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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도, 김문수도 고마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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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기표도, 김문수도 고마운 사람"

[화제의 책] 이소선 이야기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아무튼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내 말은 이것뿐입니다."

'노동운동의 대모', '열사의 어머니' 등 숱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 그의 인생을 책으로 쓰자고 했을 때, 그는 "뭐 잘난 것도 없는 거 글로 쓰냐"고 타박을 했다. 그런데 그가 순순히 작가 오도엽에게 600일에 걸쳐 밤마다 그 아련하고, 아프고, 때로 스스로 "한심하다" 했던 자신의 팔십 인생을 풀어 내주었던 것은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못한 것도 있지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사람도 많은 거야. 못난 사람이 이제껏 살았으니 얼마나 옆에 고마운 사람이 많겠냐. 그래서 지금까지 나를 아껴준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을 쓸라면 쓰라고 했지. 소설처럼 지어내지 말고."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오도엽이 우연히 찾아간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일이 년이나 살겠어, 이게 마지막이지"라는 이소선의 말에 그대로 동대문구 창신동에 주저앉아 시작된 일이었다.

"몰래 녹음기를 켜놓고 밤부터 새벽까지 이야기를 했다. 아니, 이소선은 이야기를 하고 나는 졸았다. 졸고 있으면, 너 지금 자냐? 하며 깨우면 눈을 떴다가 아뇨, 하며 다시 졸았다."

질풍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주는 응원과 위로

▲후마니타스는 "이 책은 민주화 운동의 '맹장'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소선의 특별한 인생을 칭송하는 평전도, 자서전도 아니"라고 했다.ⓒ프레시안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이소선 말하고 오도엽 씀, 후마니타스 펴냄)를 펴낸 후마니타스는 "이 책은 민주화 운동의 '맹장'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소선의 특별한 인생을 칭송하는 평전도, 자서전도 아니"라고 했다.

그저 "어찌 이런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싶다가도 문득 생각해 보면 언젠가 내가 겪었던 일 같기도 한" 그런 인생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다. 이 책이 "질풍 같은 시대를 버티며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주는 따뜻한 응원이요, 위로의 선물"이 되는 것은 그래서다.

그것은 이소선이 "어떤 기억을 말하든 이야기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었던, "자신을 내세우거나 높일 필요를 의식조차 못 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누군가 내게 이소선은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보다도 독특한 자신의 향기를 가진 사람, 그러나 향기를 내뿜는 순간 자신은 스멀스멀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

지금껏 살면서 했던 실천과 선택은 늘 주변 사람들의 절박한 요청에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한 것, 그뿐이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역할은 바로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고귀한 역할을 보여준 그의 삶은 "종합병원이 따로 없는" 지금의 그의 몸을 남겼다. 그것은 사실 아들 전태일의 죽음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소선이 "지독시리 고생했던 이야기 뭐하러 듣냐" 했던, "벗어던지려고 안간힘 쓰며 살아야만 했던 시간"에도, 이소선은 지금의 이소선이었다.

'중앙시장 거지 엄마'의 가난, 그 고통스러운 기억

"독재와 싸운 일보다 더 힘들었는지 모르는" 가난과의 싸움의 시절, 시장에서 주운 우거지를 팔며 지내는 이소선을 중앙시장 사람들은 '거지 엄마'라고 불렀다. 그가 거지 아이들을 돌봐주며 한 가족처럼 지냈기 때문이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살았던" 아이들도 이소선을 "엄마"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가져다준 우거지를 판 돈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아이들에게 헌옷을 사서 입혔다. 아이들은 동냥하다 음식이 생기면 아껴 두었다가 이소선에게 가져왔다. (…) 이소선은 ('거지 엄마'라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누구에게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쨍하니 빛 한 번 들지 않았던 삶"에 아들 태일이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위로였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엄마와 늦도록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살뜰한 아들은 이소선에게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 아들이 때때로 "불길한 느낌"을 주었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배우기 싫다는 어머니에게, "너한테 물어보면 된다"는 어머니에게, 태일은 "제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제가 없으면 통탄할 일이잖아요" 했다. 그리고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엄마 꼭 크게, 나 잊어버리고 부탁하고 가게. 크게, 크게 대답해 주세요."
그라는 거라. 그리고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소리치면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그라면 또 피가 퍽 쏟아지고……. 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라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다시 이소선은 수건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숙인다. 한참을……)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배가 고프다, 그 말을 들으니 기도 차지 않았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


30년도 지난, 그날 이야기를 한 뒤 이소선은 나흘간 꼬박 앓았다.

"아들이 불탄 자리에서 이소선이 일어났다"

그리고 "아들이 불탄 자리에서 이소선이 일어났다." 오직 아들과 한 마지막 약속, "내 몸이 가루가 돼도 네가 원하는 것을 지키마"를 지키기 위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소선이 돈 대신 노동조합을 선택했던 것도, 무작정 청와대 앞을 찾아가 몇날 며칠을 앉아 있다 마침내 박정희 '각하'를 만나 약속을 지켜 달라 매달린 것도, 장기표 재판정에서 소란을 피워 처음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던 것도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모두가 민주주의가 왔다고 들떠 있을 때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의 장례위원장을 맡아 다시 수배된 것도, 대통령 선거 직후 "의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135일의 "유례없이 긴 농성"에 나선 것도, 유가협 사무실을 하나 얻으려고 3000만 원 어치 그림이 실린 트럭을 타고 동교동 김대중 선생의 집으로 찾아간 것도 그래서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절대 버리지 못하는 '보통 어머니' 이소선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을 따라 변해갔다. 한때 그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묻고 또 물었던 장기표는 정치권으로 들어갔고, 누구는 사업을 한다고 이소선을 떠나갔다. 하지만 "이소선은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가끔은 욕도 하지만 진심으로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독설을 퍼붓는 순간에도 연민의 끈은 놓지 않는다.

"효도하던 자식이 불효한다고 내칠 수 있냐. 만나서 야단치고 달래고 회초리를 들기도 하고 어르기도 해야지. 또 잘난 자식이 있으면 못난 자식도 있는 법 아니냐."

그가 '투사 이소선'도 '노동운동가 이소선'도 '민주 인사 이소선'도 아닌, 그냥 '어머니 이소선'인 이유다.

"나야 태일이 죽은 뒤에 미쳐서 지금까지 이러고 살지만 남들이 어떻게 나처럼 평생 미쳐서 살겠냐. 하루든 몇 달이든 열심히 싸우고 살아온 게 어디냐. 내겐 정말로 고맙고 고마운 사람이지. 난 누구도 원망하고 살지 않어야."

그리고 그것은 그가 오도엽에게 "글 써서 남 아프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이유기도 하다. "내 흉은 괜찮아도 남 흉 될까 싶은 거는 그것도 다 내 잘못이니 빼라"고 얘기하는 마음이 바로 그대로 이소선이다.

이소선은 "야, 누가 읽기나 하겠냐"고 했지만, 그의 여든 삶은 "강산이 서너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고통받고 소외받는 사람의 신음이 끊이지 않는 이 현실" 때문에 더 아프다. 그리고 매일 밤 전화번호가 가득 적힌 수첩을 뒤적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팔순 노인이 온 몸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영원한 응원가이자 희망의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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