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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은 안다…"집은 '생명'이고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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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은 안다…"집은 '생명'이고 '우주'다"

[김영종의 '잡설'·19] 집이 우주인 사진

집이 우주인 사진

자궁 속의 태아가 천장에 탯줄로 매달려 있는 사진이다. 재개발로 철거될 산동네의 빈집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합성 사진이 아니다. 설치 작업을 해서 찍은 사진인데, 작가의 촬영 위치가 명확한 때문에 이미지를 조작한 사진과는 확연히 다르다. 작가는 사진기로 사실을 찍고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집은 태아가 들어 있는 엄마의 몸이라는 사실이 전율로 다가온다. 엄마와 태아는 시시각각 살해당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공포의 시간이다. 저 건너 보이는 수많은 집들이 같은 운명 속에 있다. 한순간에 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진은 집들을 부동산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집이 생명체로 보인다. 이것은 예술의 힘이다.

ⓒ프레시안

사진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집이 우주라는 게 읽힌다. 태아에게 엄마의 자궁은 우주이기 때문이다.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우주가 파괴되는 고통이 느껴진다. 재개발 사업은 거주자들의 우주를 파괴하는 범죄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보는 이는 생각해볼 것이다. 재개발 사업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그러나 이 사진에서는 분노도 비참함도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새로운 진실은 '밖'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는 모든 변화는 중심에서 일어나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주변을 찍는다고 말한다. 이 사진 또한 새로운 진실이 가장 비참한 곳에서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제도의 밖, 자본주의의 밖, 나의 밖, 부동산의 밖, 정치의 밖, 이데올로기의 밖, 향수의 밖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집이 생명체라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다. 이 사진은 이야기만이 새로운 실제를 창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이 사진이 창출한 실제를 이처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사진만의 고유한 실제성이 허구를 통해 훼손되기는커녕 새로운 실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든 사진이 허구인 까닭에 우리에게 실제성을 주는 요소만 살리면 사진의 본성은 조금도 약화되지 않는다. 작가는 필드 카메라로 그가 원하는 새로운 실제를 찍은 것이다. 그래서 합성 사진과는 천양지차가 난다. (증명사진도 허구다. 동시에 찍었다 해도 똑같은 사진이 한 장도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출현할 때부터 눈앞의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어 의미망을 구축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도 의미망 속에서만 사실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의미망을 짜는 일이다. 예술이 감동을 주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집에서 향수가 느껴지게 찍고, 또 다른 작가는 사회상이 보이게 집을 찍는다. 그러나 이 작가는 집을 생명체로 찍었다. 그는 새로운 의미망을 짠 셈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용산 참극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불에 타 죽은 희생자들의 집을 부동산이 아니라 우주로 볼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사진에서 태아가 들어 있는 자궁은 구(球)로서 평행선이 만나는 지면이다. 평행선이 만나는 지면에서만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각자가 우주의 축을 세워도 위의 무한극점에서 모두 만나기 때문에 소통에 아무 지장이 없는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

그 사회는 근대의 사정거리인 파우스트 밖에 있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역사의 발전에서 찾을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원시미술이나 야생의 문화를 보면 인류가 이미 그런 사회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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