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은 이날 오후 오종렬 범국본 공동대표를 비롯한 단식농성 참가자들과 한 시간 여의 간담회를 갖고 "한미FTA 협상 중단을 위해 국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FTA 강행, 국민 주권 원칙에 어긋난다"
지난 12일 단식을 시작해 이날로 사흘 째 농성을 하고 있는 오종렬 공동대표는 국회의원들에게 "체결 후 비준에서 막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협상 자체를 중단시켜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체결한 조약을 국회에서 비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주장이었다.
농성장을 찾은 의원들의 인식도 이와 비슷했다. 천정배 의원은 "정부가 체결한 이후 국회가 비준 과정에서 실질적인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런 예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아직 우리가 얻은 것은 없고 내준 것만 많다"며 "얻으려고 하는 것도 다 고위급 협상으로 올라가 있어 얻을 것이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들이 협상 체결을 중단시키려면) 지금 해야 한다"는 오종렬 대표의 말에 대해 김태홍 의원은 "장영달, 김한길, 권오을 의원 등 여러 당의 많은 의원들이 최근 (한미 FTA 협상) 반대 입장으로 가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 국회 내의 반대 목소리가 점차 고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 이익을 배반해서 터무니없는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결정적 시점이 오면 예측할 수 없는 폭발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재천 의원은 "정치권에서 제대로 된 반대전선이나 합법수단을 통한 통제와 견제를 다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최 의원은 특히 "대선과 총선에서 어느 당도 한미 FTA에 대해 국민들 앞에 말하지 않고 FTA 체결을 하는 것은 국민 주권 원칙에 어긋난다"며 "그랬던 만큼 더 철저하게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야 하는데 도리어 결과만능주의에 빠져 고독한 영웅처럼 밀고 가고 있다"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최 의원은 또 "외국의 힘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마치 갑신정변을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의 구체적인 문제와 관련한 대화도 오갔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의장과 건강사회를 생각하는 수의사 모임의 박상표 편집국장이 각 논란 지점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이에 이에 천정배 의원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개념"이라며 "미국의 투자자에게는 천국이 될지 몰라도 한국인의 주권에 대해 굉장한 제약이 있을 이 제도는 반드시 빼고 시작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천 의원은 "그런 제도가 협상 초기 우리측 초안에 들어 있었으니 이제 와서 완전히 빼기는 어렵다"며 "그렇기 때문에 현 상태로는 중단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들을 만난 농성 참가자들은 지난 10일 있었던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대응과 사전조치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시위대 및 취재진에 대한 경찰의 폭행과 더불어 지방에서 올라오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유지에서 경찰에 의해 연행된 일 등이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 천 의원은 "경찰이 전세 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에까지 올라타서 그랬다는 얘기냐"며 되물었고, 김 의원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를 가로막는,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비준 과정에서 다수결의 표를 확보하기 전에 국민적 분노가 폭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보고 단식 참가한 가정주부 "정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
단식 참가자들도 이들 세 의원들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장동화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먹지 않는 단식에까지 동참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서글픈 사회"라고 하소연했다.
인터넷을 통해 단식농성 소식을 접하고 참여하러 왔다는 경기도 일산의 가정주부 신혜진 씨는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생각할 때 FTA 체결을 용납할 수가 없어서 왔다"며 "'그것이 엄마가 너희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말해줬다"고 소개했다.
신 씨는 "내가 가장 충격받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가) 거짓말을 해 왔다는 것"이라며 "그것만이 살 길인 것처럼 말했는데 언론 보도를 꼼꼼하게 보니 아무 것도 이득이 안 되는데 다 속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 씨는 "이건 마치 구한말에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던 당시 '이걸 해야 조선이 근대화된다'고 얘기했던 것과 똑같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그 조약들 때문에 일제 36년 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치욕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세 명의 의원들에게 신 씨는 "대통령이 결정하고 들러리 서는 것은 하지 말고 국민들이 뽑아준 데 대한 역할을 담당해달라"며 "발로 움직여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김태홍 의원은 "가정 주부도 저렇게 뚜렷한 인식을 갖고 있는데 민족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한미 FTA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분노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든다"며 "남은 시간동안 철저하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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