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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의 본질은 '현대판 노예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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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은행 대출'의 본질은 '현대판 노예 제도'"

[김영종의 '잡설'·23]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 ①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 ①

진보란 무엇일까? 한번 설명해보시라. 혹시, 묻지 않으면 알지만 설명하려면 알지 못하는 게 아닌지? 그게 사실이라면 왤까? 예컨대 자연과학, 즉 수소의 비중을 묻는 물음에는 공식만 알면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에 대해선 어떠한가? 뭐라고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여러 마디라면 어떨까? 그러니까 진보가 사용되고 있는 여러 용례들을 말하면? 그것은 정의(定義)의 형태를 띠지 않기 때문에 시험 답안에 정답 처리가 되지 않는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문답의 규칙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상기하려고 애쓴다. 진보에 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알고 있는 바를 상기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것이다, 라고 초점이 모이지는 않는다. 우물쭈물 지어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진보를 알지 못하므로 설명할 수 없다. 여러 용례를 관통하는 '공통된 무엇'(본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기는 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매달려 있다. '공통된 무엇'은 언제나 구체적인 쓰임과 결별함으로써 순수해지기는 하지만, 그 순간 존재하지 않는 환영이 되고 만다. 애당초 진보, 사랑, 행복 따위의 추상명사는, 그 추상명사가 쓰이는 예를 떠올려보지 않고는 그 자체만으로 상기할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순수하게 상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환영에 붙잡혀 있는 것이지 상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기는 실천이지만 믿는 것은 실천이 아니다. 예컨대 그 자장면은 맛있었다고 믿는 것은 그렇게 느껴서 상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쓰임을 떠난 본질이라는 것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쓰임을 떠난 본질로서의 진보가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말을 한다면, 어떤 환영을 지껄이는 것, 즉 헛소리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가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는 진보는 여러 용례에 공통된 무엇, 즉 본질로서의 진보다. 바지나 콩나물국과 같은 낮은 차원이 아닌 고차원의 의미가 부여된 진보! 도대체 그게 무엇이냔 말이다. 알지 못하는 그것—의미 생산자인 엘리트의 헛소리—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있다면 그것에서 탈출해야 하지 않을까?

아우구스티누스(<고백>): "그러므로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으면, 나는 안다 ; 그 물음을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한다."—우리는 자연과학의 물음(예컨대 위에서 말한 수소의 비중을 묻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묻지 않으면 알지만 우리가 그것을 설명해야 할 때는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상기해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철학적 탐구>,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책세상 펴냄, 89항에서 인용)

그러면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보기에 앞서, 과연 그것(본질적인 진보의 의미)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그리고 현재다. 이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미래를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신이 엘리트라면 더욱 경쟁적으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

현대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현재를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그런 삶을 결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은 돈의 메커니즘을 보면 잘 드러난다. 종잇장에 불과한 돈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가? 마법은 신용(미래의 약속)에서 일어난다. 돈은 신용을 약속한 종이 쪼가리다.

신용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경제학의 이론이야 어쨌든 소수 금융 권력이 사회적 합의를 앞세워 법률로 강제하는 데서 생긴다. 이것을 법화(法貨)라 하는데, 사전에는 '통화의 원활한 유통을 위하여 법률에 의해 강제로 통용시킨 화폐'라고 나온다. 그런데 왜 강제로 돌려야 하는 걸까? 그 까닭은 마법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여기서 잠시 파우스트의 마법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재무장관 : 폐하께서 선선히 서명해주셨고, 이날 밤 즉시 마술사(파우스트)를 시켜 수천 장을 인쇄하였습니다. (…) 십, 삼십, 일백 크로네짜리 지폐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백성들을 기쁘게 했는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 다른 글자는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고, 폐하께서 서명하신 글자 속에서만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황제 : 백성들 사이에 그것이 금화 대신 통용되고 있단 말이냐? 군대와 궁중의 급료도 그것으로 다 치를 수 있단 말이지? 너무 놀라운 일이라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파우스트>,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민음사 펴냄)


이해가 가지 않은 이 일을 존 로(John Law·1671~1729)가 해치웠다. 연극 무대가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재정 파탄에 직면한 루이 15세의 프랑스를 구해낸 것은 놀랍게도 금이 아닌 인쇄기였는데, 존 로의 지폐 아이디어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도박의 천재이자 현대 금융의 창시자다.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되어 지폐가 화폐로서 인정받은 것은 국가의 약속과 국민들의 믿음 덕분이었다. 지폐 경제의 생명은 이 두 개—약속과 믿음—로 이루어진 신용이다. 존 로의 대도박(아이디어)이야말로 시간에 대한 인류의 관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은 대사건이다.

신용은 거래한 재화의 대가를 앞으로 치를 수 있음을 보이는 능력이다. 즉, 미래에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게 지폐다. 바로 이 '미래에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믿음', 이것이야말로 지폐를 쓰고 있는 당신의 삶을 규정하는 법칙이다. 따라서 (지폐를 사용하는) 현대를 살고 있는 당신에게 현재는 없다. 아직도 당신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골수까지 이 사기, 이 거짓 약속, 그리고 이 강요된 믿음에 세뇌당해 있기 때문에.

ⓒ김용철

여기서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희대의 사기를 보고, 현대인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돈의 노예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1. 기존의 통화 체계는 종교처럼 가장 의심받지 않는 믿음의 대상이다.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정책을 따르고,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대부분 모른다. 세계의 1퍼센트가 40퍼센트의 부를 차지하고 있고, 날마다 3만 4000명의 아이들이 가난과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전 세게 인구의 50퍼센트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의 살아 있는 피로 이루어진 모든 제도, 그리고 그러한 사회 자체가 돈이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된 이유를 알려면 통화 제도를 이해해야 하지만, 경제학은 복잡한 금융 용어와 무서운 수학으로 도배돼 있어서 우리를 곧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금융 체계의 복잡성은 가면에 불과하다. 역사상 사람들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제도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다.

2.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현대 통화 흐름(Modern Money Mechanics)'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는데, 이 문서는 전 세계 상업은행 망을 떠받치는 연방준비제도가 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 장, 이 문서의 목적에는 지불준비제도 안에서 돈을 만드는 기본 과정이 나온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미국 정부가 돈을 찍어내기로 결정하면, 그 결정에 따라 연방준비제도에 연락해서 100억 달러를 요청한다.
② 연방준비제도가 승낙하는 과정을 거쳐 100억 달러의 재무부 채권을 사들인다.
(여기서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의 거래 관계를 다시 보자.
- 정부가 종이를 사서 거기에 공식적으로 보이는 그림을 그려 넣고 '재무부 채권'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면 100억 달러의 가치가 생긴다.
- 이 채권을 연방준비제도에 보낸다. 그 대가로 연방준비제도는 자신이 만든 인상적인 종이 다발을 건넨다. 이 상태의 종이를 연방준비권이라고 하며 재무부 채권과 마찬가지로 10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 연방준비제도는 연방준비권과 채권을 교환한다.
③ 교환이 끝나면 정부는 100억 달러의 연방준비권을 갖게 되고, 그 액수를 은행계좌에 입금한다. 그러면 공식적으로 법정통화가 되어 미국 통화는 100억 달러 늘어난다.

난데없이 100억 달러의 돈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로 든 이 교환은 종이를 전혀 쓰지 않고 전자적으로만 일어난다. 미국 화폐량의 3퍼센트만이 실제 화폐로 존재하고 나머지 97퍼센트는 컴퓨터에 있다.)

재무부 채권은 본래 채무증서다. 연방준비제도가 느닷없이 만들어낸 돈으로 이 채권을 구입하면 정부는 그 돈을 연방준비제도에 갚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갚기로 약속하는 것, 이것이 돈이다. 조금 더 알아보면, 돈이 빚(채무)에서 생겼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아무튼 교환이 끝나면 100억 달러가 시중은행 계좌에 들어간다. 여기부터 재미있어진다. 지불준비제도 때문에 그 100억 달러 예금이 순식간에 은행의 준비금이 되는 것이다. 모든 예금이 마찬가지다. '현대 통화 흐름'에서 말하는 지불준비율이란 은행이 규정된 예금비율에 맞게 법적인 준비율을 맞추는 것인데, 현재 규정에 따르면 10퍼센트, 즉 100억 달러의 예금이 있으면 그 10퍼센트인 10억을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나머지 90억은 초과 준비금이 되어 대출 자금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면 100억 달러 예금에서 또 느닷없이 90억 달러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돈은 100억+90억=190억…. 이런 식으로 계속 늘어난다. '현대 통화 흐름'에 나온 내용처럼, 당연히 은행들은 예금으로 받은 돈에서 생긴 대출금을 갚지 않는다. 만약 갚아버리면 추가적인 돈이 생기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갚아버리면 현대의 금융은 그 즉시 동결돼 버린다. 한 마디로 망해버리는 것이다.)

대출할 때 은행은 약속어음(대출증서)을 받는다. 그 대가로 차용자에게 신용(돈)을 준다. 단지 지불준비율을 맞추는 100억 달러가 있고, 그런 대출 요구가 있기 때문에 난데없이 90억 달러가 생기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은행에 가서 새로 생긴 90억 달러를 빌린다. 그들은 돈을 받아 자신의 계좌에 예금한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그 예금이 또다시 지불준비금이 된다. 10퍼센트를 떼어 내고 90억 달러의 90퍼센트(81억 달러)가 새로 대출할 수 있는 돈으로 생긴다. 물론 81억 달러는 대출되었다가 예금되어 72억, 65억, 59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예금으로 대출을 만드는 과정이 이론상 무한정 반복된다. 원래 100억 달러에서 생길 수 있는 돈은 최대 900억 달러가 된다. 즉 은행에서 발생하는 모든 예금에 대해 불쑥 9배의 돈이 생긴다. 돈이 급한 사람은 당장 돈을 빌리기 위해 미국 은행을 찾아가 편리한 개인 대출 형태로 '돈'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지급준비제도로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았다.

이처럼 세계 대부분의 은행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불준비금제도는 사실 현대판 노예 제도다. 생각해보라. 돈은 빚에서 나온다. 빚을 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빚을 갚기 위해 고용된다. 돈이 빚에서 생기는데 사회가 어떻게 빚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그것이 요점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자. 현대 금융 체제에서 돈은 빚이고 빚은 돈이다. 이 돈은 대출을 통해서만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래서 정부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으면 단 1달러도 돌지 않게 된다. "우리 통화 체제에서 빚이 없으면 한 푼의 돈도 없다"고, 연방준비제도 총재 머리너 에키스는 말했다(1941년 9월 30일).

빚의 자가 재생산 시스템(현대 통화 체계)—이 완벽한 시스템의 최종 생산물은 노예다. 모든 사람들이 재산을 지키고 잃지 않으려는 두려움 속에서 자발적으로 노예가 된다. 그래서 임금 노예가 줄을 서게 만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인류 전체가 쳇바퀴를 돈다. 이들은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엘리트에게만 이득이 되는 제국을 강화하기 위해 생존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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