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300일을 넘긴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김현주 씨는 14일 이렇게 말했다. 노동부가 검찰이 불법 파견을 인정했고 국회의원도 사실상 코스콤이 이미 사용자라며 정당성에 무게를 실어줬지만 여전히 이들은 거리에서 파업 1년을 앞두고 있다.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았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로운 파업은 최근 몇 가지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첫 번째는 오는 18일 나오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 그리도 또 하나는 비록 사임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남은 임기 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정연태 코스콤 신임 사장이다.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가 이날 오전부터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뜰에서 76시간 연좌농성을 시작한 것은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다.
"사내하청 '정직원' 판결 받은 현대미포조선과 코스콤은 동일"
비정규직지부가 일단 기대를 거는 것은 법원의 판결이다. 노동부 등에서도 이미 '불법 파견' 판정을 받았던 만큼 법원에서도 "코스콤의 정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리라 예상하고 있다.
특히 바로 얼마 전 나왔던 대법원의 판례도 코스콤 비정규직의 이 같은 기대감을 높여줬다. 대법원은 지난 10일 현대미포조선의 사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 소속 노동자 30명이 낸 소송에서 원청회사가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직접 지휘·감독하는 등 실질적인 사용자 구실을 했다면 이들을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정인열 부지부장은 "대법원에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받은 현대미포조선과 코스콤의 사례는 완전히 똑같다"고 말했다.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자의 채용 여부를 결정한 점 △원청이 하청업체 직원의 출근·조퇴 등 근무태도를 점검한 점 △하청업체가 독자적 장비나 독립적 시설을 갖추지 못한 점 등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별도의 사건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코스콤이 이미 사용자"라는 판단을 받은 바 있다. (☞관련 기사 : 노동부·국회의원 이어 법원도 "코스콤이 사용자")
지난해 12월 법원은 코스콤이 낸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단에서 "코스콤은 부분적이나마 협력업체와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었던 지위에 있다"며 "코스콤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코스콤의 사용자성을 인정했었다.
문제는 지방법원에서 사용자성을 인정받더라도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는 사용자에게 직접 고용 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현실적으로 없다.
"법원 판결 전에 대화로 풀자"…노조, '정규직화'에서 '직접 고용'으로 물러서
이 때문에 노조는 노사 협상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날부터 시작한 76시간 연좌 농성도 그런 바람의 일환이다.
특히 지난 4일 정연태 사장이 코스콤비정규직지부를 찾아와 대화를 요청하고 "내 임기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그 전에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 노사 모두 실현가능한 안을 마련해 보자"고 얘기한 것도 사태 해결의 희망을 키웠다.
비록 개인파산자임이 드러나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노조는 일단 정 사장의 '사태 해결 의지'를 믿어보겠다는 분위기다. 비정규직지부는 정 사장과의 면담 이후 조합원 총회를 통해 요구 사항을 한 단계 낮췄다.
파업 초기부터 요구해 왔던 정규직화에서 직접고용으로 한 발 물러선 것. 당장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면, 직접고용 비정규직으로라도 일단 현장에 돌아가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제안이다.
정인열 부지부장은 "정규직화에서 직접고용으로 한 발 물러선 것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이 먼저 요구 수준을 낮춰 말보다는 행동으로 대화에 임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지부는 이와 더불어 △노동조합 인정 및 활동 보장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모든 법률적 소송 취하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장기 파업의 꼬인 실타래를 풀 공은 코스콤 측에게 넘어간 셈이다. 개인파산자 신분으로 코스콤 사장에 내정됐다 며칠 만에 사임 의사를 밝혀야했던 정 사장이 '헛된 약속'으로 다시 한 번 망신살을 입는 '이중 불명예'의 타격을 입을지 여부도 코스콤과 정 사장의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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