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법원장' 제도"
9일 오후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 주최로 열린 '개헌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한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는 "사법불신과 관련된 문제의 모든 근원은 잘못된 인사 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법관과 법관은 대등한 수평적 관계일 때 가장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피라미드 구조로 중앙집권화 돼 있다"며 "관료화된 사법부 체제로 인해 법원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이번 파문에도 이용훈 대법원장은 '그 정도에 압력을 받아서야 되겠느냐'고 했다지만 피라미드 법원 조직에서는 승진을 하느냐 못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 후배 기수가 올라오면 승진 못한 선배는 법복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특히 "법관에 대한 평가 항목에 '조직 적응력'이라는 추상적 항목도 포함돼 있는 판에 법원장이 '빨리 처리하라', '대법원장과 같은 뜻'이라고 하면 청개구리가 되겠다고 마음먹지 않고서야 어떤 판사가 압력을 안 느끼겠느냐"고 말했다.
임 교수는 "15년가량 재판을 한 노련하고 숙련된 판사들이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발탁되지 않으면 옷을 벗고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등 떠밀려 나가서 개업을 하면 전관예우가 생기는 것"이라며 "사법의 지방자치가 이뤄져 인사권은 지법, 고법이 갖게 하고 평생 판사가 나올 수 있는 인사 제도와 문화를 갖추도록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 9일 오후 국회에서 미래한국헌법연구회 주최로 열린 개헌 세미나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임지봉 교수(가운데)와 국회의원들. ⓒ프레시안 |
슬그머니 사라진 인사 제도 개혁
특히 임 교수는 지난 2003년의 사법파동을 예로 들며 "인사제도 개혁이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이 대법관 임명제청을 하기 위해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꾸렸으나 운영 방식을 두고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과 박재승 변협회장이 위원회를 박차고 나가며 '4차 사법파동'의 발단이 됐었다. 문흥주 판사 등 160여 명의 판사들이 '연공서열식 대법관 제청'에 반기를 드는 연판장을 돌렸고, "이후 제청부터는 개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었다. 당시 임명된 대법관이 현재 법원행정처장인 김용담 대법관이다.
임 교수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보신주의로 승진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다른 판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겠느냐"며 "조용히 무색무취의 안전한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이 대법관이 돼 사법부 전체를 오염시키고 소신과 기개 있는 판결을 하는 판사들은 법원을 떠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당시 사법파동 이후 대법원 주도로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가 설치됐으나 사개위에서 로스쿨과 참·배심제만 논의되고 인사제도는 슬그머니 빠졌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법관 인사제도 개혁을 전략적으로 유야무야 시킨 것 아니냐"며 "법관 인사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고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03년 사법파동 재연 조짐도
또한 '신영철 대법관' 파문이 2003년 사법파동의 재판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당시 사법파동으로 인해 김용담 대법관 이후에는 김영란, 전수안 등 여성 대법관이 임명됐고, 법원 인사개혁을 요구하며 사법파동 당시 옷을 벗었던 박시환 대법관이 임명되는 개혁이 이뤄졌다.
하지만 '엘리트 법관'으로 분류되는 신영철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다시 '연공서열식 엘리트 대법관' 체제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일부 판사들에게서 제기됐었다고 한다.
신영철 대법관은 9일 진상조사를 받던 도중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조사를 중단시키고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문이 신 대법관 개인의 문제로 그칠지, 법관 인사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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