어난 진보는 '천국' 대
노예로 살고자 경쟁하는 이상한 세상…당신은?
[김영종의 '잡설'·24]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 ②
이런 놀이를 영속하려면 빚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갚기로 한 약속이 무한히 유예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존 로는 천부적인 수학 계산능력을 발휘해 '약속의 무한 유예'를 가능케 하는 지폐 경제 체계를 구상, 이 아이디어를 프랑스에서
"'은행 대출'의 본질은 '현대판 노예 제도'"
[김영종의 '잡설'·23]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 ①
진보란 무엇일까? 한번 설명해보시라. 혹시, 묻지 않으면 알지만 설명하려면 알지 못하는 게 아닌지? 그게 사실이라면 왤까? 예컨대 자연과학, 즉 수소의 비중을 묻는 물음에는 공식만 알면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에 대해선 어떠한가? 뭐라고 한 마디로 설명할
뉴라이트의 당당한 고백 "우리는 '친일파'다"
[김영종의 '잡설'·22] 우파의 가면을 쓴 모리배 ③
그러면 시대를 건너뛰어 뉴라이트에 대해 살펴보자. 이들의 핵심 이론인 식민지근대화론이 일제 강점기 민족개량주의 이론의 현대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보수라면 얼마든지 장밋빛 이념을 내놓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많은 이론 중에서 왜 하필이면 이 이론을 들고 나왔
모리배들의 언어 조작술 "빨갱이는 악마!"
[김영종의 '잡설'·21] 우파의 가면을 쓴 모리배 ②
지금까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언어 조작술이야말로 이들이 성공한 비결이었다. 구체적으로, 김성수 일파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항일 독립 운동의 정통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이름과 대상이 일치한다는 오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친일파 김성수의 마술 "난 민족주의자야!"
[김영종의 '잡설'·20] 우파의 가면을 쓴 모리배 ①
현 정권은 용산 참사를 이데올로기화해서 색깔론으로 몰아갔다. '나봇의 포도원'에서 봤듯이,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하느님을 파는 짓을 한 것이다. 좌파 정권 10년간 떼잡이 문화를 양산해 법과 원칙이 무너진 결과라며, 좌파가 희생자들의 목숨을 정치 공세에
없는 사람은 안다…"집은 '생명'이고 '우주'다"
[김영종의 '잡설'·19] 집이 우주인 사진
자궁 속의 태아가 천장에 탯줄로 매달려 있는 사진이다. 재개발로 철거될 산동네의 빈집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합성 사진이 아니다. 설치 작업을 해서 찍은 사진인데, 작가의 촬영 위치가 명확한 때문에 이미지를 조작한 사진과는 확연히 다르다. 작가는 사진기로 사실을
"이명박은 우리 시대의 '파우스트'…당신은?"
[김영종의 '잡설'·18] 용산 참극과 파우스트 ②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듯 파우스트는 노부부의 오두막집을 빼앗았다. 자신의 유토피아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만인의 행복을 위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다. 아합 왕도 하느님을 들먹거리며 빼앗았으니 이 역시 이데올로기다. 용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