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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수씨 분신 한달 , '꿈틀대는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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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수씨 분신 한달 , '꿈틀대는 울산'

[울산 르포] 정규직 "공감은 하나, 나서기는 어려워"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울산에서는 고 박일수씨 죽음의 의미를 승계하기 위한 하청노동자들의 외로운 투쟁이 한달 째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은 박일수 씨 분신 한 달을 맞아 12일 울산을 찾았다.

<사진1 >퇴근투쟁

오후 3시경 울산 동구 전하동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사무실부터 찾았다. 사내하청노조는 지난해 8월24일 창립총회를 한 이래, 지난 11월 임금삭감반대투쟁을 필두로 하청노동자들의 권리 신장과, 근무여건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 과정 속에서 위원장 조성웅씨를 비롯한 다수의 활동가들이 해직당하는 고통을 맛보기도 했다.

***두 갈래로 나눠진 울산**

박일수씨 죽음을 계기로 울산 동구는 하청노조를 지지하는 세력과, 현대중공업 사측의 이해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나뉘었다. 전자는 하청노조와 민주노총 울산지부, 금속연맹 울산본부, 비정규직단체 및 현대중공업 해고자들, 민주노동당 등이고, 후자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가칭 ‘회사를 사랑하는 모임’ 등의 사내단체 소속 현중직영노동자들, 그리고 ‘방어진애향회’ 등의 지역 모임이다.

박씨 사건은 종전에 있었던 일반적인 노사갈등의 양상과 크게 다르다. 위에 나타난 세력구도에서도 보듯이 현중노조와 일부 노동자들이 사측의 입장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이한 구도에 대해 관계전문가마다 분석이 조금씩 다르다.

노동사회연구소 이명규 편집부장은 “현중노조의 그간의 실용-실리주의 노선이 지속되면서 10여년간의 무분규 임단협 타결이 상징하듯 종전의 투쟁성이나 노동자 계급성이 크게 약화되었다”고 분석한다. 비정규직 철폐연대의 조진원 비정규직연구소장은 "현중노조의 어용화는 사측의 노무관리의 승리"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뉘앙스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같은 분석은 현중노조가 이번 사태에 보이는 비상식적 행보의 배경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노조사무실에는 조성웅 하청노조 위원장, 23일 노조공개활동 선언한 진용기씨와 이날 공개노조활동을 추가로 선언한 김태형씨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김태형씨(36)는 12일 박규영씨와 함께 진용기, 조광한씨에 이어 공개노조활동을 선언한 현중 하청 인터기업 소속 노동자다. 인터기업은 바로 지난 2월 14일 새벽 분신자살을 통해 하청노동자의 부당한 처우를 세상에 알린 박일수씨가 생전에 근무했던 현중 하청기업이다.

***김태형씨 "생계 끊길까 두려워 공개노조활동 선언 늦어져" **

김태형씨는 예상과 달리 밝은 모습이다. 조광한씨가 지난 23일 공개선언 직후 동료 직원들과 사측으로부터 협박과 제지를 받아 힘들어 하던 모습과는 판이하다.

김태형씨는 “박일수 선배가 분신하신 이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그간의 힘들었던 심경을 털어놓았다. 사측과 현중노조에서 나오는 갖가지 음해성 루머로 박일수 씨의 죽음이 왜곡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공개선언의 이유라고 김태형씨는 말한다.

<사진2> 김태형 씨 출근 모습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관계법에 엄연히 보장되어 있는 노동자들에게 있어 기본권 중 하나다. 지난 70년대 전태일 씨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노조활동 보장하라"는 외침이 역사책의 한페이지가 된 현재, 노조활동 자체를 공개선언하는 것이 무에 큰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2004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그 자체가 크나큰 결단을 요하는 일이다.

“지난해 8월 하청노조가 결성된 이후 공개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해직됐습니다. 개별 해직도 있지만, 원청에서 노조원이 속한 하청기업과 도급계약을 해지해, 회사를 폐업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용기씨의 말이다. 실제로 현재 하청노조위원장인 조성웅씨, 사무장 이승렬씨, 노조원 김주익씨 등은 노조가 결성된 이후 모두 해직됐다. 이들 외 하청노조사무실 상근자들 대다수도 마찬가지 해직노동자다.

하청노동자들에게 해직은 곧 생계가 막히는 것을 의미한다. 김태형씨가 뒤늦게 노조활동을 공개선언한 이유도 바로 생계가 불투명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김씨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컸습니다. 죄책감이 있었지만 이제 6살박이 딸을 보면 감히 노조원임을 공개할 수 없었습니다. 노조원이란 신분이 탄로나면, 보나마나 해직될 것이고, 해직은 생계 수단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나 뿐만 아니라 다수의 하청노동자들이 박일수씨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공감하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고 털어놓는다.

부당한 처우를 당하면서도 마음껏 주장을 펼수도, 현대중공업을 떠날 수도 없는 남모르는 처지다.

***퇴근하는 현중노동자,“저한데 묻지 마세요”**

하청노조는 매일 아침 7시, 저녁 6시에 현대중공업 정문, 전하문, 일산문 등(현대중공업은 동해를 끼고 수 킬로미터 공장들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서부동’, ‘전하동’, ‘일산동’ 마다 출입구가 있다)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발언을 하는 선전전을 한다. 소위 출근투쟁과 퇴근투쟁이다.

이날도 저녁 6시가 되자 하청노조원들은 각기 맡은 지역으로 나가기 위해 유인물과 박일수 씨 영정사진, 마이크 등을 챙기기 시작한다. 기자는 전하문 선전전에 동행했다.

<사진3> 퇴근

울산은 아침 저녁이 매우 역동적이다. 세계최대 조선소답게 수만의 인파가 오토바이, 자전거를 이끌고 출입문을 들고 난다. 이날도 마찬가지. 일산문 앞에는 퇴근을 재촉하는 오토바이 행렬로 가득찬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수십대의 오토바이가 엔진소리를 우렁차게 내며 각 자의 집으로 향한다.

출입문 앞에는 회사측 관계자가 박일수 씨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는 유인물을 베포하고, 출입문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조성웅 위원장이 박일수 씨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돌린다. 퇴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내용이 담긴 이 두장의 유인물에 애써 무심한 표정이다.

신호대기중인 몇 명의 현중 노동자들에게 묻는다.

“박일수 씨 분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사에서는 서로 무슨 말씀을 나누십니까?”
“낼 울산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데 참석하십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무안할 정도로 간단하다. 그리고 한결같다.

“저에게 묻지 마세요.”
“저는 잘 모릅니다.”
...

애써 외면하는 현중 노동자들의 모습은 곧 이해가 되었다. 출입문 바로 뒤에서 한 무리의 사진사들이 연신 플레시를 터트린다. 취재나온 사진기자가 아니다. 또 출입문 앞에는 덩치가 큰 장정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쪽을 주시한다. 회사측 경비다.

“하청노조원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회사측 사진사들이 따라옵니다. 혹시나 우리들의 집회에 동조하는 현중 노동자가 없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죠. 매주 한 번씩 오토바이 시위를 합니다. 하청노동자, 직영노동자 할 것 없이 수십명이 모여 공장 외곽 일대를 돌면서 경적시위를 하는 겁니다. 참가하는 노동자들은 오토바이 번호판은 청테이프로 가립니다. 물론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구요.”

<사진4>사진사경비들

하청노동자들은 사내에서는 물론, 회사 밖에서도 노조활동은 자유롭지 않다. 사측의 '감시의 눈' 때문이다. 이런 사측의 노력(?)이 현중 노동자들이 기자의 질문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다.

***정규직들, "동참 못해 미안"**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멀어질만한 지점에서 다시 퇴근하는 노동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서야 한마디씩 취재에 응한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미포조선에 근무하는 50대 노동자의 말이다.

“자세히는 말 못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이 몇 배 고생하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더 힘든일을 하면서도 월급도 적고, 연월차도 없이 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른 척 할수밖에요. 이것이 현대중공업의 현재 모습입니다.”

“현대중공업 같은 큰 회사에 맞서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저들의 목소리는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디 우리 사회가 옳은 말 하는 사람 말대로 됩니까? 저 사람들도 빨리 다른 일자리를 구해 행복하게 살아야 할 텐데, 괜히 좌절감만 커질까봐 걱정됩니다.”

또다른 현중 직영노동자는 말한다.

“이 회사에 들어온지 30년이 다 됩니다. 저로서는 회사에 별 불만 없습니다. 이 회사 덕분에 집도 사고, 애들도 대학 보내고, 이만하면 만족합니다. 하지만 하청 사람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저희들이 누리는 복지혜택의 반도 누리지 못하거든요. 언제 해직될 지도 모르는 불안한 신세이고...저로서는 미안하지만 모른 척 할 수밖에요. 회사에 미운털이라도 박혀 짤리면 어떡합니까? 애들 결혼도 시켜야하는데...”

아직까지 하청노동자와 직영노동자 간 원활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서로 미안한 마음을 가슴속에 품은채, 한 쪽은 선전하고, 또다른 한 쪽은 애써 외면할 뿐이다.

저녁 선전전과 오토바이 시위가 끝나고, 하청노조원들은 사무실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이후 투쟁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13일 동구 일산해수욕장에서 열릴 전국노동자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울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운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5> 치졸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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