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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영철 사퇴, 전면적 진상조사가 답이다"

[법치의 표리(表裏)]<2>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살리려면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시 촛불사건 재판 개입의혹이 일파만파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진 판사에게 촛불사건들을 몰아주기식으로 배당하려다 다른 단독판사들의 반발로 이를 철회한데 이어, 작년 10월 9일에 집시법상의 야간집회 금지규정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이 있자 이에 신경쓰지 말고 통상적으로 하던대로 재판을 빨리 마무리 지으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수차례 촛불사건 담당판사들에게 보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그리고 급기야 그 이메일들의 전문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충격이 배가되고 있다.

형사단독 판사들이 '촛불재판'을 미룬 이유

2심 재판부가 야간집회 금지규정의 위헌 여부를 깊이 고려할 것이기 때문에 1심 단독판사들은 위헌여부를 고려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 어떤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규정의 위헌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물을 것인지 말것인지 여부는 재판에서의 다른 판단사항들과 함께 법관의 중요한 고유 판단사항에 속한다. 1심 판사들은 이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참으로 노골적인 재판 개입이다. 법원장으로서의 이러한 행동은 "법관은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관윤리강령에 어긋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는 헌법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법관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직무상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 탄핵사유가 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원래 어떤 법률조항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그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당사자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그 '당해사건'의 재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이나 합헌결정이 있을 때까지 중단된다. 그 후 위헌결정이 내려지면 그 법률규정이 무효임을 전제로, 합헌결정이 나면 그 법률규정이 유효임을 전제로 재판이 속개된다.

문제는 위헌제청을 하지는 않았지만 똑같은 법률조항이 그 사건에 적용되는 소위 '병행사건'의 경우에 발생한다. '병행사건'의 재판을 계속 진행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전에 유죄판결이 내려지면, 그 판결은 위헌인 법률을 적용한 잘못된 판결이 되어 다시 심리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병행사건'을 담당한 판사들도 그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법원의 관례다.

신 대법관 이메일, 압력행사이자 사실상 유죄판결 종용
▲ 지난 달 18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뉴시스

신 대법관은 촛불시위 관련 병행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에게 이러한 관례를 따르지 말고 어서 기계적으로 야간집회 금지규정을 적용해서 시위사건과 관련해 통상적으로 해오던대로 판결을 내리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사실상 유죄판결을 종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신대법관은 언론을 통해 자신은 이러한 이메일들을 통해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이를 재판에 대한 압력으로 받아들였다면 판사 자격이 없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법원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법원장이 소속 판사들의 근무평정을 해서 이를 점수로 매겨 대법원에 보낸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 근무평정 점수를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고등법원 부장판사로의 승진 등에 중요한 인사자료로 삼는다. 따라서 신대법관이 법원장으로서 어떤 의도로 단독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근무평정이라는 인사권을 행사하는 법원장의 말이 피인사자인 단독판사들의 눈에 객관적으로 어떤 의도를 가진 것으로 비춰졌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야간집회 금지규정에 대해 위헌심판 제청을 한 박재영 판사와 달리 단독판사들에게 사건을 "통상적으로 처리"하라든가, "부담되는 사건을 후임자에게 넘기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라든가, "머물던 자리가 아름다운 판사로 소문나길 바란다"고 말한 것은 피인사자인 단독판사들에게는 다분히 재판에 대한 압력 행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신대법관은 재판에 대한 압력 행사를 통해 최고법인 헌법이 규정한 법관독립규정을 위반했으므로 마땅히 대법관직을 사퇴해야 한다.

그래야 판사로서 "머물던 자리가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더 추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어서는 안 된다. 결과 자체를 문제 삼다보면 미봉책밖에 나올 것이 없다. 그 결과를 낳은 원인을 찾아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법원개혁의 알파와 오메가는 인사제도의 전면적 개혁

상급법관에 의한 재판 개입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잘못된 법관인사제도에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무작위의 기계적 사건배당 뿐만 아니라 몰아주기가 가능한 임의배당을 인정하는 사건배당 제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법원개혁의 처음과 끝은 바로 법관인사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에 있다고 믿는다.

즉, 법관들간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않고 법관조직이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조직의 상하관계를 유지하며, 이 피라미드의 상층부로의 진입이라는 법관의 '승진'이 법관들에게 중요한 목표가 되는 한 상급법관의 재판 개입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국 모든 판사들의 승진 여부에 대한 결정권한이 대법원장에게 독점되어 있는 한,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위임받거나 사실상 나누어 가진 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가 개별 법관들의 사건 재판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법원조직은 군대조직이나 행정관료조직 등과는 정반대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 군대나 행정부 등에서는 상하관계의 정점에 있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부하나 하부직원들이 자신의 의사나 결정에 잘 따르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 개개인의 독립성보다는 조직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집행의 효율성이 더 중요한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반면 법원조직은 정반대다. 대법원장이나 법원장 등의 법원상층부가 할 일은 명령과 지시를 하달해 개별법관들을 포함한 전체 법원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별법관이 전혀 법원 내외부의 영향과 압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게 법관들을 보호하고 법관의 중립적인 판단을 해칠 수 있는 각종 압력들을 막아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 법원의 상층부들은 이러한 법원조직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인사권을 통해 군대나 행정부의 관료조직처럼 하급법관들을 줄세우고 움직이려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이 때문에 판사들 사이에서는 "법원도 다른 조직과 다를 게 뭐가 있나?"하는 실망과 체념이 팽배해지게 된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성역 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은 법원 외부에서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물론 대법원은 법원 내부 법관들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려 하겠지만, 이런 위원회 구성으로는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며칠 전 처음 몰아주기식 사건배당 문제가 터졌을 때, 관련 단독판사들에 대한 서면조사나 전화통화를 하루동안 실시하고 진상조사를 마쳤다며 별 문제가 없다고 했던 대법원이 아니던가.

법원 내부의 위원들에 법원 외부 인사들을 일부 섞는 식의 위원회 구성을 해도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 여태껏 법원이 외부 위원들을 법원에 우호적인 사람들 위주로 채워 철저한 진상규명에 미흡했었다는 종래의 비판이 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진상조사는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신 대법관이 법원장 시절에 단독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대법원장의 언질에 관한 부분도 분명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메일 내용 중 집시법상의 야간집회 금지규정 위헌제청과 관련해 "대법원장이 대체로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한 부분이 그것이다.

▲ 서강대 법대 임지봉 교수
듣기에 따라서는 이메일을 통한 압력 행사조의 재판 방향 제시가 자신의 뜻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대법원장의 뜻이기도 함을 언급한 말로 이해될 수 있다. 법원 외부인사들로 이루어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한치의 의혹도 남겨두지 않는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조사는 대법원장까지도 대상으로 하는 성역없는 조사여야 한다. 이번 일로 완전히 땅에 떨어져 버린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사법부의 안이한 상황인식과 대처는 바로 독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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