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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 국수집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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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 국수집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신 까닭

[조선 질경이 이소선] <8>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전태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붙는 칭호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뜻을 평생 온 몸으로 이어 온 이소선 여사가 올해 팔순을 맞았다.

사단법인 전태일기념사업회는 그의 팔순을 기념해 헌정 문집 <조선 질경이 이소선>을 발간한다.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이소선 여사의 치열한 삶은 깊은 감동과 함께 노동운동 또 우리의 삶에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과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이 책에 실린 글 가운데 9편을 골라 연재한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오는 12월 5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팔순 잔치 겸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소선 어머니!

마흔에 홀로 되신 어머니가 이제 여든이라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못난 아들 최종인, 안타까움과 눈물이 앞섭니다. 어머니의 훌륭한 삶 앞에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니 저만이 아니라 그 누가 무슨 말을, 어떤 언짢은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너무도 소중하고 값진 삶, 저를 비롯한 청계 식구들을 아들, 딸로 품어주신 바다보다 넓으신 품, 그 앞에 자식들은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태일이가 병원에서 나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한 말.

"너희 부모님께 효도하고, 그러고 시간이 조금 남으면 우리 어머님께도 효도를 해주게. 우리가 하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뤄주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네. 내 말 분명히 듣고 잊지 말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태일이는 우리에게 꼭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지요. 그날 맹세했습니다.

네 말대로 꼭 할게!

벌써 38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그 약속 지금도 변치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는 늘 태일이가 불탄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아는 게 없었습니다. 단지 태일이와 한 약속 하나만 부여잡고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이 뭔지, 노동법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때 용기를 주신 분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저희들 옆에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노동조합을 알린다는 현수막을 걸었다고 경찰이 강제로 철거하라고 할 때 어머니는 현수막을 가지고 정보과 형사의 목을 조르며 싸우셨지요. 조합 사무실에 걸린 태일이 사진이 떼어지고 박정희 사진이 걸릴 때 어머니는 빗자루를 들고 박정희 사진을 산산조각 내 버렸지요.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박정희가 마치 제왕처럼 군림할 때가 아닙니까. 어머니의 그 용기에 흔들리지 않고 청계노조를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노조를 만든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노총 출신 청계노조 지부장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나갈 때, 어머니는 이제 삼동 친목회 출신인 너희들이 조합을 이끌라고 하셨지요. 아직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배워야 한다고 할 때 어머니는 저를 안아주시며, 넌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었지요.

▲ "아직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배워야 한다고 할 때 어머니는 저를 안아주시며, 넌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었지요."ⓒ연합뉴스
창동집에서 추억은 더욱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와 이승철, 임현재는 아예 창동집으로 이사를 해서 함께 살지 않았습니까. 어디 저희뿐입니까. 밤에는 청계 조합원이 우르르 몰려가 비좁은 방에 무릎을 포개고 앉아 회의도 하고 공부도 했지요. 밤마다 저희 양말을 빨아서 연탄불 앞에 쪼그려 앉아 말리시던 모습, 양말이 마르면 구멍 난 곳을 꿰매시던 모습, 그 모습이 선합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저희는 조금이라도 성한 양말을 신고 나가려고 서로 다투곤 했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 마음은 생각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쌀을 한 봉지 사들고 오셨죠. 내일 아침에는 우거지 죽 대신 쌀밥을 지어주겠다고. 그날 밤 저희는 쌀밥이 눈앞에 아른거려 잠을 자지 못하고 내일 굶어도 좋으니 지금 밥을 지어 먹자고 밤중에 어머니를 졸랐지요. 허겁지겁 퍼먹은 밥그릇은 금방 비어 버리고 아쉬움에 밥그릇만 요란스럽게 긁어댔던 그때 일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물었죠. 내일 아침은 굶는 거지? 그래도 아침은 아침인데 우거지 죽은 먹어야 한다고 능청스럽게 말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때 어머닌 얼마나 애가 말랐을까요. 국수를 만들다 생긴 자투리, 파지국수라 했죠. 파지국수를 얻으러 새벽에 나가 몇 시간씩 국수집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어머니.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저희들은 늘 먹는 것에 한이 맺혀 있었지요. 한창 나이인 저희가 배고플까 늘 애달아하시던 어머니.

그래도 그 시절이 행복했습니다. 배는 고팠지만 행복했습니다. 경찰에 두들겨 맞고 잡혀가더라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가 옆에 계셔서, 어머니와 한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를 태일이처럼 챙겨주셨습니다. 어머니한테 받은 사랑의 천만분의 일이나 했는지, 어머니가 저희를 생각하는 것 반만큼이나 어머니를 생각했는지, 가슴이 저려옵니다. 사십 년의 세월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은 뒤에 노동조합을 떠났지만, 어머니는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한길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 계십니다. 하지만 한 번도 저를 나무란 적이 없습니다. 배곯지 않고 살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저를 끊임없이 챙겨주셨습니다. 한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머니! 어머니 앞에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좋은 옷 한 번 입지 못하시고. 맛난 것 한 번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거리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 앞에 제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사람을 차별하는 게 제일 참을 수 없다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시려고 갖은 고초를 온몸으로 헤쳐오신 어머니 앞에 한없이 작아집니다.

태일이의 죽음을 헛되이 않게 하겠다고 약속한 저의 짐을 어머니께 고스란히 맡긴 것 같아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환하게 어머니와 웃고 싶습니다. 덩실덩실 어깨를 흔들며 꺽정이 춤을 추고 싶습니다. 지난 세월 있었을지 모를 가슴속의 앙금도 모두 지우고 한판 흐드러지게 잔치를 벌이고 싶습니다. 어머니께 고운 옷 입혀 드리고 어머니 품에 안겨 사진도 찍고 싶습니다.

어머니 가슴의 한,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맡기세요. 아니 제 몸으로 받아 안겠습니다. 이제껏 어머니가 고생하시며 온몸으로 부딪혀 온 삶은 그 누구도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우러러보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오로지 좋은 기억만, 행복했던 시간만 간직하세요.

여든 평생을 하루도 변함없이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달려오신 어머니의 소중한 삶, 내 친구 사랑하는 태일이의 뜻이 헛되지 않게, 이 땅에 헌신하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뜻이 헛되지 않게 제 마음 되잡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제야 어머니께 큰절을 올립니다. 건강하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행복하세요. 어머니!

최종인 선생은 전태일과 함께 '삼동친목회'를 꾸려 활동했으며,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지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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